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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Apr 28. 2020

영화 <안나 카레니나>, 인생은 마주르카가 아니다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08

인생은 마주르카가 아니다


안나 카레니나

감독 : 조 라이트

출연 : 키이라 나이틀리(안나 카레니나), 주드 로(알렉시 카레닌 ), 애런 존슨(브론스키)

개봉 : 2013. 03.21


 조 라이트 감독과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가 <어톤먼트>와 <오만과 편견>에 이어 <안나 카레니나>에서 다시 만났다. 톨스토이가 원작에서 나타내고자 했던 감정표현, 메시지, 감정의 흐름, 인물과의 관계 등을 최대한 잘 살리려고 노력한 마음이 영화 장면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무대와 무대장치, 프레임 안에 또 다른 프레임이 있다. 영화를 보는데 소설을 보는 것 같다. 관객은 등장인물의 감정에 동화되고 이입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이 된다. 화면의 전환을 무대장치의 연결로 보여주니 글로 풀어가는 것을 읽어 내려가는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과 나란히 앉아서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부분은 어떠냐고, 어떤 감정이 드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것 같다. 대화를 나누자고 손을 내민다.     


 무대와 무대장치는 귀족과 그들의 풍요로운 삶이 가능하도록 받치고 있는 평민처럼 보인다. 화려한 무대의  뒤와 장치 위쪽에는 무대를 준비하며 도구를 나르는 사람, 무대 세트를 당기고 끌어올리는 밧줄들이 있다. 이 장면에서 저 장면으로 이동할 때 단역들의 역할이 바뀌기도 한다. 혜택보다 짊어질 의무가 더 많은 평민의 삶을 보는 것 같다.

 1874년 제정 러시아.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는 매력적인 외모와 교양을 갖춘 상트페테르부르크 사교계의 꽃이다. 그녀의 남편은 러시아 최고의 정치가이자 성자로 불리며 존경받는 알렉세이 카레닌이다. 이들 앞에 부유한 백작가의 매력적이고 잘생긴 청년 장교 알렉세이 브론스키가 나타난다.

 

 질주하는 기차 같은 감정이 배우자가 있다고 해서 피해 간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감정이 생긴 이후의 행동 양상은 제각각이다. 나는 사랑을 나누는 방법이 육체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악은 사람의 가장 약한 틈을 너무나 정교하게 공격한다. 누군가는 그 유혹에 넘어가고 누군가는 피하고 누군가는 유혹에 넘어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해도 이전과 같지 않겠지만 말이다.     


 안나와 브론스키가 처음 무도회에서 만났을 때 그들은 육체적 관계를 나누기 전이지만 마주르카를 추면서 이미 성적 만족감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멈춘 듯 서로만 보이고 걷잡을 수 없이 서로를 탐한다. 마주르카를 추는 그들의 손과 팔의 움직임이 그것을 상징한다. 오히려 브론스키의 집에서 처음 육체적 관계를 맺던 그 순간보다 더 격렬하다. 서로에 대한 감정이 흘러나와 키티와 키티의 부모님을 포함한 무도회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다.     

 둘의 관계는 점점 더 적극적이고 과감해진다. 사교계의 귀부인들은 부채로 입을 가리고 눈빛만으로 조소와 경멸을 드러낸다. 차라리 법을 어기지 그랬냐며 외면한다. 귀부인과 젊은 장교 사이의 스캔들이 만연 하지만 쿨한 관계여야 트렌드에 맞다. 비공식적으로는 무엇을 해도 괜찮지만 사랑에 목메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공개적으로 연애하면 저급한 것이라고 한다. 사교계의 룰을 어겼다고 한다. 그리고 비난의 화살은 주로 브론스키가 아닌 안나를 향한다.     


 안나를 감싸고 두둔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귀족들의 음험한 사생활과 위선에 신물이 올라온다. 드러내는지 아닌지만 다를 뿐 차이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더럽다며 조리돌림 하는 꼴이 우습다. 비겁하고 추하다. 톨스토이는 그들에게 고상하게 욕하고 싶었나 보다. 안나가 비참하게 죽지만 원작 소설이 그녀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지금의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것을 감당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멋진 단어로 포장해도 타인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얻은 사랑은 대가가 따른다. 완벽하게 악하다면 타인의 아픔과 상관없이 내 사랑을 하겠지만 과연 완벽하게 악한 사람이 사랑을 할 수는 있을까? 그것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단지 연약한 인간의 헛된 욕심인지도 모른다.     

