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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Apr 13. 2020

영화 <서프러제트>, 알게 되었다면 행동하라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07

알게 되었다면 행동하라



서프러제트

감독 : 사라 가브론

출연 : 메릴 스트립, 캐리 멀리건, 헬레나 본햄 카터, 벤 위쇼, 브렌단 글리슨, 로몰라 가레이

개봉 : 2016. 06. 23.


방황하는 여자는 자유의 땅을 찾아 나선다.

“어떻게 갈 수 있을까?”     


여자가 말하자 이성이 대답했다.

“그곳에 가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어요.

노동의 둑으로 내려가 고통의 물을 건너야 하죠. 다른 길은 없어요.”     


가지고 있던 전부를 버린 여자는 울부짖었다.

“아무도 안 간 이 먼 길을 난 왜 가야 하는 건데? 난 혼자야, 철저히 혼자.”

    

그러자 이성이 대답했다.

“조용히 해봐요. 뭐가 들리죠?”    

 

그러자 여자가 대답했다.

“발소리가 들려. 수 천, 수 만, 수 백만의 발소리가. 이 쪽으로 오는 게 들려.”    

 

“당신을 따르게 될 이들의 발소리예요.

그들을 이끌고 가세요.”

    

_ <DREAMS> Three Dreams in a Desert By Olive Schreiner (1855–1920)   

   

 에밀리와 모드는 사람이 많이 모이고 언론이 주목하는 엡손 더비 경마대회에 갑니다. 영국 국왕 조지 5세가 참석하기 때문에 국내외 언론이 모이기 때문이죠. 경마대회에 가기 전 날 밤, 에밀리가 모드에게 책 한 권을 건넵니다. 꿈 <DREAMS>입니다. 표지를 넘기니 그 책의 역사가 있습니다. 서프러제트를 이끈 리더인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그다음 사람에게 그다음 사람에게 전하고 에밀리는 이디스에게 그 책을 받았습니다. 이제 에밀리가 모드에게 이 책을 전합니다. 모드는 어리둥절합니다. '왜 이 리더의 계보를 가진 이 책을 나에게 줄까'    

 

 모드는 자신이 지금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아직은 잘 모릅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한 발 앞으로 나아갔지만, 남편은 냉담하고 모드는 여전히 무섭고 겁이 납니다. 자신이 리더의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에밀리에게 그 책을 받고 모드의 마음에 일렁임이 생깁니다. 그 책이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모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의 모습이 아니지만, 모드는 마음이 곧고 흔들림이 없습니다. 겁이 나고 두렵지만 자신이 지켜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지금 당장 세탁공장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압니다. 에밀리는 모드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리더 '모드'를 보았습니다.   

  

 에밀리에게 책을 전해준 이디스의 마음이 약해지자 모드는 마음이 약해진 이디스를 독려합니다.

"우린 계속 가야 해요 이디스 당신이 가르쳐준 거잖아요."


 더비 경마대회에서 에밀리는 자신의 목숨 값으로 여성의 참정권 운동을 언론에 실리게 만듭니다. 이 사건으로 많은 여성들의 마음에 불길을 일었고 에밀리의 장례식에 수 천 수만의 여성들이 서프러제트 어깨띠를 걸치고 그 길을 따릅니다.     


 자유의 땅을 찾아 나선 여자가 그곳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노동의 둑으로 내려가 고통의 물을 건너야 합니다. 책 <DREAMS>에 나오는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가슴을 울리며 크게 다가옵니다. 자유는 말과 생각, 의지 만이 아닌, 노동(행동)으로 노력(고통)을 통해 쟁취할 수 있는 것. 철저히 혼자, 외로운 길이라고 생각한 그 길 끝에 수 천 수 만 수백만의 따르는 발걸음이 있고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그들을 이끌고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 시작이 철저히 혼자라고 생각되는 외롭고 두려운 길이라는 것이 의미 심장합니다.     


 이 구절이 큰 울림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고독하고 외로운 이 길이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고 그 길 끝에 내가 만든 그 길을 따라 걸어오는 동지, 동료가 있을 것이라는 위로와 안도 때문입니다.  노동의 둑을 내려가 고통의 물을 건너고 있는, 외롭고 고독한 그 길을 꿋꿋하게 오늘도 걸으며 꿈 길을 만드는 분들과 이 글을 나누고 싶습니다.   


