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까라주께"
<경쟁교육은 야만이다>에 편들어주는 글 2
엄마도 깔아주고, 아빠도, 학원 선생님도. 하물며 깔아 주겠다는 알바생도 등장했다.
뭔 일?
엄마들이 수능원서를 쓰고 있단다. sns에 인증까지 하면서. 거기에 아빠도 질세라 합세하고, 학원선생님들도 애틋한 마음으로 함께하고, 알바생도 이때를 놓칠세라 끼어들었다는 뉴스다.
왜?
이과생의 사탐 응시가 가능해지면서 화학, 물리 과목의 응시자가 대거 빠져나갔다. 응시자가 적으면 1등급 받기가 힘들어지니 궁여지책으로 빠져나간 응시자 수를 채워보겠다는 눈물 나는 ‘모성’이고 ‘부성’이다.
가능한 일인가?
통계학자들은 효과는 아주 미미할 것이고, 표준점수가 어떻게 잘못되면(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불가) 결과적으로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한다. 변호사들은 혹여 조직적으로 움직이면 법적으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참으로 눈물겹다. 그들을 어찌 탓하겠는가. 그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보기에 따라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해프닝은 누더기 같은 입시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저기 빵구가 많이 났으니 이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다. 다만 그 '귀여움'이 사회도 누더기로 만들고 있어서 문제다.
왜 할 수 있는데 안 하겠는가? 대학의 서열이 아이들 인생의 서열이 된다고 온 사회가 믿고 있고 그 체제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는데. 무슨 짓이라도 할 판인데 이 정도야 껌이지 않겠는가? 하루만 고생하면 되는데. 대신 쳐주고 싶은 심정인데 이렇게라도 도움이 된다면야 물구나무를 서서 시험을 본다 해도 볼 판일 거다.
<경쟁교육은 야만이다>에서 김누리교수는 대학입시를 컴퓨터로 채점하여 줄을 세우고, 수능이 끝나면 난이도를 분석하여 떠들어 대는 모습을 개탄하고 있다. 우리 교육의 목표가 대학입학이 아니라 ‘존엄한 인간, 성숙한 시민, 개성적인 자유인’을 키우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모들의 ‘기발한 깔아주기’는 결코 성숙한 시민의 모습은 아니지 않는가.
아무도 존엄이니, 성숙이니, 자유니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토양이 너무 푸석푸석하다. 뿌리내리기에도, 영양을 빨아들여 자라기에도 턱없이 취약하다. 토양을 돌보는 일이 시급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