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STORY _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녀는 어리석은 짓을 하곤 했다. 5일의 휴가를 받아놓고 홀로 여행을 떠나겠다면서 하루 반을 오로지 머뭇거리는 데 사용했다. 검색하고 여행루트를 짜는 것이 그녀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너무 많은 거미줄같은 생각과 권태와 무기력과 죄책감이 그녀를 잡아 놓고 무의미의 희생양이 되길 바라는 것 같았다. 겨우 가방을 꾸려 기차 시간도 검색하지 않은 채 서울역으로 갔다. 그래야만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떠나지 못할 터였다.
그 때는 연애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시절이 지난 후, 몇 년이 흐른 때였다. 12월이었고 잔뜩 흐렸다. 남쪽으로 갈 생각이었다. 가기로 한 도시는 그녀가 맘속에 품었으나 그는 그 속에 없었던 남자의 고향이었다. 그를 알게되기 전 그녀는 앞으로 사랑을 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고 고심했고 영화와 소설을 읽으며, 예를들어 이누도 잇신의 <구구는 고양이다>를 보며 독신의 고혹적인 나이의 만화가가 남성의 유혹을 뿌리치는 모습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답답하고 안타까워 한숨을 쉬었고,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에 대해 읽으면서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의 애인을 소설 속에서 불태워죽인다는 걸 읽고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꼈다. 역시 사랑이란 것은 맨 살이 타듯 고통스러운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사랑받길 원하고 사랑하려고 하는 것은 살아가는 일과도 비슷했고 그녀는 목표없이 무의미한 하루를 보내며 지쳐가고 있었다.
조금은 우울한, 쾌락없는 하루 속에서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조금의 위안을 얻었던 것은 달콤한 빵이었다. 그녀는 하얀 탄수화물이 주는 안락함을 즐겼고 치즈가 박혀 있는 식빵이나 페스츄리처럼 겹겹이 벗겨지지만 씹다보면 고소하고 달콤한 맛을 주는 것에 항상 매료 되어 있었고 싸구려 커피를 마시는 일은 졸음과도 같은 일상에서 공기를 마시는 것만큼이나 습관적이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졸렸다. 그때는 그 것이 우울증의 증상이라는 것을 그녀는 몰랐다. 의욕이 없는 게으른 삶을 사는 것이라고 채찍질을 할 뿐이었지만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채찍모양의 상처만 생기는 나날들이었다.
어느 순간 그녀는 직장을 다니기 전보다 살이 쪘고 권태와 무료함 속에서도 뜨거운 여름은 계속 되었고 누군가의 살쪘다는 한 마디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 퇴근 후 두 시간 남짓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오면 그녀는 무기력감을 이겨내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밖으로 나갔다. 때때로 그 무기력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집 앞에는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자연을 누릴 수 있는 인공 숲이 있었다. 인공 숲은 조금 어두웠지만 운동하는 주민들이 종종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여름의 한산함과 눅눅함과 습기가 있는 숲으로 가자 사람들이 많았다.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렸다. 인공 숲에서 제공되는 한 여름의 콘서트였다. 바로 앞에 살았지만 그런 콘서트가 있는 줄도 몰랐다. 한 쪽 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알지 못하는 인디 밴드가 노래를 불렀다. 마른 몸에 죽도 못 얻어먹은 것 같은 사내가 나와 청량하지만 흐를 듯 흐르지 않는 고인 말들의 노래를 불렀다.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묵혀있던 먼지 묻은 마음이 삐걱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잘생기진 않았지만 노래하는 남자들이 몰고 다니는 뻔한 구름처럼 여자들이 그 주변에 있었다. 냉소적인 마음 속 깊이 삐걱대는 소리가 껄끄러웠다. 공연이 끝나고 그녀는 숲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코너를 돌았을 때 밴 앞에서 도넛 박스를 선물로 받은 그가 서 있었다. 흥이 남았는지 까부는 모습이었다. 밴에 자리를 잡았고 밴 안에는 소등이 켜있었다. 몸을 돌려 자리를 잡고 앉은 그가 정면을 쳐다봤다. 그녀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것이 이번 여행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그의 동공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 20미터 남짓되는 거리동안 그와 그녀는 서로에게 고정된 시선을 떼지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지나갔고 그 옆을 지나갈 때 실망의 느낌을 받았다고 나중에 말했다. 물론 그 누구도 믿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