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 사람들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서양미술사 : 동굴벽화부터 동시대 미술까지

by 윤지원


미술관에 가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지 않나요?



저 그림은 왜 저렇게 그렸을까, 이 작품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하는 물음 말이죠. 사실 미술작품은 그 시대 사람들의 의식과 세계관을 담은 거울이에요. 오늘은 각 시대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살펴보려고 해요.





동굴 속 최초의 의식 :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


약 4만 년 전, 프랑스 남부 쇼베 동굴(Chauvet Cave)의 어두운 벽면에 누군가 동물들을 그렸어요. 프랑스 남서부 라스코 동굴(Lascaux Cave, 기원전 17,000년경)과 스페인 북부 알타미라 동굴(Altamira Cave, 기원전 15,000년경)의 벽화들도 마찬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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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 쇼베 동굴 | 프랑스 남서부 라스코 동굴 | 스페인 북부 알타미라 동굴



이 그림들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었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주술적 의식이었어요.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거나, 동물의 영혼과 교감하려는 시도였죠.



흥미로운 건 이들이 동굴 깊숙한 곳, 햇빛이 전혀 닿지 않는 곳에 그림을 그렸다는 거예요. 미술사학자 데이비드 루이스-윌리엄스(David Lewis-Williams, 1934-)는 이런 장소를가 현실 세계와 영적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로 여겼다고 주장했습니다. 동굴벽화는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행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이죠.





신을 위한 질서 : 고대 이집트메소포타미아


기원전 3000년경부터 인류는 문명을 건설하기 시작했어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미술은 명확한 목적을 가졌답니다. 바로 영원과 질서를 표현하는 것이었죠.



이집트 미술을 보면 모든 인물이 옆모습인데 눈은 정면을 향하고, 어깨는 정면인데 다리는 옆모습이에요. 이상하지 않나요?

The queen playing chess.jpg <체스를 즐기는 왕비 The queen playing chess/Queen Nefertari Playing Senet>, 기원전 1255



하지만 이건 실수가 아니에요. 이집트인들은 대상의 가장 특징적인 모습을 모두 담으려 했거든요. 그들에게 중요한 건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게 아니라 '아는 대로' 그리는 것이었어요.



기원전 1353년부터 1336년까지 통치한 파라오 아크나톤(Iknaton)(혹은 아케나톤 Akhenaten, 아멘호테프 4세) 시대에는 잠깐 변화가 있었어요. 아마르나 양식이라고 불리는 이 시기의 미술은 이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웠죠. 하지만 그가 사망한 후 다시 전통 양식으로 돌아갔답니다. 이집트인들에게 미술은 변화보다 영속성이 중요했거든요.

Akhenaten.jpg Akhenaten, Nefertiti and their children





인간의 발견 : 고대 그리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인간이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된 거죠. 철학자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기원전 490-420)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선언했어요. 이런 사고의 변화가 미술에도 반영됐답니다.



그리스 조각가들은 완벽한 인체 비례를 찾기 위해 노력했어요.



폴리클레이토스(Polykleitos, 기원전 5세기 활동)는 <도리포로스(Doryphoros)>라는 작품에서 이상적 인체 비례를 제시했죠. 그는 "아름다움은 수많은 숫자들의 조화에서 나온다"고 믿었어요. 키의 1/7이 머리 크기여야 한다는 식의 수학적 비율을 정립했답니다.

Doryphoros4.jpg <도리포로스(Doryphoros)>



기원전 4세기 프락시텔레스(Praxiteles, 기원전 400-330 활동)의 조각들은 더 나아가 인간의 감정과 우아함까지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Aphrodite of Knidos)>는 최초의 여성 나체 조각으로, 여신도 인간처럼 아름답고 관능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줬죠.

Aphrodite of Knidos.jpg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Aphrodite of Knidos)>





권력과 실용의 미학 : 로마 시대


로마인들은 그리스 미술을 사랑했지만, 그들만의 특징을 더했어요. 바로 '사실성'이었죠. 그리스인들이 이상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로마인들은 실제 모습을 중시했어요.



