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서 홀로서기 한다는 것
예전 어떤 영상에서 영화 평론가 이동진님이 영화 ‘퍼스널 쇼퍼’를 추천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최근 시간이 되어 시청했는데 다소 난해하긴 하지만 특별한 촬영 기교 없이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구성이 인상적이어서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적어보고자 한다.
일단 이 영화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여주인공의 마지막 대사 자막을 보는 순간 몹시 당혹스러웠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브레인 포그가 온 마냥 머릿 속이 멍해졌다.
극 중 모린은 생계를 위해 자질구레한 일들을 맡아 해나간다. 그녀는 자율성이 없이 지시대로 해야 하는 일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러닝타임 대부분 타인의 지시에 의해 행동한다. 유일하게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를 할 때조차 그 목적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현실의 균열 속에서 그녀가 내내 몰두하는 것은 루이스가 보낼 신호이다. 루이스는 모린의 이란성 쌍둥이 오빠로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는데, 영매였던 이들은 생전에 먼저 죽는 쪽이 사후세계에서 다른 한 명에게 신호를 보내기로 약속했다.
같은 영매라 해도 루이스와 모린은 꽤 달랐던 듯 싶다. 루이스는 영매로서 정체성이 확고했던 반면, 모린은 사후세계를 확신하지 못한다. 그녀는 오빠가 했던 말을 되뇌며 영혼과 교감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뭐든 찾아 학습한다.
‘조금 더! 조금 더 보여줄 순 없어?!!’
우연히 영혼을 감지하고서도 그게 루이스임을 확신하지 못해 절규하는데 루이스의 신호를 기다리는 모린의 절박함은 상실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 이상으로 보인다.
예전 꽤 오랜 기간 교회를 나간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내 존재의 의미를 신에게서 찾았다. 매순간 신의 임재는 나에겐 절박한 문제였다. 모린에게는 루이스의 존재가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절실하게 매달렸던 만큼 루이스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는 영화의 마지막, 역으로 강력한 펀치가 되어 그녀와 관람객을 타격한다. 그토록 찾아헤맸던 그 신호는 실제가 아니라 그녀가 만들어온 허상이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는 '나 이외의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이 십계명 중 첫번째 항이다. 그만큼 지키기 어려운 계율이라는 반증일 것이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마음 속에서 가장 강력한 욕구과 소망을 결집시켜 물질보다 단단한 신을 창조해낸다. 불교식으로 무지함 속에서 끝없이 상을 짓고 있는 것이다. 이 '상'은 인간의 의식세계를 어떻게 형성하고 어떻게 지탱할까? 또 언제까지 지속되고 어떻게 붕괴될까?
영화에서 씬이 전환될 때 자주 검정색으로 페이드 아웃되는 것이나 모린이 내내 입고 다니는 검정색 옷은 아마도 자아의 결핍과 두려움, 불안 등 모린의 무지한 상태를 보여주려는 장치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에서 변화가 생기는데 그녀가 처음으로 흰색에 가까운 밝은 옷을 입고 루이스의 신호를 기다리기 위해 머물렀던 장소를 스스로 벗어나는 것이다.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도착한 오만에서도 여전히 루이스의 신호일지도 모르는 것을 감지하지만 마침내 그녀는 루이스에게 갇힌 자신에게서 벗어나 객관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 신호가 자신이 만들어낸 것임을 깨닫게 된 순간, 그녀는 처음으로 허공이 아닌 정면을 응시하고 화면은 하얗게 페이드아웃된다.
영화의 첫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첫 장면 역시 모린의 정면 모습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모린과 라라가 탄 차가 멀리서부터 미끄러지듯 루이스 집 대문에 이르면 모린이 차에서 내려 오랫동안 잠겨있던 대문을 여는데 이는 앞으로 자신을 찾기 위해 풀어나가야 하는 여정을 암시하는 듯 하다. 이 여정은 루이스에게서 답을 구하는 것으로 출발했지만 그 답은 결국 루이스를 떠나고 나서야 찾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모린이 응시한 그곳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원래부터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는지 모른다.
비록 그 사실이 모든것을 무너뜨릴지라도 이제 진짜 시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