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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a kim Dec 18. 2018

01 시작은 단순하게, 평범하게

 관련 전공자가 아닙니다.

01 시작은 단순하게, 평범하게

관련 전공자가 아닙니다.




풀코스 마라톤의 완주는 관뚜껑에 못이 박아질 때까지 두고두고 자랑하고 싶은 경험이다. 자발적으로 출전하게 될 것이라 상상도 하지 못한 자가 심지어 해외에서 메달을 따내고 돌아왔을 경우는 더욱 그렇다! 선 경험자들이 해외 마라톤 대회의 메달은 국내 대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멋지고, 그 메달들 때문에 다른 대회에 또 도전하게 된다고 했다. 맞다. 메달이 정말 크고, 아름다워서 목에 걸고 대회 당일 하루 종일 길을 걸어 다니게 된다. 세계 6대 마라톤 대회(시카고, 뉴욕, 런던, 도쿄, 베를린, 그리고 보스턴) 중 하나인 시카고 마라톤을 그렇게 완주하고 돌아온 2017년 가을에, 멋들어진 이 메달을 걸어둘 그 무언가가 내겐 필요했다. 


서랍을 열고 닫을 때마다 절그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몇 년 전에 나갔던 10K 대회들의 완주메달은 일부가 녹슬어가려고도 했다. 내가 어떻게 받아온 메달인데 어둡고 습한 구석에서 썩히고 싶지 않았다. 메달을 걸어둘 '메달걸이 같은' 인테리어 소품이 갖고 싶었다. 난 자칭 인쇼달(인터넷 쇼핑 달인), 검색어들을 바꿔가며 찾아봤지만 한국에서 파는 비스무리한 것도 없었고, 아마존 해외 직구까지 해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아마존에선 국내 배송이 안되거나, 디자인이 2% 부족하거나, 아니면 벽에 못질을 해야 해서 내 방에 설치가 불가했다. 눈이 빠지게 찾다가 지쳤다. 그냥 내가 만들어서 써야겠다. 그게 #첫번째서랍의 시발점이 됐다.


나는 제품을 디자인하거나 제작하는 일과는 완전 무관한 전공자이다. 내 그림을 그려본 건 고등학교 때 수행평가를 위한 숙제가 마지막이었고, 포토샵 프로그램은 셀카 사진 보정하기 위한 정도의 기능만 야매로 습득했으며, 일러스트와 포토샵의 차이는 당연히 모르고, 3D 도면은 어떤 프로그램으로 그리는지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런 내가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을 만들어보겠다고 두 팔 걷고 시작했더니 능력 대비 욕심을 따라가지 못해 가랑이가 찢어지고 있었다. 


도면은? 소재는? 도색은? 컷팅은? 두께는? 어디서? 얼마가 합리적인 가격인거야? 한 가게에서 모든 과정이 가능한 건가? 누굴 만나야 해? 이거 도대체 어떻게 시작하는거지? 응???????? 물음표 투성이다. 하나도 모르겠다. 인터넷에는 뭐라고 검색해야 하는거지. 일단 금속류로 만들고 싶으니까 금속집이 많은 동네를 찾자. 을지로래. 공장이 있대. 금속 골목이 있대. 어딜 가야 하지. 오 네이버에 몇 개 나오긴 하는데 이런 곳에 알아보는 게 맞는 건가. 전화는 왜 안 받지. 모르겠다! 일단 가보자! 


직장에서 칼퇴하고 부랴부랴 달려갔더니 골목들이 어두컴컴하기만 했다. 이런 느낌은 느와르 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골목에서 칼 들고 달려와 나타날 것 같은데. 공장은 그렇다 치고, 식당들도 다 닫았잖아. 이 동네 뭐야 무서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네라고 중얼거리며 기웃거리니 우연히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알려주셨다. 을지로 이 동네는 아침 일찍 하루 일과가 시작해서 5-6시만 되면 칼 같이 문을 닫는다고. 일하는 사람들이 빠지니 당연히 식당도 열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내일 낮에 다시 오라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속으로 '일하니까 내일 낮에 오긴 힘들고.... 토요일에 와야겠네.'라고 생각하며 돌아섰다. 그리고 글을 읽고 있을 여러분들이 예상하셨다시피 다가온 토요일은 낮임에도 불구하고 며칠 전 저녁에 내가 본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허탕을 두 번이나 하고 나니 오기가 생겼다. 반차 쓰고 온다 내가. 


소중한 반차를 쓰고 온 을지로의 평일 낮, 작업복을 입고 인상이 강하게 생긴 아저씨들 사이로 쭈뼛거리며 '학생작품'이라고 쓰여있는 금속집들을 두드렸다. 최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고자 한껏 웃으며, "사장님~"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바로 "그거 없어요."라는 단호하다 못해 애리는 말이 내 귀에 내리 꽂혔다. 나 뭐 만들겠다고 설명도 안 했는데? 관심법 쓰는 궁예도 아니고, 너무하신 것 아닌가. 이후 방문한 몇 곳에서의 차가운 문전박대를 연달아 당하고 나서 겨우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사장님을 만났다. 마음의 상처로 너덜거리지만 감동하면서 속으로 폭풍 눈물을 흘렸다. 이제 됐다! 손그림 그려간 걸 보여드리며 열심히 설명을 드렸다. 전문용어는 당연히 못 알아 들어서 사장님께 무슨 뜻이냐고 계속 반문했다. 메달을 걸 거라고, 메달걸이라고 부를 무언가를 하나 만들려고 한다고 말씀드리니 수량 1개는 불가능하고, 최소 100개도 많이 양보한 거라고 고개를 저으신다. 100개요? 속에서 흘린 폭풍 눈물이 머쓱하다. 학생작품도 취급하신다면서, 그것도 수량이 그렇게 100개씩이나 하는 건가, 나는 전공자가 아니라서 정말 이 바닥을 하나도 모르겠다!!!!! 내 메달걸이 하나 만드는 게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비전공자는, 게다가 소위 말하는 돈 되는 손님처럼 보이지 않으면 이렇게 무례한 대접을 받을 일인가? 불쾌해하는 것조차 내가 상황 파악을 못하는 행동인 건가? 애초에 욕심이 너무 컸나? 난 그저 메달걸이가 갖고 싶었을 뿐인데?


에라, 모르겠다!!!!!!

"네 사장님. 저 100개 할게요. 그럼 진행해주시는 거죠?"


메달걸이를 제작해서 판매하는 나의 첫 번째 프로젝트, 첫번째서랍의 시작은 비전공자의 단순하고 평범한 오기에서 싹을 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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