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물론 그 누구도 믿지는 않았다. 그날밤 그녀는 더운 여름 얇은 이불 위에서 뜨거운 열을 앓았고 밤새 뒤척였다. 그리고 나중에 그녀는 이런 글을 썼다고 한다.
잠수병은 노란부레를 찢는다
그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빗방울이 땅으로 자살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침대에서 내려와 방바닥에 누웠다. 맨 살이 닿았다. 그리고 소리들. 자동차. 사람들. 수 만개의 빗방울. 검게 퍼져 있는 나의 핏줄에 헤드라이트를 켠 차가 지나간다. 안개 속 탐색. 검게 고동치는 피. 몸 곳곳으로 퍼져 있는 핏줄. 그 속에 치명적이지 않을 만큼의 독. 어두운 무언가가 가슴을 짓눌렀다. 전화기 콘센트를 보곤 이 구멍을 통해 네 방으로 닿을 수 있다는 생각에 손바닥을 그 위에 오랫동안 대어 보았던 때처럼. 검은 깃털이 가슴에 앉았다. 무겁게. 계절은 터널을 지나 또 다시 봄으로 가고 있다. 또 다시라고 하지만 매번 처음 맞는 계절.
독의 계절. 피에 퍼진 독이 스스로 독성을 더해 간다. 검은 땅은 먼 기억을 꺼내어 녹인다. 기억이 녹아내리는 속도에 맞춰 사람들은 설렘을 품는다.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클리세. 마비 후 찾아오는 통증. 긴 혼수에서 깨어난 감각. 해독 후의 절망, 순환의 악몽, 잔인함의 미학. 비가 계속 오고 있다. 검은 물이 내 몸 곳곳으로 흘러들어온다. 깊고 검은 물의 몽상. 그 물 속에서 떠오르는 노란 얼굴. 내 검은 눈을 보고 물처럼 흔들리던 당신을 난 품을 수가 없었다. 넌 내 깊은 곳까지 닿던 최초의, 그리고 쵷의 잠수부. 수면으로 돌아갈 때는 천천히 올라가도록 해. 잠수병의 통증이 널 찢어놓을 테니까.
검은 물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는 한 다스의 계절이 필요하다. 두려움에 떨며 잠수를 거부했던 난 네 검은 핏 속에서 익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따. 시체는 수면 위로 떠오른다. 당신은 노란 부레. 아무리 깊게 잠겨도 떠오른다. 밤을 타고 달리던 버스 안에서 오렌지 및 가로등을 보는 나는 항상 찾고 있다. 혼수 속에 건져 올리는 언어를. 익사하고픈 검은 안구의 물고기가 뱉어내는 노란 꽃분 같은 마지막 숨을.
깊고 검은 물 속, 내 옆엔 스스로 눈을 퇴화시킨 물고기가 있다. 난 내 안구를 뽑아버리지 않았다. 볼 수 없어도. 보지 못하는 안구는 물과 나 사이를 영원히 탐색하고 있다. 수만 방울의 물이 내 몸을 이해한 것처럼 나는 물방울과 나 사이, 혹은 물방울과 물방울 사이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당신이 떠난 물의 표면에 손바닥을 가만히 대어보던 나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까만 당신의 두 우주에 내가 자살하던 밤. 맨 몸으로 방바닥에 누워 검은 핏속에서 솟아오르는 노란 부레들을 잡느라 온 몸을 들썩였다. ‘그 두 우주가 견디고 있는 고백은 무엇인가요. 고백이란 우주를 떠돌다가 이해해주는 오직 하나의 행성을 만나 세상이 끝날 때까지 떠나지 않는 달인가요.’ 검은 물에도 노란 부레가 들끓는 시절이 오면 사라지지 못한 시체가 전설이 되어 떠오른다. 늦은 고백처럼. 왜 검은 바다는 하얗게 스스로 멍들고 있는 걸까. 바다에겐 멍이 하얀 색일지도 모른다. 우린 아무리 부딪쳐도 가루가 될 수 없는 파도가 치는 세계에 살고 있다. 부딪쳐 방울지다가도 또 다시 하나가 되고 마는. 물방울과 물방울과의 관계를 설명하기 전에 하나가 되고 하나에 대해 말하기 전에 또 다시 방울로 흩어지는. 시를 쓰는 일은 이런 일인지 모른다. 몇 몇의 단어들만이 소금으로 반짝일 때까지 하얀 멍을 견디는 일. 검은 물은 빗방울이 되어 세계와 자신의 사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모로 누었다. 그러자 장판에 붙어 있던 살이 쩍하고 갈라졌다. ‘아!’하고 눈을 감아 그 소리를 삼킨다. 검은 피가 고동치면서 독이 진해졌다. 그리고 검게 붉은 핏 속에서 노란 부레가 올라왔다. 잠수병의 통증이 부레를 찢어놓고 노란부레는 꽃분처럼 숨을 뱉었고 그 상처 위에 개나리같은 꽃이 피었다고 느꼈다.
