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론 스터디 시즌2를 마치며
도널드 프레지오시가 엮은 <꼭 읽어야 할 예술이론과 비평 40선> 시즌 2(1장 역사로서의 미술 , 2장 미학, 3장 형식, 내용, 양식, 4장 인류학과 미술사)를 마쳤다. 한 시즌에 텍스트 8개로 16개의 텍스트를 함께 공부했다. 스터디를 시작하기 전에는 연대기 순서가 아닌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중요했던 텍스트 40개를 추려서 모아놨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1장부터 4장까지 16개의 텍스트를 겪고 난 후 도널드 프레지오시의 거대한 판 속에 들어왔음을 깨달았다. 각 텍스트의 저자들은 전 후의 글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우리는 투명 끈으로 이어놓은 듯한 도널드의 의도를 느낀다. 해당 텍스트를 읽으며 저자의 의도와 내용을 파악하고 어렵사리 동의를 하고 나면 어김없이 다음 텍스트에서는 이전의 텍스트에 동의했던 나는 없어지고 이번 텍스트의 저자에게 이입한다. 파도에 출렁이는 부표 같다. 도널드는 이런 것을 의도했다고 말해주듯 친절하게 2장에 헤겔을 넣어 놓았다.(헤겔 직전에는 심지어 칸트다) 당시에는 왜 이 시점에 헤겔이 나오는지 의문이었지만 16개의 텍스트를 본 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헤겔의 변증법처럼 우리는 예술 이론 안에서도 정, 반, 합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렁이는 부표 신세인 듯한 지금 상황이 신기하게도 재밌다. 다음에는 어떤 방향에서 파도가 밀려올까 기대하는 마음도 생길정도다. 이런 마음은 세 가지 믿음에서 온다. 첫 번째는 도널드 프레지오시의 큰 그림에 대한 믿음이다, 도널드 프레지오시의 큰 그림은 거대한 직소퍼즐 같다. 한 조각씩 이어 붙이며 조금씩 그림의 윤곽이 드러난다. 그림 자체도 기대가 되지만 40개의 텍스트 사이의 연관성과 논리에 대한 체계가 생기고 있음을 느끼는 희열이 크다. 두 번째는 흔들리며 차곡차곡 쌓이는 지식과 성찰의 힘에 대한 믿음이다, 헤겔의 변증법처럼 우리는 매 순간 흔들린다. 지난 텍스트를 이번 텍스트에서 반박한다.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저자의 경우는 자료를 찾아가며 텍스트를 곱씹는다. 그리고 저자를 이해하며 텍스트의 논리적 구멍을 찾으며 우리는 시간의 세례를 받듯 조금씩 쌓여가는 지식을 느낀다. 서로 다른 생각을 주고 받으며 깨닫는 성찰의 순간도 즐겁다. 세 번째는 함께 공부하는 도반에 대한 마음을 향한 믿음이다. 미술사, 미학, 비평, 미술 산업 등에 대한 이론들이 주를 이루지만 결국은 사람이다. 예술에 담긴 인간의 삶과 사유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 확장된다. 너무나 다른 인간의 다양성을 겪으며 우리는 결국 다양한 시선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어쩌면 무용할지도 모르는, 하지만 분명 아름다운 인간의 문양. 도반들의 인간을 향한 따뜻하고 깊은 마음 덕분에 큰 파도에 대한 걱정보다는 우리의 시간이 남길 발자국이 기대가 된다.
도널드 프레지오시는 여는 글에서 미술사를 이렇게 정의했다. ‘볼 수 있는 것을 읽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일‘, 그리고 미술사란 일종의 상호 연관된 제도와 전문 영역의 네트워크라고 말한다. 우리는 미술사를 연구한 이들이 읽을 수 있게 만든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만들고 있다. 행간을 읽고 맥락을 짚으며 의도를 파악한다. 미술사 연구에서도 의견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여전히 뜨거운 이슈인 텍스트를 다루며 우리 안에서도 의견 일치가 때때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서 좋다. 서로 다른 의견이 공존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떤 미술사학자들은 미술 작품을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변화를 위한 촉매제로 보았다. 또 다른 미술사학자들에게는 미술 작품이 그러한 변화의 산물이었다.( <꼭 읽어야 할 예술이론과 비평 40선> 중 도널드 프레지오시의 여는 글 중에서) 우리에게 미술작품은 인간을 이해하는 매개이며 그것을 다룬 텍스트는 질문을 발굴하는 지적 촉매제다. 나의 의견과 일치해도 일치하지 않아도 모든 텍스트는 나에게 스승이다. 너무 어려운 말이 가득해서 미워했던 헤겔에게 문득 고마운 마음이 든다. 정, 반, 합을 즐길 수 있도록 해준 장본인이니까! 앞으로 남은 스터디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강력한 파도가 밀려올지 긴장이 되지만 남은 여정이 많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