 

 안나는 처음 그를 향한 감정의 원인도, 시간이 지나 변해버린 자신의 감정의 책임도 브론스키에게 돌린다. 브론스키가 사랑을 알게 해 주어서 고맙고 브론스키가 변했다고 생각해서 좌절한다. 안나의 행복은 브론스키라는 외부에 있다. 그의 표정, 말, 행동에 따라 이리저리 감정이 요동한다.      


 브론스키에 대한 안나의 사랑은 불같이 강렬하고 뜨거웠지만 견고하지 않았다. ‘사랑받고 있다’라고 기쁘게 차오르는 만족은 있었으나 ‘사랑하다'라는 동사는 없었다. 내가 그를 영원히 사랑하겠다. 이 다짐도 어려운데 타인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 변하지 않고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은 얼마나 불완전한가. 인생은 마주르카가 아니다. 음악이 멈추면 마주르카는 끝나지만 삶은 지속된다. 정신을 잃을 만큼 상대방과 교감하는 마주르카처럼 24시간 365일을 살 수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브론스키의 집에서 지내며 점점 무너지는 안나의 마음에 색이 있다면 푸른 와인에 모르핀을 탄 것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브론스키의 집 안을 비출 때의 색감과 비슷한. 영화 내내 안나가 안타까웠다. 불쌍하다거나 안쓰럽다기보다는 안타깝다는 표현이 맞다. 장식 없는 검은색 벨벳 드레스 만으로도 시선을 사로잡는 마력 같은 생기와 활력이 넘치던 매력적인 그녀가 망가지는 과정이 안타까웠다. 브론스키와 자신에게 벌주기 위해 스스로가 심판자가 되어 멍하고 빛을 잃은 눈빛으로 기차에 몸을 던지는 장면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 사람은 내 남편이 아니라 시계예요.    


 러시아 정계 최고의 정치가인 카레닌은 무뚝뚝했고 가정보다는 일이 최우선이었다. 안나는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결핍의 이유를 배우자에게 돌릴 수만은 없다. 그리고 결핍이 같다고 누구나 같은 선택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결핍을 채울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지 못한 그녀를 보며 영상 밖의 내가 코치로서의 책임감과 자괴감이 드는 것이 낯설 뿐이다.


 안나가 달리는 기차 아래 누워있는 장면을 보며 세료자가 떠올랐다. 혼자서 엄마를 기다릴 아이. 집안에는 늘 사람이 분비고 유모가 함께 있지만 아이의 방이라기에 너무 어둡고 공허하도록 넓은 공간에 침대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세료자의 방. 세료자의 침대만 감싸는 액자 같은 프레임이 세료자가 이 넓은 저택에서 마음 둘 곳은 여기뿐이라고 보여주는 것 같다. 그 방은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고 사랑이 그리운 8살 아이 세료자의 마음 같다.


 사랑이란 뭘까? 잘 산다는 것은? 영혼을 위해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레빈과 키티의 가정을 안나와 브론스키의 관계와 대조해서 보여준다. 레빈은 귀족이고 부자며 키티를 마음 깊이 사랑한다. 키티에게 레빈은 어쩌면 꿩 대신 닭이었는지도 모른다. 상처 입은 자존심을 치료해줄 사람이 필요했는지도. 10년 후의 그들이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땀 흘리는 노동의 가치를 알고 영혼을 위해 살려 애쓰며 선택에 대한 준열한 결과를 지켜본 그들은 삶의 무게를 기꺼이 감당하며 진실하게 살았을 것이다.


 톨스토이는 아름다운 귀부인이 저지른 불륜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며 바람피우면 안된다고 말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라고 말한다. 뱃속이 아니라 영혼을 위해 살려면 어떻게 해야겠냐고 묻는다. 신이 허락한 이 땅에서의 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질문한다.   





영화 <안나 카레니나>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 이 문장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가?

* 행복과 불행에 대한 나의 정의는?

* 나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인가?

* 안나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나는 어떤 결핍을 느끼고 있나?

* 내가 결핍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

*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 어떻게 살았다고 기억되고 싶은가?

* 영혼을 배부르게 하는 삶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 결혼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 나는 죄를 어떻게 정의하나?

* 용서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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