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술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정지아작가의 에세이를 읽다가

by 오드리

굴전과 어묵탕이 있는 소박한 밥상이었다. 아빠는 미리 식탁에 앉아 500ml 생수병에 덜어 놓은 말간 소주를 한 잔 따르신다. 아무도 챙겨주지 않기에 그것만은 꼭 당신이 챙긴다. 김치용기의 뚜껑을 열며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응원해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꿋꿋하게 내 길을 가겠다는 절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자작하는 한 잔의 술이 생의 마지막 남은 결기처럼 다가와 그 쓸쓸함에 가슴이 아렸다.

이제 엄마도 아무 말 안 하신다. 얼마 전 한바탕 소동이 있고나서 부터다. 평생 충치 치료 한번 안 받았던 아버지가 임플란트를 하게 되셨다. 그동안 금주령이 내려졌고 잘 지키셨다. 엄마는 아빠가 술을 안 드시니 정신도 맑고 걸음걸이도 힘이 있다며 ‘칭찬’하셨다. 내친김에 이제 술을 그만 마시기를 기대했는데 그럴 리가 없다. 치료가 끝난 다음날, 산책 나갔다 돌아온 아빠 손에 까만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뭘 사 왔어요?”

“응. 그 뭐.”

“술 사 왔구먼. 안 마시니까 상태가 좋다 했더니. 이참에 끊으면 좋을 긴데.”

“얼마나 살 거라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못해요. 이제부턴 내 하고 싶은대로 할 테니 내 하는 일에 간섭 마소.”

맙소사! 그러곤 베란다에 있는 아빠 전용 냉장고 문을 열고 비닐에서 소주를 꺼내 담으셨다. 보고 있던 엄마는 저녁으로 준비하던 양미리 찌개를 그대로 둔 채 단호하게 한 마디 남기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좋아요. 뭐, 지금부터 내 일체 간섭 안 할 테니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소.”


그 담날 우연히 들러보니 엄마는 24시간째 문을 잠근 채 단식 중이고, 아빠는 이해 불가라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엄마는 아빠가 말한 ‘내 하는 일에 간섭’ 말라는 선언을 ‘아무것도 해주지 않겠다’로 자체 해석하고 파업 중이었다. 이 노인들이 도대체 신혼도 아니면서.


“아무것도 안 하니 너무 좋다. 하루 종일 누워 있으니 허리도 안 아프고. 배도 안 고프다. 이대로 곡기 끊고 이참에 그만 갈란다. 요대로 죽으면 얼마나 편하고 좋겠노.”


결국 환갑 넘은 딸이 울면서 신파극을 연출한 후에 사태는 마무리되었다. 아빠는 진정한 반성은 아니지만 엄마한테 사과했다. 다소 엉성했지만 같이 잘 지내고 싶다는 진심은 느껴지는 목소리로. 엄마는 느닷없는 딸의 눈물 바람에 놀라 그냥 참기로 하신 듯했다. 나는 자꾸 늙어가는 부모님이 안타까워 눌러뒀던 응석을 이때다, 하고 한바탕 터트렸고 내내 가슴이 축축했다.


아빠는 하루 종일 있어도 말 한마디 없는 분이시다. 장황한 말도 못 하시고, 논리 정연한 말도 못 하시고, 정겨운 말은 더더욱 못 하신다. 아빠가 눈을 마주치고 ‘우리 딸은 커서 뭘 하고 싶노?’ 물어본 적이 있다. 이 짧은 질문도 거나하게 술을 한잔 걸치고 들어오셨을 때 하셨다. 웃는 표정은 낯설었고 마주 잡는 손은 지나치게 뜨거웠다. 술의 힘을 빌어야 자식에게도 다가오셨다. 40대부터 당뇨가 있으셨고 큰 키가 휘청거리게 마르셨으니 혹시 술 마시다 일찍 돌아가실까 걱정되었다. 당뇨와 심장약을 복용하시면서 지금껏 매일 반주를 고집하신다. 가족들이 옆에서 아무리 성화를 해도 아빠의 술을 향한 애착은 끊을 수 없다.

정지아의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를 재미있게 읽어 내려가다가 이 부분에서 멈추었다.

‘술 없이 말을 시작하고, 술 없이 누군가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게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어렵다. 그래서 술을 마신다.’


문득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왜 못해.’라는 삑사리난 문장은 이런 의미였으리라. 천성이 순박하고 패기보다는 성실함으로 살아온, 누구와 큰 소리 내며 싸울 줄도 모르고, 그렇다고 말로 풀 재주도 없는 사람이었을 아빠에게 술은 얼마나 반가운 존재였을까.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던 젊은 시절의 세찬 물결 속에서, 술 한잔이 들어가면 피가 돌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말을 섞었을 것이다. 술 힘으로 속에 든 말을 뱉어내며 나약한 자신을 세우고, 가족을 건사하고, 친구를 사귀고, 사회에서 부여받은 몫도 해내셨을 것이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으니 몸은 여전히 술을 필요로 한다. 아마 뇌에 각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술이 들어가야 내 몸에 피가 돈다’고. 피가 돌아야 사는 것이니까. 끊으래야 끊을 방도가 없다. 그게 의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술잔을 입술에 대고 한 잔 털어 넣으시고 말씀하신다.

“반주 한잔은 보약이야.”


의학적으로 그럴리는 없겠지만 아빠 말씀이 맞을지도 모른다. 아빠한테는 달디 단 소주 한 잔이 에너지 드링크일지도 모른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는 이렇게 한 마디만 했다.

“술 드실 때 안주도 든든히 드세요. 여기 굴전도 드시구요.”


아빠의 모든 걸 쏙 빼닮은 나는 불행히도 술을 못 마신다. 정신줄을 놓고 이성의 끈을 끊어버린 채 퍼내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삶이 건조하고 파삭한 느낌이 들 때는 술을 들이켜면 촉촉해질 것도 같은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 대신 글을 쓴다. 나에게 글쓰기가 술이었구나! 그러고보면 다 살길이 있다.

정지아의 술 예찬에 이런 부분도 있다.


‘술은 스트레스를 지우고 신분을 지우고 저 자신의 한계도 지워, (중략) 우리를 날아오르게 한다. 깨고 나면 또다시 비루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지만 그러면 또 어떠한가. 잠시라도 해방되었는데! 잠시라도 흥겨웠는데!’


아빠도 그 기억으로 술을 찾으시겠지. 해방감, 흥겨움에 대한 기억. 자신의 한계를 넘어 호기를 부려 보던 기억, 스트레스가 한방에 다 날아가버리던 기억. 한 잔의 반주로 젊은 시절 그 기억을 소환할 수 있다면 가성비는 매우 높다. 그 한 잔이 90을 향해가는 당신 몸에 보약으로 작동하는 기적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