로마의 초상 조각들을 보면 주름, 대머리, 비뚤어진 코까지 그대로 표현했답니다. 이것을 '베리즘(verism, 사실주의)'이라고 불러요. 기원전 1세기의 <토가투스 바르베리니(Togatus Barberini)>를 보면 노인의 얼굴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요. 로마인들에게 이런 사실적 표현은 조상에 대한 존경과 가문의 권위를 나타내는 방식이었답니다.

Togatus Barberini.jpg <토가투스 바르베리니(Togatus Barberini)>





영혼의 시대 : 중세 미술


서기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중세가 시작됐어요. 기독교가 유럽을 지배하면서 미술의 목적도 완전히 바뀌었답니다. 이제 미술은 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문맹인 신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수단이 됐죠.



비잔틴 미술의 모자이크와 이콘(성화상)들은 황금빛으로 빛났어요.



6세기에 건설된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San Vitale, 547년 완성)의 모자이크를 보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Justinian I, 483-565)가 성인들과 함께 묘사되어 있어요. 인물들은 평면적이고 공간감이 없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중세인들에게 중요한 건 영적 진리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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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San Vitale, 547년 완성)의 모자이크



12세기부터 고딕 성당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어요.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Chartres Cathedral, 1194-1220)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은 신의 임재를 상징했답니다. 중세인들에게 빛은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신성의 표현이었어요.





인간의 부활 : 르네상스


14세기 이탈리아에서 놀라운 변화가 시작됐어요. 사람들이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재발견하면서 인간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 거죠.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말 자체가 '재탄생'을 뜻해요.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7-1337)는 중세 미술의 평면성에서 벗어나 입체감과 공간감을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예배당(Scrovegni Chapel, 1305) 벽화를 보면 인물들이 실제 공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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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예배당(Scrovegni Chapel, 1305) 벽화



15세기 초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는 선원근법을 발명했어요. 이건 정말 혁명적인 사건이었답니다.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에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게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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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ippo Brunelleschi (1377-1446) Perspective sketch for Santo Spirito Church in Florence, Italy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는 1435년 <회화론(Della Pittura)>에서 이 원근법을 체계화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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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예술과 과학을 결합했어요. 인체를 해부하고, 빛과 그림자의 원리를 연구했답니다.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 1495-1498)>에서는 원근법을 사용해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든 시선이 집중되게 만들었어요. <모나리자(Mona Lisa, 1503-1519)>의 신비로운 미소는 '스푸마토(sfumato)' 기법, 즉 경계선을 흐리게 처리하는 기법으로 만들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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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 1495-1498)> Santa Maria delle Grazie, Milan, Italy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는 인간의 육체를 신성의 표현으로 봤어요.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1508-1512)의 <아담의 창조>를 보면, 신과 아담의 손가락이 거의 닿을 듯 말 듯한 순간이 포착되어 있어요. 이 장면은 인간과 신성의 연결을 완벽하게 표현했답니다.

1920px-The_Creation_of_Adam_perspective_fix.jpg <아담의 창조> Sistine Chapel, Vatican City





감정의 시대 : 바로크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미술은 더 극적이고 감정적이 됐어요.



바로크(Baroque) 미술은 보는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려 했죠. 가톨릭교회는 종교개혁에 대응해 신자들의 신앙심을 고취시킬 강렬한 미술을 원했어요.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는 강렬한 명암 대비로 극적 효과를 만들어냈어요. <성 마태오의 소명(The Calling of Saint Matthew, 1599-1600)>을 보면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마태오를 비추고 있어요. 이 빛은 신의 은총을 상징하죠. 카라바조는 성인을 이상화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처럼 그렸어요. 더러운 발, 헤진 옷까지 사실적으로 표현했답니다.

1280px-Caravaggio_—_The_Calling_of_Saint_Matthew.jpg <성 마태오의 소명(The Calling of Saint Matthew, 1599-1600)> San Luigi dei Francesi, Rome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의 조각 <성녀 테레사의 환희(The Ecstasy of Saint Teresa, 1647-1652)>는 영적 황홀경을 극도로 관능적으로 표현했어요. 성녀의 반쯤 감긴 눈과 벌어진 입은 신과의 신비로운 합일을 보여주죠.