"여성들은 평등과 투표권을 얻기 위해 수십 년 동안 평화적 시위를 지속해 왔지만 이들의 주장은 묵살되었다. 여성 참정권 운동가이자 지도자인 에멀라인 팽크허스트는 이에 대응하여 전국 시민 불복종 운동을 일으켰다. 이 이야기는 그 투쟁에 참여한 한 여성 노동자 단체의 이야기이다.”     


 20세기 초 영국 런던, 세탁공장 노동자인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는 한 남자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로서의 자신의 삶을 의심해본 적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서프러제트(여성 투표권을 주장하며 거리에서 투쟁하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 무리를 처음 목격한 그날도 그들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녀입니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이름 앞에 무너져버린 정의와 인권 유린의 세태에 분노하게 되고 부당함에 맞서기 위해 거리로 발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영화 <서프러제트>는 이 세상 모든 여인들에게 보내는 가슴 뜨거운 찬가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에 걸려있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습니다. 최근 관심 있는 이슈이거나 인생의 화두와 연결됩니다. 인생의 미해결 과제인 경우도 있습니다. 감독이 의지를 가지고 전하는 메시지 이기도 합니다. 같은 장면을 보고 나서 느끼는 감정과 떠오르는 생각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각자가 세상을 보는 시선에 따라 다르게 해석합니다. 가장 불편한 지점과 화가 나는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면 자신이 추구하는 인생의 방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1912년 영국 런던, 여성에게 참정권도 자녀에 대한 법적 권한도 없던 시기입니다. 영화는 라디오 속 국회의원의 연설로 시작합니다.     


“여자들은 정치에서 판단력을 행사하기엔 너무 감정적이고 쉽게 냉정을 잃습니다. 여자들에게 투표할 권리를 준다면 사회 구조가 무너질 겁니다. 여자의 권리는 그 아버지나 형제, 남편을 통해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투표권까지 주어지면 멈출 수가 없어집니다. 여자들은 국회의원, 국무위원 판사까지 되겠다고 주장할 겁니다.”      


 한 사람의 권리가 자신이 아닌 타인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그 말을 하면서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고 화가 납니다. 그 누구도 여성인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것을 부정할 수 없을 텐데 왜 여성의 권리에 대해서는 차별을 둘까요? 그것도 1600년대에 이미 권리장전이 있었던 영국에서 말입니다.      


 주인공 모드 왓츠는 초반, 과격한 행동을 하는 바이올렛에게 법을 준수해야 하지 않냐고 묻습니다. 바이올렛이 말합니다. "법을 준수하라고요? 그럼 정당한 법을 만들어야죠." 모드는 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법을 만들거나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영화의 후반, 자신이 서프러제트라고 선언하는 주인공 모드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법이 나와 상관없는, 범접할 수 없는 다른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법이 잘못되었다면 바꿔야 하고, 알게 되었다면 행동해야 한다는 것도.     


법 때문에 제가 아들을 볼 수 없다면 저는 그 법을 바꾸기 위해 싸울 겁니다.  

  

 서프러제트가 무엇인지, 그들이 주장하는 것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된 주인공 모드가 남편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임금을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자들은 남자들과 같은 시간 같은 양의 일을 하고도 여자라는 이유로 임금을 적게 받고 있습니다. 임금 책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각합니다.     


지침. 알게 되었다면 행동하라.     


 찔리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이 말이 오랫동안 가슴에 묵직하게 남아있습니다. 행동하는 지성이 되어야겠습니다. 좋은 의도만이 아닌.      


 모드의 자상한 남편이 묻습니다. "당신 뭘 어쩌려고 그래?"

모드가 말합니다. "당신이랑 똑같이 하려는 거죠."     


