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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Apr 06. 2020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우리를 푸른 대지로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04

우리를 푸른 대지로 인도하리라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코마츠바라 카즈오

출연 : 시마모토 스미(나우시카 목소리), 츠지무라 마히토(질 목소리), 쿄다 히사코(오바바 목소리)

개봉 : 2000. 12. 30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볼수록 새롭고 재미있습니다. 무려 1984년 작품인데 말이죠. 영상도 지금의 기술만큼 화려하지 않은데 참 아름답습니다.     


“푸른 옷을 입고 황금벌판에 내려선 자, 잃어버린 대지와의 인연을 다시 맺어 우리를 푸른 대지로 인도하리라.” _나우시카의 할머니     


바람계곡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입니다.


바람계곡 마을을 일본으로 상징화해서 침략당하는 피해자로 그려낸 것이 아니냐는 일부 관점도 있지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수도 없이 많이 본 저의 눈에는 '군사력을 앞세워 인간 세계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포장한 무력과 전쟁은 어떤 경우에도 미화될 수 없다'라는 메시지로 보입니다.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생명에 대한 감독의 마음도 느껴집니다. 처음 봤을 때에는 '감독이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인간에 대한 경고를 전하고 싶은 걸까?'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면 볼수록 '모든 생명은 귀하다'라고 들립니다.    

 

크고 작은 부해의 곤충 한 마리, 겁먹고 공격하는 작은 여우다람쥐 한 마리, 적국의 수장인 크사나, 바람계곡의 사람들, 인간에게 잡혀서 상처 입은 새끼 오무,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라고 감독이 나우시카를 통해 영화 내내 외치는 것 같습니다.


신경이 곤두서 털을 세우고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는 여우다람쥐 테토에게 나우시카는 괜찮다고 해치지 않는다고 겁내지 않아도 된다고 손을 건넵니다. 테토가 공격적으로 손가락을 깨물고 나우시카의 손가락에 피가 맺힙니다. 나우시카는 눈을 질끈 감을 뿐 어떤 위협적인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한참을 크르릉거리던 테토는 금세 안전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핏방울이 맺힌 나우시카의 손가락을 핥아 줍니다.    

 

"무서웠구나, 두려웠겠구나.

놀라서 그런 거지?" _나우시카     


나우시카는 상대방의 공격적인 자세가 사실은 겁에 질린 무서움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나우시카는 상대의 감정을 먼저 알아주고, 연민의 눈과 마음으로 대하고 존재 자체로 귀하게 생각합니다. 제 눈에 나우시카가 감정코칭의 대가로 보입니다. (여우다람쥐 테토는 <청공의 성 라퓨타>에도 카메오로 등장합니다^-^) 놀라고 겁먹어 털을 세우는 여우다람쥐 테토를 단숨에 원래의 유순한 상태로 되돌리고 유파의 낙타 역할을 하는 큰 새 두 마리도 오랜 친구처럼 대하는 나우시카를 보고 유파는 "묘한 힘을 가졌군"라고 말합니다. 복선이기도 합니다.

나우시카의 집 벽에 걸려있는 카펫의 문양은 황금벌판을 걷는 파란 옷을 입은 인도자입니다. 다들 전설이라고 하지만 나우시카의 할머니는 이것이 전설이 아니라 예언이라고 말합니다. 할머니의 망토에는 오무의 눈과 비슷한 붉은색과 푸른색 구슬 장신구가 달려있습니다. 화난 오무의 눈은 붉은색이고 평온할 때의 오무의 눈은 푸른색입니다. 오무는 부해를 지키는 파수꾼이자 경고자의 역할을 합니다. 예언과 경고를 하는 할머니와 부해의 파수꾼 오무가 겹쳐 보입니다.     


인간들은 부해 때문에 대기와 땅이 오염되고 있다며 태워서 없애려고 합니다. 인간은 부해가 독을 뿜는다고 없애려고 하지만 사실 부해는 인간이 오염시킨 대기와 땅을 해독하고 정화하기 위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인간 세계의 오염된 곳마다 부해가 생겨납니다. 그리고 독을 내뿜는 부해의 식물과 다리가 없거나 많이 달린 생명체들이 필사적으로 부해를 지킵니다. 독을 뿜는 식물 때문에 인간은 부해에서 살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떠난 자리에서 부해는 흙과 물을 정화시켜 아래로 내려 보냅니다. 마치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사람들이 활동을 멈추자 미국, 유럽, 중국 등지에서 대기오염이 감소되었다는 뉴스가 들려옵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는 60년 만에 물고기가 돌아왔다고도 합니다. 자연이 주는 경고가 계속 있었을 텐데 우리는 그것을 귀담아듣지 못했습니다.