1920px-Ecstasy_of_St._Teresa_HDR.jpg <성녀 테레사의 환희(The Ecstasy of Saint Teresa, 1647-1652)> Santa Maria della Vittoria, Rome



네덜란드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어요. 개신교가 지배적이었던 이곳에서는 종교화보다 일상을 그린 그림이 인기를 끌었답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1665)>에서 평범한 순간을 영원으로 승화시켰어요.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van Rijn, 1606-1669)은 빛과 그림자로 인간의 내면을 탐구했죠.

1920px-1665_Girl_with_a_Pearl_Earring.jpg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1665)> Mauritshuis, The Hague, Netherlands





이성과 질서 : 신고전주의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사람들은 이성과 질서를 중시했어요. 1748년 폼페이 유적이 발굴되면서 고대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죠. 미술도 바로크의 과도한 장식과 감정을 버리고 고대 그리스·로마의 이상을 추구했답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는 신고전주의의 대표 화가예요.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Oath of the Horatii, 1784)>는 개인의 감정보다 조국에 대한 의무가 우선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명확한 구도, 균형 잡힌 구성, 차분한 색채가 이성의 시대를 반영하죠.

1920px-Le_Serment_des_Horaces_-_Jacques-Louis_David_-_Musée_du_Louvre_Peintures_INV_3692_;_MR_1432.jpg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Oath of the Horatii, 1784)> Louvre, Paris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 1757-1822)의 조각들은 매끄럽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어요. <큐피드의 키스로 되살아나는 프시케(Psyche Revived by Cupid's Kiss, 1787-1793)>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지만 살아있는 것처럼 부드러워 보이죠.

1280px-0_Psyché_ranimée_par_le_baiser_de_l'Amour_-_Canova_-_Louvre_1.jpg <큐피드의 키스로 되살아나는 프시케(Psyche Revived by Cupid's Kiss, 1787-1793)> First version, in the Louvre, Paris,





감정의 폭풍 : 낭만주의


19세기 초, 이성만으로는 인간을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 예술가들이 나타났어요. 낭만주의(Romanticism)는 감정, 상상력, 개인의 경험을 중시했답니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는 낭만주의 정신을 완벽하게 보여줘요. 홀로 서서 광활한 자연을 바라보는 인물은 인간의 고독과 숭고함을 동시에 드러내죠. 낭만주의자들에게 자연은 신의 현존을 느낄 수 있는 장소였어요.

1920px-Caspar_David_Friedrich_-_Wanderer_above_the_Sea_of_Fog.jpeg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 Hamburger Kunsthalle, Hamburg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iberty Leading the People, 1830)>에서 1830년 7월 혁명을 격정적으로 표현했어요. 자유를 의인화한 여성이 프랑스 국기를 들고 민중을 이끄는 모습은 혁명의 열정을 담고 있답니다.

1920px-La_Liberté_guidant_le_peuple_-_Eugène_Delacroix_-_Musée_du_Louvre_Peintures_RF_129_-_après_restauration_2024.jpg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iberty Leading the People, 1830)> Louvre, Paris





현실을 직시하다 : 사실주의


19세기 중반, 산업혁명과 사회 변화 속에서 예술가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는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없으니 천사를 그릴 수 없다"고 말했죠.



쿠르베의 <돌 깨는 사람들(The Stone Breakers, 1849)>은 노동자의 고된 삶을 미화 없이 그렸어요. 당시 비평가들은 충격을 받았답니다. 예술은 아름답거나 교훈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쿠르베는 추하고 비참한 현실을 그렸으니까요.

Gustave_Courbet_-_The_Stonebreakers_-_WGA05457.jpg <돌 깨는 사람들(The Stone Breakers, 1849)> Gemäldegalerie Alte Meister, Dresden (until 1945)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는 <이삭 줍는 사람들(The Gleaners, 1857)>에서 가난한 농부 여성들을 묘사했어요. 그들에게 존엄성을 부여했죠. 미술이 특권층만의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도 다룰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거예요.

