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다소 강하게 들린다. 그러나 책을 읽다가 보면 더 세게 말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테오도르 아도르노라는 독일의 철학자가 20세기 초 <성숙을 위한 교육>에서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독일은 그 정신으로 1970년 교육개혁을 단행하여 현재까지 고수하고 있다.
다음 말을 생각해 보자.
‘경쟁은 불가피하고 능력주의는 평등하며 공정은 정의롭다.’
이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면 이미 의식이 언어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증거다. 경쟁, 능력주의, 공정이라는 단어에 대해 고정된 관념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지금껏 우리 교육이 만들어 온 결과물이고 현재 한국교육을 지배하고 있는 사회적 인식이다. 이 책의 목적은 현재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단단히 얼어붙은 이 세 단어에 균열을 만들고 종국에는 본래의 의미를 찾자는 것이다. 그 균열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그래서 저자는 2장 ‘야만의 트라이앵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경쟁은 야만이고, 능력주의는 폭군이며, 공정은 정의의 덫이다.’
한국, 중국, 일본, 미국의 고등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다. “당신들에게 고등학교는 어떤 곳이었는가?” 선택지는 1. 함께하는 광장 2. 거래하는 시장 3. 사활을 건 전쟁터. 한국 학생의 80퍼센트 이상이 3번을 선택했다. 제국주의 교육의 잔재를 우리에게 남긴 일본은 오래전에 교육의 방향을 유럽 쪽으로 옮겨 그들은 76퍼센트가 1번을 선택했다. 경쟁이 치열하기로 악명 높은 중국도 3번에 답한 비율이 40퍼센트에 그쳤다. 우리 경쟁교육의 야만스러운 결과지요.
능력주의를 폭군에 비유한 이는 '정의는 무엇인가'를 쓴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덜 교수다. 그는 트럼프현상을 설명하면서 '미국의 능력주의는 사회적 비극의 모든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면서, 미국 사회의 불평등은 결국 능력에 대한 공정한 보상의 결과라고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이 개인의 노력여하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재력에 의해 결정되는 증거를 제시한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갈등이 심한 나라가 된 것이나, 사회적 노동을 경사하는 풍조가 팽배한 것이나,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것이나,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가 된 것'은 '모두 능력주의라는 폭군이 파괴한 사회적 폐허의 모습'이다.
조국사태 이후 학교현장에서도 쉽게 듣는 말이 '공정'이다. '공정해야 한다'는 마술의 언어가 되어 모든 것을 눌러버린다. 그럼 뭐가 문제인가. '한국에서 공정 개념은 현실에서 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을 은폐하는 거대한 기만의 논리로 사용되고' 있다. '공정이라는 개념 자체는 항상 경쟁을 전제하고 있어 애초에 연대와 협력의 세계를 배제하는 말’이다.
그리고 ‘불공정을 비판하면서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중에 ‘차별에 찬성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가 그들의 ‘논리적 핵심’이 ‘정의가 아니라 공정’이라서 그렇다. 그들은 쉽게 이렇게 말한다. “차별받는 게 억울하면 공정하게 시험에 합격해서 정규직이 돼라”, “우리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공정한 시험을 통해 일류대학에 들어왔다. 따라서 우리가 특권을 갖고 승자독식의 권리를 누리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즉, 자신들이 치른 ‘경쟁의 강도에 따라서 보상을 해달라’는 속내인데 작가는 여기서 일침을 놓는다. ‘사회적 보상은 사회적 가치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이지, 경쟁의 치열도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한 마디로, 한국사회에서 공정은 ‘아주 불의한 방식으로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또한, ‘한국사회에서는 공정이 정의를 가로막는 알리바이로도 기능을 한다.’ 사회의 불평등 개선과 정당한 권리에 대한 요구가 ‘불공정’이라는 덫에 걸려 버린다. 극단적인 예가 상대평가를 내세운 시험 방식이다. 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수능을 기계가 채점해야 하고, 학생들의 성적 격차를 명확히 하여 정확하게 줄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경쟁 교육은 한국인을 잠재적 파시스트로 만들었고, 능력주의는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전락시켰으며, 공정주의는 한국 사회를 불평등과 차별의 사회로 고착시켰다.’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울음이 터져나왔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단어만 보면 그랬다. 그 사실을 전화 온 친구에게 전하면서 목이 매였다. 공립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 무기력함도 느꼈고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불쌍해서, 탈출구 없는 쳇바퀴 속에 갇혀 힘들지만 옳은 일을 한다고 애쓰고 있는 것이 헛짓거리라서 더 그랬다.
저자는 독일교육에서 해법을 찾아 제시하고 교육의 근본을 바꾸자고 절절한 어조로 말한다. 해결책으로 대학시험 폐지, 대학 서열화 폐지, 대학 등록금 폐지를 제안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이상적’인 제안으로 생각되었지만, 사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일상’으로 하는 일이니 우리라고 못할 것도 없다는 쪽으로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한번 해 보고 싶어 졌고, 혹시 광화문에서 그 일로 촛불시위라도 한다면 바로 뛰쳐나가 힘을 보내고 싶다. 더 많은 이들이 함께 책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우리 교육의 목표가 대학입학이 아니라 ‘존엄한 인간, 성숙한 시민, 개성적인 자유인’을 키워내는 것임을 모두가 합의하고 힘을 모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