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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Apr 08. 2020

영화 <안녕?! 오케스트라>, 반쪽 사람?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05

반쪽 사람?


리처드 용재 오닐의 어머니는 한국 전쟁고아로 미국으로 입양되었고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미국에서 차별받는 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없는 그의 집에서 아버지에 대한 말은 금기어였습니다. 그가 한국에서 다문화가정 청소년 들을 위한 오케스트라 지휘에 나섰습니다. ‘다르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많은 상처와 차별을 받고 자란 스물네 명의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리처드 용재 오닐과 함께 아주 특별한 오케스트라로 마법 같은 1년을 보냈습니다.


<안녕?! 오케스트라>는 무한한 가능성과 풍부한 감수성을 지닌 청소년들과 음악으로 소통을 시도하는 다문화 프로젝트입니다.      

   

음악은 우리가 살면서 겪는 좋지 않은 일들이 우리 삶을 파괴하도록 놔두지 않고 오히려 창조적으로 표출될 수 있도록 만들어요. 음악이 아버지나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 없겠죠. 하지만 음악은 함께 무언가를 해 나갈 사람들을 만나게도 해줄 거예요. 우리가 살아간다는 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잖아요. 음악이 어머니나 아버지를 만들어줄 순 없지만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할 수는 있어요. 음악은 아이들에게 규범을 가르쳐 주고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게 할 것이며 늘 결과가 좋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려줄 거예요. ”

음악은 아무도 해치지 않는 무기잖아요.
음악은 말이 필요 없어요.
설명도 묘사도 필요 없죠.
누구나 음악에 다가갈 수 있어요.
당신이 누구든 어떤 생각을 가졌든 상관없어요.



리처드 용재 오닐이 아이들을 처음 만난 날.     


아이들은 앞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유명한지 얼마나 대단한 음악가인지 모릅니다. 그가 영어를 사용하자 "외국인이에요?"라고 묻습니다. 리처드 용재 오닐은 "한국과 미국 사람"이라고 하죠. 그러자 한 아이가 "반쪽 사람?"이라고 합니다. 리처드 용재 오닐은 웃으며 "No"라고 했지만 언뜻 지나간 그의 얼굴에는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생채기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순간 마음이 조금 아렸고, 그런 그의 속을 알 리 없는 그 아이가 조금 미웠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아이가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반쪽 사람?


그가 비올라 파트장인 선욱이와 면담을 합니다. 선욱이는 늘 후드티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연습을 할 때도 벗지 않습니다. 얼굴 반을 가리며 깊이 눌러쓴 후드티 안에 숨어있는 선욱이의 눈이 사슴 같습니다. 그가 선욱이에게 왜 모자를 벗지 않는 것인지 묻습니다. 영어로 대답하기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이 스쳐 지나갑니다. 아이들의 외모는 외국인 엄마 혹은 아빠를 닮아 이국적인 분위기가 서려 있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는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어가 모국어입니다.


그가 선욱이에게 부모님의 이야기를 물어봅니다. 필리핀 국적의 엄마와 한국인 아빠는 사랑해서 결혼했을 텐데 왜 아빠는 자꾸 엄마를 때리는지 선욱이는 알 수 없습니다. 엄마는 집을 나왔고 선욱이는 아픈 엄마를 따라 나와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빠의 머리가 어떻게 되었다고 말하는 선욱이의 표정이 괴로워 보입니다.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고 마음 깊이 담아 두었던 선욱이의 말을 끝까지 들은 그가 선욱이의 팔을 톡톡 두드리며 말합니다. "인생이란 참 불공평해. 나도 매일매일 부딪치는 문제야. 나는 아직도 왜 그런지 이해할 수가 없어" 센 척, 강한 척, 아는 척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여전히 나도 그렇다고 말하는 그는 좋은 어른입니다. 영상 바깥에 있는 저에게도 온기가 느껴집니다. 여전히 세상이 힘든 어른인 저에게도 위로가 됩니다.      


아이들은 일대일 면담을 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깊이 교감하려고 노력하는 그를 점점 좋아하게 됩니다. 그를 용재쌤이라고 부르며 그에게 마음을 열고 음악을 통해 세상을 향해서 조금씩 걸어 나갑니다.


아이들과 숲 산책을 나선 리처드 용재 오닐은 대나무를 두드리며 "소리가 좋다"라고 말합니다. 아이들도 함께 두드리고 만져보고 나무의 소리를 들어보고 자연을 느낍니다.      

    

아이들은 3개월 동안 만난 음악으로 무대에 처음 올랐고, 관객들에게 자신들이 만난 음악을 들려주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아이들은 벅차오른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런 기분은 처음 느껴본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 자부심, 성취감을 가슴 깊이 새깁니다. 무대가 끝난 후에도 음악을 그대로 멈출 수가 없어진 아이들은 12월에 단독 공연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안녕?! 오케스트라의 연말 단독 콘서트의 이름은 <엄마의 자장가-위안의 자장가이자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이제 내가 지친 엄마를 위해 자장가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자장가를 들으며 엄마가 자면 자는 동안에는 편히 쉴 수 있잖아요.
자는 동안에는 엄마가 편안했으면 좋겠어요."     


그들에게 음악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이자 치유의 소리였습니다. 타인의 인생을 책임질 능력은 누구에게도 없지만 내가 가진 좋은 언어로 누군가의 닫힌 마음을 두드릴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압니다. 문을 여는 것도 세상을 향해 나가는 것도 언제나 자기 자신입니다.    

       



영화 <안녕?! 오케스트라>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입니다.     


* 자식에게 부모는 어떤 존재일까요? 어떤 의미일까요?

* 부모에게 자식은 어떤 존재일까요? 어떤 의미일까요?

* 나는 좋은 어른인가요?

* 내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은 어떤 사람인가요?

* 다르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 리처드 용재 오닐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일까요?

* 어떤 소리를 좋아하세요? 자연에서 고른다면요?

* 아이들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일까요?

* 아이들에게 리처드 용재 오닐은 어떤 의미일까요?

* 음악으로 연결된 인연이 있나요?

* 나에게 말을 걸어왔던 음악이 있나요? 어떤 음악인가요?

* 나를 살리는 음악의 힘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 음악으로 치유받은 적이 있나요? 어떤 음악인가요?

* 치유하는 음악은 나의 어떤 마음을 위로하나요?

* 아이들과 리처드 용재 오닐은 음악으로 소통합니다, 나에게 가장 편안한 언어는 무엇인가요?

* 가장 소통하고 싶은 개인 혹은 집단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이유는요?

* 그(또는 그들과) 잘 소통하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 살면서 편견을 받아 본 적이 있나요? 있다면 어떤 편견이 가장 아팠나요?

* 내가 가진 편견으로 다른 이가 상처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나요?

*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무엇인가요?

* 그 언어로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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