1920px-Jean-François_Millet_-_Gleaners_-_Google_Art_Project_2.jpg <이삭 줍는 사람들(The Gleaners, 1857)> Musée d'Orsay, Paris





빛의 혁명 : 인상주의


1874년, 파리에서 한 그룹의 화가들이 전시회를 열었어요. 비평가 루이 르루아(Louis Leroy, 1812-1885)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인상, 해돋이(Impression, Sunrise, 1872)>를 보고 조롱하듯 '인상주의자들의 전시회'라고 불렀죠. 하지만 이 이름은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조 중 하나가 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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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자들은 실내 작업실을 벗어나 야외에서 그렸어요. 그들은 빛이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 그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려 했죠. 모네는 같은 대상을 다른 시간, 다른 빛에서 반복해서 그렸어요. <루앙 대성당 연작(Rouen Cathedral Series, 1892-1894)>이 그 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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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 대성당 연작(Rouen Cathedral Series, 1892-1894)>

Rouen Cathedral, Facade (Morning effect)1892–1894Folkwang MuseumEssen, Germany

Rouen Cathedral, Facade 1 1892–1894 Pola Museum of Art Hakone, Japan

Rouen Cathedral, The Façade in Sunlight1894Clark Art InstituteWilliamstown, USA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는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에서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순간을 포착했어요. 붓터치가 거칠고 색채가 밝아서 당시 사람들은 '미완성'이라고 비판했지만, 바로 그게 인상주의의 매력이었죠.

Auguste_Renoir_-_Dance_at_Le_Moulin_de_la_Galette_-_Musée_d'Orsay_RF_2739_(derivative_work_-_AutoContrast_edit_in_LCH_space).jpg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Musée d'Orsay, Paris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는 발레 무용수들의 연습 장면을 그렸어요. 그는 스냅사진처럼 순간을 포착했고, 때로는 인물이 프레임 밖으로 잘려 나가기도 했답니다. 사진의 영향이었죠.





형태의 탐구 : 후기인상주의


인상주의가 순간적 인상을 포착했다면, 후기인상주의자들은 더 근본적인 것을 추구했어요. 그들은 각자 다른 길을 걸었지만, 모두 형태, 색채, 구조의 본질을 탐구했답니다.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은 "자연을 원기둥, 구, 원뿔로 다루라"고 말했어요. 그는 대상을 기하학적 형태로 단순화했죠. <생트 빅투아르 산(Mont Sainte-Victoire, 1902-1906)> 연작에서 산은 견고한 구조로 환원됐어요. 그의 작업은 20세기 입체주의의 토대가 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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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트 빅투아르 산(Mont Sainte-Victoire, 1902-1906)> 연작

Mont Sainte-Victoire and the Viaduct of the Arc River Valley (1882–1885), Metropolitan Museum of Art

Mont Sainte-Victoire with Large Pine (c. 1887), Courtauld Institute of Art

Mont Sainte-Victoire View From Bibémus Quarry, 1895-1899, Baltimore Museum of Art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색채와 붓터치로 감정을 표현했어요.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1889)>의 소용돌이치는 하늘은 그의 내면의 격랑을 보여주죠. 고흐는 생전에 거의 인정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한 명이에요.

1920px-Van_Gogh_-_Starry_Night_-_Google_Art_Project.jpg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1889)>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은 서구 문명을 떠나 타히티로 갔어요. 그는 원시적 순수함을 찾았고,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화면에 상징적 의미를 담았답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1897-1898)>는 인생의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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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1897-1898)> Museum of Fine Arts, Boston





형태의 해체 : 입체주의


20세기 초,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와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1882-1963)는 미술의 역사를 완전히 바꿔놓았어요. 그들은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동시에 보여주려 했죠.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 1907)>은 입체주의의 시작을 알렸어요. 다섯 명의 여성이 파편화된 형태로 제시되는데, 어떤 얼굴은 정면인데 코는 옆모습이에요. 이건 이집트 미술로의 회귀처럼 보이지만, 의도는 완전히 달랐답니다. 피카소는 하나의 고정된 시점을 거부하고, 대상의 본질을 탐구하려 했거든요.

