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마케팅 대상에 청소년은 제외되기를 바랍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교실은 어수선하다. 진로 관련 행사도 있고 융합수업에다 도서관에서도 다양한 행사를 한다. 반 전체가 참여하기도 하지만 개개인이 신청해서 참여하고 나면 교실에 남아있는 학생이 얼마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지난주는 대만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교 간 교류활동을 하러 방문하는 바람에 설렘과 흥분으로 공기가 더 들떠 있었다.
1학년 8반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 몇 명을 제외하고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문을 꼭꼭 닫아두어 후끈한 열기도 느껴졌다. 그 열기가 히터에서 나오는 것만은 아님을 아이들의 흥분된 분위기에서 알 수 있었다. 책상 위에 핸드폰을 올려놓고 손가락을 현란한 속도로 두드리고 있는 아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아니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볼이 발갛게 상기된 채 손가락을 움직이며 날 본체만체한다.
"너희들 뭐 하니? 얘들아 내가 왔어. 나 선생님이야. 내가 왔다니까."
"선생님, 저희 지금 매우 중요한 걸 하고 있어요. 저희 이거 꼭 해야 돼요. 선생님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그니까 도대체 뭘 하는 건데 다들 이러고 있어?"
"눈싸움요."
"눈싸움? 뭔 소리야?"
"이거 이기면 통닭 한 마리씩 받아요. 한 사람당 한 마리씩 줘요."
"단체로 눈싸움 게임을 하는 거야?"
"지금 경*고 2학년 *반이 1등이에요. 저흰 12등인 데 따라잡아야 해요."
들어보니 사연은 이랬다. 토스(은행어플)에서 그날 오전 12시부터 19세 이하만 참여할 수 있는 게임을 올렸다. 단체로 팀을 만들어 눈싸움을 해서 점수를 매기고 1등을 하면 참여자 모두에게 통닭을 한 마리씩 준다는 것이다. 화면에 사람이 나오면 손가락 터치로 눈덩이를 사정없이 던진다. 이기면 점수가 올라간다. 그 상대가 어느 학교인지도 나온다. 북극곰과 펭귄이 중간에 나타나기도 하는데 멸종위기 동물이라 혹여 건드리기라도 하면 벌칙을 받고 점수를 잃는다.
시간은 한창 수업을 하고 있을 11시 반 경이었다. 그런데 참여한 팀을 보니 고등학교가 많고 초등학교도 있었다. 고등학생들은 초등학생들이 공부는 안 하고 참여했다며 한 소리들을 한다. 기가 막혀서.
"와, 우리 10등이다."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친다. 서울시내의 여러 학교에서 반별로 대항을 하고 있었다. 우리 학교 2학년도 여러 반이 참여하고 있었다.
"샘, 2학년 6반 가셔서 선배들 이거 못하게 좀 해주세요."
얘들아, 아무리 내가 허당이지만 그런 부탁은 하면 안 되지. 허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그럴까. 걔네는 몇 등이야?"
" 7등요."
"올라가서 못하게 혼내주고 올까?"
"네네."
아주 신이 났다. 남학생 여학생 구별 없이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도 구별 없이 한 마음이 되어 통닭을 받겠다는 일념으로 한 팀이 되어있다. 오랜만에 구경하는 팀워크이다.
아, 이걸 어쩐다. 말려서 멈추기엔 너무 몰입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구경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슬슬 승부욕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거 선생이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한편에서 경고음이 들어오지만 경*고를 이겨야 한다는 승부욕이 더 앞서 나간다.
"아! 경*고. 1000점씩 막 올라가요. 반 전체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아요."
"얘들아 힘내. 경*고 한번 이겨보자."
"경*고는 힘들 것 같아요. 차이가 너무 많이 나요."
"내가 학부모인 척 전화 한번 할까. 저, 우리 아들이 교실에서 단체로 게임을 하는 것 같은데 선생님들 알고 계신가요, 이렇게 말해서 한번 흔들어 버릴까?"
아이들이 와 웃으며 그렇게 한번 해보라며 소리친다.
화면에 작은 하트가 3개 있는데 게임에서 지면 하나씩 사라진다.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하트를 채우는 방법이 기가 막힌다. 다른 친구에게 카톡으로 공유를 하면 하트가 살아난다.
우와! 토스의 기가 막힌 마케팅 전략이다. 3만 원짜리 통닭을 최대 30명에게 쏜다 해도 100만 원도 되지 않는다. 그 비용으로 엄청난 홍보를 하고 있다.
"저희 지금 통닭에 목숨을 담보 잡히고 있어요."
한 녀석이 카톡으로 누군가에게 공유한 후, 쓴소리와는 달리 신나게 눈싸움에 열중한다.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오늘 밤 12시까지요."
음, 12시까지는 좀 심한 설정이다. 점심도 거르고, 학원도 거르고 12시까지 할 가치가 있을까? 하다가 지쳐서 나가떨어지겠지. 설마 끝까지 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했다. 한참 신이 나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것 같아서 그냥 두었다. (이거 민원감일지도 모르겠다.)
점심을 먹고 중정을 지나오는데 아침의 눈싸움 용사들이 고양이와 놀고 있었다.
"눈싸움은 어떻게 됐어?"
"그냥 안 하기로 했어요. 2등까지 올라갔는데 경*고는 안될 것 같아요."
"그래. 잘했다. 역시 현명해."
다행히 아이들은 그 한 시간만 하고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사실, 밤 12시까지 계속하기는 무모하게 어리석은 짓이다. 토스의 마케팅팀이 학기말 학교 교실의 파행을 조장하는 것인지, 이미 파행으로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이용해 먹은 것인지 모르겠다. 화도 나면서 거대한 흐름에 압도되어 무섭기도 했다.
얼마 전 읽은 '불안세대'에서는 핸드폰이 청소년에게 끼치는 악영향에 대해 방대한 근거를 제시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었다. 저자가 문제해결을 위해 제시한 방안 중 하나는 '학교에서 핸드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가 있다.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다. 거대 담론이 일어나 아이들 손에서 핸드폰을 뺏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이미 너무 많은 기업과 어른들이 아이들을 장사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는데 말이다.
조만간 학교에서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할 것이고, 내년부터는 학생들에게 디벗이라고 태블릿이 하나씩 주어진다. 이런 흐름에서 '불안세대' 작가의 제안은 공기가 다 빠져나간 풍선처럼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디지털 기기 사용은 이제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절제력과 자제력일지도 모른다. 그날도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한 두 번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나면 앞으로는 무자비한 마케팅에 끌려 다니지 않게 되고, 필요한 것을 골라낼 수 있는 안목도 키워지지 않을까 기원해 본다.
근대 경*고 2학년 *반 녀석들은 통닭을 먹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