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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a kim Nov 06. 2019

03 '첫번째서랍'을 열다

이름이 곧 철학이랴

03 '첫번째서랍'을 열다

- 이름이 곧 철학이랴



사실 이름을 짓는데 들인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던 중 생뚱맞던 타이밍에 이름이 떠올랐고, 잊지 않기 위해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해두었다가 나중에 확장시켰다. 그렇게 정해진 이름은 '첫번째서랍'.


이름이 곧 철학이랴. 이름만 지어주는 데에도 전문 회사에 의뢰하여 몇 달의 기간과 그만큼에 상응하는 페이를 지불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면서 무언가에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 뭐 얼마나 있겠냐 싶겠지만 생각 외로 무진장 많다. 팀플을 위한 조별 활동이나 수련회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조 이름과 조장까지, 어떨 땐 조 구호까지 창작해서 앞에서 발표를 해야 했다. 언어유희를 즐기는 민족인 만큼 ~조로 끝나는 이름으로 짓고 싶었던 뻔하고도 뻔한 유희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기도 했다. 브랜딩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 응당 프로젝트 시작의 제일 첫 단계에 자리 잡은 일이었으며, 스스로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하고 싶었다. 짧은 이름 안에는 회사(프로젝트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회사)의 목표나 비전까지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고, 억지로 짜 맞추는 듯한 전개는 지양하기로 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지만 누가 뭐래도 내 거니까! 곤조를 유지했다.


그리하여 브랜드 네이밍에 내가 세운 원칙은 다음과 같았다.

하나, 운영 철학이 반영되어야 한다.

둘, 어설픈 영어를 쓸 바에 한글 이름을 짓겠다.

셋, 남녀노소 모두가 들었을 때 거리낌 없이 수용범위가 넓어야 한다.

넷, 시간이 지나도 오글오글한 감성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몇 년 전, 서울시에서 주관한 대학생 창업캠프에 참가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내 나이는 20대 초반이었다. 랜덤으로 짜인 조에서 2박 3일 동안 창업 아이템을 정하고 밤새 기획서를 만들어 피칭을 해야 하는 세미 해커톤 행사였는데 역시나 그 자리에서도 가장 처음 결정해야 하는 것이 '아이템'과 '이름'이었다. 우리 조가 정했던 아이템은 신진 디자이너들을 위한 온라인 갤러리 중개 플랫폼(입상했었다 뿌듯)이었고, 이름은 [꿈틀]이었는데 이 역시 내가 작명한 이름이었다. 꿈을 담는 틀이자, 꿈틀꿈틀 열정이 움직인다는 중의적 표현으로 지었고 이때 역시 위에서 세운 원칙의 1,2,3번을 적용했었다. 그땐 참 잘 지었다고 스스로 뿌듯해했었는데 몇 년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니 다소 수학 문제집 이름 같고 조금은 얼굴이 상기될 만큼 부끄럽기도 했다. 지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니 참 20대 초반 대학생스러운 네이밍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엔 4번의 원칙을 추가하게 된 것이다.


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아이템을 실행할 것이고, 아이디어에서만 그치지 않고 꼭 실현해보고 싶었다. 문득문득 '이런 것들이 있으면 어떨까?'하고 떠오르던 단순하면서 엉뚱하기도 한 아이디어들이 빛을 보길 원했다. 소중하게 모셔두었다가 적절한 타이밍이 오면 어디에 두었는지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꺼내보고 싶었다. 그 마음을 함축하여 표현한 이름이다. '첫번째서랍'.


나중에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나서 누군가가 내게 "'첫번째서랍'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탄생했나요?"라고 물었다. 물어볼 줄 몰랐던 질문이었으나 물어봐주어 기쁜 질문이었다. 몽글몽글한 감정이 가득한 채 나는 대답하였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것들, 먹고 싶은 것들 등등을 생각날 때마다 적어두던 메모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메모장을 항상 책상의 첫 번째 서랍에 넣어뒀어요. 소중한 비밀 일기장부터 매일 쓰는 열쇠, 지갑 등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물건들이 보통 첫 번째 서랍에 보관되잖아요. 저를 찾아주는 분들에게 그렇게 소중하고 중요하며 가까운 존재이면서, 저 스스로에게는 꿈과 목표를 흘리지 않고 차곡차곡 담아 기획하는 존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첫번째서랍'이 빛을 보게 되었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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