1280px-Les_Demoiselles_d'Avignon.jpg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 1907)>

Museum of Modern Art. Acquired through the Lillie P. Bliss Bequest, New York City



분석적 입체주의(1909-1912) 시기에는 대상이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분해됐어요. 종합적 입체주의(1912-1914)에서는 신문 조각, 벽지 같은 실제 재료를 화면에 붙이는 '콜라주(collage)' 기법이 등장했죠. 이건 엄청난 혁신이었죠. 예술이 현실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현실의 일부를 직접 가져올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거든요.





내면의 세계 : 표현주의


독일과 북유럽에서는 내면의 감정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예술가들이 나타났어요.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의 <절규(The Scream, 1893)>는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죠. 뭉크는 "나는 자연을 그리는 게 아니라 자연이 내 안에서 일으키는 감정을 그린다"고 말했어요.

1920px-Edvard_Munch,_1893,_The_Scream,_oil,_tempera_and_pastel_on_cardboard,_91_x_73_cm,_National_Gallery_of_Norway.jpg <절규(The Scream, 1893)> National Museum and Munch Museum, Oslo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 1880-1938)와 다리파(Die Brücke) 화가들은 원시미술의 직접성과 강렬함을 추구했어요. 그들의 그림은 거칠고 날카로웠죠.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는 더 나아가 대상을 완전히 버렸어요. 그는 1911년경 최초의 순수 추상화를 그렸답니다. 칸딘스키에게 색채와 형태는 음악의 음표처럼 감정을 직접 전달할 수 있는 언어였어요.

1920px-Untitled_(First_Abstract_Watercolor)_by_Wassily_Kandinsky.jpg Untitled First Abstract Watercolour, 1910–1913, Centre Pompidou, Paris
1920px-Wassily_Kandinsky,_1911,_Reiter_(Lyrishes),_oil_on_canvas,_94_x_130_cm,_Museum_Boijmans_Van_Beuningen.jpg

Wassily Kandinsky, 1911, Reiter (Lyrishes), oil on canvas, 94 x 130 cm, Museum Boijmans Van Beuningen





무의식의 탐험 : 초현실주의


1924년,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1896-1966)이 <초현실주의 선언(Manifeste du surréalisme)>을 발표했어요. 초현실주의자들은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의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를 탐험하려 했죠.

Manifeste_du_surrealisme_couverture.png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1904-1989)는 꿈의 이미지를 정밀하게 그렸어요.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에 등장하는 흐물흐물한 시계는 시간의 상대성과 꿈의 비논리성을 표현해요. 달리는 자신의 방법을 '편집증적 비판 방법'이라고 불렀는데, 의식적으로 편집증 상태를 유도해 무의식을 끌어내는 것이었답니다.

The_Persistence_of_Memory.jpg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Museum of Modern Art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는 일상적 사물을 낯설게 만들었어요. <이미지의 배반(The Treachery of Images, 1929)>에는 파이프 그림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쓰여 있어요. 그는 재현과 실재의 관계를 질문했죠. 정말 예리한 통찰이에요.

MagrittePipe.jpg <이미지의 배반(The Treachery of Images, 1929)>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순수의 추구 : 추상표현주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술의 중심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갔어요. 미국 추상표현주의는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했답니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은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의 대표 작가예요. 캔버스를 바닥에 깔고 그 주위를 돌며 물감을 뿌리고 떨어뜨렸어요. <넘버 1, 1950(라벤더 미스트)(Number 1, 1950 (Lavender Mist))>같은 작품은 우연과 통제, 무의식과 의식이 결합된 결과물이죠. 폴록은 "나는 자연 속에 있을 때가 아니라 자연이 될 때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어요.

1920px-Regarding_Lavender_Mist.jpg <넘버 1, 1950(라벤더 미스트)(Number 1, 1950 (Lavender Mist))> National Gallery of Art in Washington, D.C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는 색면 회화(Color Field Painting)를 발전시켰어요. 큰 캔버스에는 몇 개의 거대한 색면이 떠 있어요. 로스코는 이 그림들 앞에서 명상하듯 오래 머물기를 원했답니다. 그는 "나는 색채 관계에 관심이 없다. 나는 기본적인 인간 감정들—비극, 황홀경, 죽음 등—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 말했어요.