그녀는 이런 글을 그 때는 쓸 수 있을지 몰랐다. 들썩이며 여름 밤을 헤맸고 그녀는 일주일 뒤 머핀을 구워 그의 콘서트에 가서 주었고 사인을 받았다. 싸인을 받은 종이에 볼펜으로 꾹꾹누른 자국을 어루만지며 그녀는 들떴다. 그런 그녀를 보며 주위에서는 속으로 철없이 헛짓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딱히 말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팬카페에 등록하고 트위터를 확인하고 콘서트를 하고 선물을 준비하며 하염없는 나날들을 새털처럼 설레면서 보냈다.
비가 많이 오는 추석, 집에 내려갈 수 없던 그녀는 그의 콘서트를 갔고 돌아오는 길에 출구로 보이는 두 통로를 보았지만 왠지 왼쪽 통로를 이용하고 싶었다. 그리고 왼쪽 계단을 올라가서 코너를 돌자 거짓말처럼 그가 바나나를 먹으면서 나왔다. 그녀를 보자마자 그녀의 이름을 말한 것은 그였다. 그 때 갑자기 한 무리의 여자들이 나타났고 다른 멤버에게 먼저 앨범을 내밀며 수줍게 사인을 받았다. 그는 계속해서 그녀에게 신경을 쓰는 듯 했고 다른 멤버는 ‘웃는게 예뻐요!’라고 써줬고 그녀는 진짜냐고 물었다. 어느 새 다가온 그가 작업멘트를 날린다며 면박을 주며 잠시 고심을 하더니 그녀가 산 그의 앨범에 ‘충성할게요!’라고 써주었다.
그녀는 그런 순간에 항상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 아마 이성과 수많은 순간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그 때 무엇을 해야할지 알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고 그 때는 무심한 마음으로 애써 지나치려 했던 그 말을 과잉해석하며 괴롭고 열에 뜬 나날들을 보낼 것이며 종국에는 그의 노래가 우연히 들릴 때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넌더리 나 할 것이라는 것을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 한 마디 말에 그녀가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면 그 사이의 소개팅에서 그녀가 잦은 실패를 겪지 않았다면 프루스트의 스완처럼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녀는 그를 보며 한 편으로 음악이라는 알 수 없는 힘을 가진, 마음 깊이 닻을 내리는 음악을 만들고 노래한다는 것을 한 없이 동경하기 시작했다. 고3이 되면서부터 치지않았던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기타를 다시 치기 시작했으며 제대로 소리 조차 내지 못하면서 흥얼거리고 주절거리는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그와 같이 무대에 설만한 것은 되지 못했으며 한없이 초라한 자신을 바라보았다. 공간과 악기가 필요하지 않은 글을 써보려고도 했지만 그 어느 것도 쉽게 되지 않았다. 직장에서 그녀는 때로는 웃긴 사람이었지만 그녀는 성격만 예술가스럽다는 평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