“당신도 공주지만 우리 공주님과는 천지차이군요. 당신은 불을 쓰지. 우리도 조금은 쓰지만 지나치게 쓰면 아무것도 안 남아. 불은 숲을 하루에 재로 만들지. 물과 바람은 백 년 걸려서 그 숲을 키웠는데 말이야. 우린 물과 바람이 더 좋아. “ _바람계곡 사람들 고루 일행     


토르메키아의 공주이자 군 최고 통솔자인 크사나가 항복하면 살려 보내주겠다고 고루 일행을 회유하자 고루 일행이 하는 대답입니다. 느리지만 백 년에 걸쳐 키워내는 숲을 소중히 생각하며 불의한 힘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는 내내 마음이 묵직합니다.     


7일 만에 세상을 불태워 버렸다는 거신병을 태운 비행선이 바람계곡에 사고로 비상착륙합니다. 페지테 사람들이 새끼 오무 한 마리를 미끼로 잡아 죽어서 멈춰질 때까지 스스로 멈추지 않는다는 성난 오무 무리를 바람계곡으로 유인합니다. 너무나 막강한 무기이기에 가지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 위협이 되는 '거신병'이 지금 바람계곡에 있기 때문입니다. 페지테는 거신병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토르메키아의 공격을 받아서 멸망했습니다. '내가 갖지 못한다면 아무도 갖을 수 없다'는 태도가 토르메키아나 페지테나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페지테도 토르메키아도 결국은 두렵고 무서워서 상대를 공격한 것일 텐데요. 사람은 서로를 믿지 못합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도 믿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여우다람쥐 테토는 해치지 않겠다는 나우시카의 진심을 알아보고 믿습니다. 그리고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나우시카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테토가 함께 합니다.    

 

인간에게 잡혀서 상처 입은 새끼 오무는 두렵고 아파서 붉은 눈의 상태입니다. 체액이 계속 상처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어서 목이 마른 새끼 오무는 염산 호수로 돌진합니다. 새끼 오무를 막느라 총상 입은 나우시카의 발이 염산 호수에 닿아 발목까지 하얗게 타버립니다. 고통으로 쓰러져 있는 나우시카의 연기 나는 발을 새끼 오무가 금빛 촉수로 치료하려고 합니다. 인간에게 상처 받고 고통당했어도 인간을 용서하고 치유하는 새끼 오무의 모습을 보며 속상해서 화가 나고 가슴이 아픕니다. 사과하는 나우시카를 보며 사과의 정석을 봅니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책임집니다. 새끼 오무를 무리에 돌려주는 것으로 말이죠.     


"정말 미안해,

너무 미안해서 용서하라는 말도 못 하겠어." _나우시카


천 년 동안 잠들어있던 거신병을 깨워 부해를 없애버리고 인간을 위한 지상 왕국을 건설하겠다던 크사나는 바람계곡을 향해 몰려오는 화가 난 오무 무리를 멈추게 하기 위해 아직 완성되지 않은 거신병을 꺼내와 오무 무리를 향해 불로 공격합니다.  영화의 초반 유파는 부해의 곤충에게 쫓기자 총을 사용해 쫓아 보내려고 합니다. 우연히 마주친 나우시카가 충적(곤충 피리)을 이용해서 숲으로 무사히 돌려보냅니다.     

  

나우시카는 길 잃은 부해의 곤충도 화가 나서 질주하는 오무도 원래 사는 곳으로 돌려보내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크사나가 대포와 불로 오무를 없애버리려 하고 유파가 총을 쏘아 곤충을 쫓는 것과 대조됩니다. 빠르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이 사실은 정답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임시방편일 뿐 장기적으로는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나우시카는 생명 있는 모든 것의 무게를 귀하게 여기고, 결코 인간이 자연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연과 공존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연이 내어 주는 것에 감사할 줄 압니다. 지금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인지 모릅니다.    

 

나우시카가 새끼 오무를 구해서 돌진하는 오무 무리 앞에 맨 몸으로 섭니다. 이미 분노로 정신을 잃은 오무 무리의 빨간 눈은 분노의 이유였던 납치되었다가 풀려난 눈 앞의 새끼 오무를 보고도 푸른색으로 돌아올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돌진하는 오무 무리 앞에 선 나우시카와 새끼 오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확인해 보세요.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입니다.          


* 바람계곡에서 바람은 어떤 의미일까요?

* 바람계곡에 바람이 멎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 나에게 바람계곡의 바람 같은 존재는 무엇인가요?

* 기술이 끝도 없이 발전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착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 붉은 눈이 된 오무처럼 내가 분노로 이성을 잃을 때는 언제 인가요?

* 무엇을 지킬 때 평소보다 더 전투적이 되나요?

* 이성 잃은 분노로부터 내가 정신을 차리도록 돕는 것은 무엇인가요?

* 곤충들이 분노로 자신을 잃을 때 나우시카가 바람소리를 내는 충적(곤충 피리)을 사용해서 곤충들이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합니다. 나에게 이 충적 같은 존재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 엄청난 힘을 갖고서도 타인이 시키는 대로만 공격하는 거신병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 당장은 힘이 없어 보이지만 백 년에 거쳐서 숲을 키워낸 물과 바람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오랜 시간 나를 성장하게 한 물과 바람은 무엇인가요?

* 나에게 푸른 대지는 무엇인가요?

* 푸른 대지로 가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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