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활주로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탔다. 버스에 타서 비행기를 바라보니 눈 앞에 커다란 엔진이 보인다. 비행 중에 날개를 보면 구름과 더불어 왠지 낭만적이었는데. 날개 아래 엔진을 보니 너무 현실적이라서 확 깬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꽤 오래 셔틀버스를 타고 도하공항 입국장에 도착했다. 경유하는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간다. 짐 검사를 한다. 마드리드 공항에서 산 뜯지도 않은 3.8유로짜리 500미리 물 한 병이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이동한다. 아까워라.
마드리드 공항은 약국과 작은 편의점을 제외하고는 면세점 등 모든 매장이 운영 중지라서 영화 <웜 바디스> 속 유령공항 같다. 심지어 맥도널드도 닫았다. 그런데 도하공항은 너무나 일상적이다. 면세점도 레스토랑도.
분비는 공항이 이렇게 호러일 줄이야. 마드리드에서는 경찰과 가드들이 돌아다니며 형식적일지언정 사람 간 간격도 1미터를 유지하라고 했는데. 이곳은 일반적인 우리가 알고 있는 공항 모습과 똑같다.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조금 더 많다는 정도가 다를까? 마드리드 공항에서는 모든 직원들이 마스크와 라텍스 장갑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 도하 공항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가족들이 있을 텐데, 너무 위험해 보인다. 도하에서 신종 코로나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A10 게이트 안에 있는 대기장에는 인천행 승객들만 모여있다. 이동 금지령이 시작되고 카타르 항공 외의 항공사는 대부분의 노선에서 운항중지를 결정했으니, 아마도 많은 경우는 전 유럽에서 마지막 여행을 즐기던 여행자와 교환학생 또는 유학생들이 급변하는 상황에 압박을 느껴 조기 귀국하는 것이겠지. 옷차림을 보며 이들이 언제쯤 출국했을지 가늠해본다.
도하 공항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무섭다. 유령도시 같던 황량한 마드리드 공항이 오히려 안심이 된다. 정상 비정상 구분이 의미 없지만 도하 공항은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웃나라 이란을 보면서도 경각심이 없는 걸까. 아니면 마스크와 장갑을 공급할 능력이 없는 걸까. 둘 다 슬프다.
** 저는 한국 도착 후 자가격리를 안전하게 3주 마치고도 계속 집에 머물렀습니다. 스페인 일기는 시간 흐름과 상관없이 종종 올릴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