일상의 예술 : 팝아트


1950년대 후반, 영국과 미국에서 팝아트(Pop Art)가 등장했어요. 대중문화, 광고, 만화, 소비 사회의 이미지들이 미술관으로 들어왔죠.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은 캠벨 수프 캔, 코카콜라 병, 마릴린 먼로의 얼굴을 반복해서 찍어냈어요. 실크스크린 기법을 사용해 대량생산했죠. <마릴린 먼로의 두폭(Marilyn Diptych, 1962)>은 스타의 이미지가 어떻게 소비되는지 보여줘요. 워홀은 "미래에는 누구나 15분간 유명해질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SNS 시대를 예견한 것 같지 않나요?

Marilyndiptych.jpg <마릴린 먼로의 이중상(Marilyn Diptych, 1962)>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은 만화의 이미지와 기법을 차용했어요. 망점까지 정밀하게 그려 넣었죠. '진짜' 예술과 '저급한' 대중문화의 경계를 무너뜨린 거예요.





개념의 승리 : 개념미술


1960년대 후반부터 일부 예술가들은 물리적 작품보다 아이디어 자체를 중시했어요.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 1945-)<하나이자 세 개의 의자(One and Three Chairs, 1965)>는 실제 의자, 의자 사진, 의자의 사전적 정의를 나란히 놓았어요. 실재와 재현과 언어의 관계를 나타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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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코수스(Joseph Kosuth, 1945-) <하나이자 세 개의 의자(One and Three Chairs, 1965)>



개념미술에서는 작품의 아이디어가 최종 결과물보다 중요해요. 솔 르윗(Sol LeWitt, 1928-2007)은 지침서만 작성하고 실제 작업은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아이디어가 진정한 예술작품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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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르윗(Sol LeWitt, 1928-2007) | Sol LeWitt's wall installation.





경계의 해체 : 동시대 미술



1980년대 이후 미술은 더욱 다양해졌어요. 모든 경계가 무너지고, 모든 매체가 가능해졌죠. 설치미술, 비디오아트, 퍼포먼스, 디지털아트 등 형식도 무궁무진해요.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살아있는 자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에서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담긴 상어를 제시했어요. 작품을 통해 죽음, 믿음, 가치의 본질을 질문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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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웨이웨이(Ai Weiwei, 1957-)는 예술을 정치적·사회적 비판의 도구로 사용해요. <해바라기 씨(Sunflower Seeds, 2010)>는 1억 개의 도자기 씨앗으로 이루어진 설치작품인데, 중국의 대량생산 문화와 개인의 관계를 의미해요.



뱅크시(Banksy, 생년 미상)는 거리에서 작업하는 익명의 예술가예요. 그의 그래피티는 자본주의, 전쟁, 감시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해요.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그의 작품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가 낙찰되자마자 액자에 내장된 파쇄기가 작동해 작품이 반쯤 찢어졌어요. 예술 시장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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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
1920px-Bethlehem_Banksy.jpg Banksy mural in Bethlehem, West Bank, Palestine





동굴벽화부터 오늘날까지, 미술은 각 시대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보여줘요.



구석기인주술을 믿었고, 그리스인인간의 아름다움을 찾았으며, 중세인신의 영광을 추구했죠. 르네상스인간을 재발견했고, 인상주의빛을 포착했으며, 입체주의형태를 해체했어요. 그리고 오늘날 예술가들모든 경계를 넘나들며 질문을 던지고 있답니다.



미술은 '예쁜 그림'이 아니에요. 각 시대의 철학, 과학, 사회, 정치가 모두 녹아 있는 문화적 결정체죠. 미술작품을 보면서 "이건 왜 이렇게 그렸을까?"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어요.



다음에 미술관에 가시면 작품을 그냥 보지 마시고, 그 뒤에 숨은 시대의식과 작가의 고민을 찾아보세요. 그러면 미술이 훨씬 더 흥미롭게 다가올 거예요. 미술은 과거와의 대화이자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