 그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드 왓츠가 아닌, 남편의 소유, 자신의 아내, 아이의 엄마 역할로서만 인정하고 있습니다. 모드가 모드로서 온전히 존재하는 것은 그의 가족관에 없습니다. 중요한 결정이 필요한 날 아침, 모드가 남편에게 물어봅니다. "우리에게 딸이 있었다면 그 아이는 어떤 삶을 살게 됐을까요?" 모드를 행동하게 만든 결정적 한 마디. "당신이랑 같은 삶이겠지" 모드는 남편의 이 말을 듣고 결심합니다.

내 딸, 다음 세대가 나와 같은 삶을 살도록 가만히 두고만 있지는 않겠다.    

 

 영화 말미에 세탁공장에서 일하는 바이올렛의 어린 딸 12살 메리의 손을 잡고 데리고 나옵니다. 사장의 성추행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죠.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수치심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성추행을 한 사장이어야 한다는 것을 모드는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지침. 알게 되었다면 행동하라.


서프러제트들이 투쟁하는 목적은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딸들에게 남자 형제들과 동등한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여성의 힘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내가 나의 한계를 규정한다면 나는 그 한계를 넘어설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계라고 정해놓았던 많은 선들을 넘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한계라고 이름 붙어있는 선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정말 한계일까요? 정말?  

   

 행동하기 시작한 모드에게 형사가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 같은 여자 말을 누가 들어줄 것 같소? 당신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요" 형사는 ‘당신 같은 여자,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규정합니다. 모드는 세상이 정해놓은 한계, 이름표를 따르지 않기로 선언합니다.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는 없다는 것을 모드는 이제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모드의 자상한 남편이 속내를 드러냅니다. 아이를 돌보고 자신의 아내 역할로 있을 것. 그것만이 모드 왓츠의 존재 이유이고 본분이라는 것이죠. 아내가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자신의 통제하에 있고 자신이 규정해 놓은 역할로 있을 때에만 자상하고 다정한 남편이 2019년을 살고 있는 우리의 주위에는 없을까요? 또는 누군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힘들어하는 완벽한 아내는요?    


 서프러제트 운동 지도자인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연설입니다.     

“우린 범법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입법자가 되고 싶은 겁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전투적으로 임하세요. 투표권을 얻기 위해 감옥에 가야 한다면 여자들의 몸이 아닌 정부의 창문이 깨져야 합니다. 절대 굴복하지 마세요. 투쟁을 멈추지 마세요. 남자가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게 정당하다면 여자가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도 정당합니다.


 영화에서는 여자와 남자, 성별에 따른 차별을 다룹니다. 누리는 권리에 차등이 있습니다. 성별을 나이, 국적, 직업 등으로 바꾸고 투표권이 아닌 다른 권리를 대입하면 지금도 여전히 싸워야 할 것들이 넘칩니다.  

   

“투표권이 부인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모드가 처음 받은 질문입니다.

    

우리의 권리를 한 표에 담아 힘을 실어주는 선거가 코 앞입니다.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평등하게 누리기 위해 누군가가 죽거나 다쳤습니다. 처음으로 투표할 수 있는 권리가 이제 막 생겼다면 어떤 마음으로 투표소에 가게 될까요? 나에게 투표권은 어떤 의미인가요? 나의 한 표가 갖는 무게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었다고." _ 마틴 루터 킹


'알게 되었다면 행동하라.' 선한 의도만이 아니라 행동하는 지성이기를 원합니다. 사회에서 붙여놓은 이름표, 규정지어놓은 한계선들을 한 발자국 함께 넘어보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영화 <서프러제트>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입니다.     


* 나에게 투표권은 어떤 의미인가요?

* 정당한 법이란 무엇일까요?

* 혹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법이 있다면?

* 현재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요?

* 세상은 당연하다고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 나는 내 딸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가요?

* 내가 생각하는 한계의 정의는?

* 모드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남편? 동료? 이웃?

* 누가 모드의 친구일까요?

* 모드가 가장 받고 싶은 지지는 무엇일까요?

* 친구를 정의한다면?

* 누가 나의 친구인가요?

* 나는 누구의 친구인가요?

*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은 무엇이 있을까요?

* 무엇을 바꾸고 싶으세요?

*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으세요?

*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은 무엇이 있을까요?

* 무엇을 계속하고 무엇을 멈추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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