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가지고 아이들과 실랑이 하다가
천장 가운데 매달린 네모난 에어컨에서 나오는 냉기가 교실 구석구석까지 스멀스멀 퍼진다. 몇몇 학생은 담요를 머리까지 덮어쓰고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앉아 있다. 에어컨 네 면에 있는 통풍구마다 냉기를 더 멀리 보낼 수 있도록 날개 장치가 덧붙어 있다. 교탁에 서 있으면 바람이 얼굴 정면으로 불어와 얼음조각이 되는 것 같다.
에어컨 바로 아래에 앉은 Y를 부른다. 눈을 치켜뜨고 쳐다본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커다란 레버를 돌리듯 손가락을 모아 앞쪽으로 움직여 보인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쳐다보더니 말없이 일어나 의자 위로 훌쩍 올라가 날개 장치 앞쪽을 툭툭 쳐 방향을 뒤쪽으로 바꿔준다. 고맙다,고 말하며 양쪽 팔뚝을 아래위로 여러 번 쓸었다.
흔한 교실 풍경이다. 에어컨 온도를 조금이라도 올리려 하면, 남학생들 틈에서 불만 섞인 소리가 터져 나온다. “라떼는 말이야”, “지구가 땀을 흘리고 있어”, “온난화가 심각해” 같은 말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복도가 찜통일 때는 불평은커녕, 모두가 청량함을 축복처럼 누린다. 에어컨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그러나 살긴 살았다. 내가 학창 시절을 보낸 곳은 대구다. 맞다, 대프리카! 지금은 녹지화 노력 덕분에 평균 기온이 3도 정도는 낮아졌다고 한다. 40~50년 전 그곳은 맨땅과 아스팔트가 반사하는 열기로 숨이 턱턱 막히게 더웠다. 한여름에 38도, 39도는 예사였다. 그런데 왜 그리도 운동장 조회를 했는지, 여름 아침 땡볕 아래 아이들이 픽픽 쓰러지곤 했다.
지금과 비슷한 크기의 교실에 60명이 넘는 다 큰 처자들이 지나다닐 틈도 없이 꽉 들어차 있었고,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한 대조차 없었다. 책받침으로 부채질이라도 하면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분들은 정말 안 더우셨을까? 겨드랑이 땀이 팔꿈치를 타고 내려와 바닥에 뚝뚝 떨어지곤 했다. '라떼는' 그러고도 공부했는데, 지금 아이들은 과연 견딜 수 있을까.
지난주, 서울이 117년 만에 최고 기온을 경신한 날, 1학년 교실 세 반의 에어컨이 동시에 고장 났다. 학교는 비상사태가 되어 해당 학생들을 특별실로 이동시켜 수업을 받게 했다. 마치 화생방 훈련이라도 하듯 신속하게 움직였다. 에어컨이 모두 꺼졌다면, 아마 학생들을 조기 귀가시켰을지도 모른다. 요즘 아이들은 더위를 견디는 힘이 약해진 걸까? 설마.
에어컨이 있는데 왜 안 틀겠는가. 없으면 또 없는 대로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조금 힘들겠지만. 그 시절에도 에어컨이 있었다면 당연히 사용했을 것이다. 없었으니 못 썼던 것뿐이다. 사람은 상황에 적응하는 힘이 실로 강하다. 하지만 에어컨을 가동하면 실외기가 뿜어내는 열기로 공기는 더 더워지고, 악순환은 계속된다. 누구도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우리는 시원함을 찾아 다시 에어컨을 켠다.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