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채식주의자가 되는 중일까?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아주 이기적인 바람

by 윤지원

2020년 2월 12일 수요일, 바르셀로나, 스페인



집 떠난 지 한 달 하고도 열흘. 꽤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몸이 전면 파업을 선언했다. 남편도 나도. 아픈 건 아니지만 지금 당장 파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플 거라며 협박당하는 기분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건너뛰고 점심을 1시쯤 먹는다. 어제 남은 밥을 물 많이 넣고 죽처럼 끓여서. 둥글둥글 소파에 앉았다가 누웠다가 하며 글을 쓰고 자료를 검색하고 영상도 본다. 이러고 있으니 여기가 바르셀로나라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딱 한국 우리 집 거실이다. 여행하라고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여기까지 와서 여행도 열심이었을까. 큰 결정을 하고 왔으니 어쩌면 조바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둥글 거리며 쉬다 보니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소화가 되고 배는 고프다. 열심히 돌아다니다가 들어와도 저녁밥 차릴 에너지는 있는데 하루 종일 쉰 오늘은 손 하나 까딱하기가 싫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이어서 계속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달까? 결국 남편이 겉옷을 대충 걸쳐 입고 집 근처 케밥집에서 케밥 2개를 포장해왔다. 맵게 해 달라고도 하고 피칸테(고추)도 추가했다는데 평소에 주문할 때 고추를 추가해 달라는 사람이 없었는지 뚜껑을 열어보니 매운 야채가 아무것도 없다. 어마어마한 양을 보며 과연 내가 다 먹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역시나. 목구멍에도 괄약근과 같은 근육이 있는지 더 이상 느끼한 그것을 들여보내지 말라며 목을 움켜잡고 시위한다.



갑자기 푸아그라가 떠오른다. 사람들이 맛있고 큰 거위 간(푸아그라)을 얻기 위해 강제로 거위 입에 깔때기가 달린 두꺼운 관을 꽂고 쉼 없이 먹이를 주입한다지. 그러면 거위는 간경화로 지방간을 얻게 되는데 그 간을 사람들이 좋아한다. 10년 전 나 홀로 유럽 배낭여행 때 일주일 동안 예산을 잘 아껴 써서 모은 돈으로 한 끼는 맛있는 저녁을 먹었었다. 스테이크 위에 얹어있던 푸아그라도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호기심에 시켜 먹었던 푸아그라는 크림치즈 같은 식감에 진하고 고소했다. 맛있었다. 또 먹고 싶었다. 동물이 내 식탁에 오는 과정에 대해 자세히 알기 전까지는.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공장식 돼지 도축과정과 병아리 선별(수컷 병아리는 버려진다. 대부분 죽는다.) 과정 영상을 보았다. 그 후로 식재료에 대해 더 알게 되고 동물복지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고기를 좋아하는 나는 사실 이미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 영상을 보고 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고기가 맛있다. 나는 그런 인간이다. 하지만 먹을 때 먹더라도 식재료의 전 과정이 조금 더 나은 환경이기를 응원하고 지지할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이기적으로 접근해서, 더 나은 환경에서 스트레스 덜 받고 자라서 죽을 때도 죽음의 공포와 고통을 덜 느끼고 죽은 가축이 나 자신에게도 더 좋은 것 아닐까. 온 세포에 슬픔과 고통이 새겨진 소와 돼지보다는 행복했던 가축에서 얻어진 고기를 먹고 싶다, 아주 이기적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공장 같은 양계장에서 때 되면 주는 사료만 먹고 자란 닭보다는 사방팔방 넓게 펼쳐진 곳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자란 닭이 낳은 알을 먹고 싶다, 아주 이기적으로.


아주 이기적으로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동물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동물들을 위해서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시작은 나 자신을 위해서지만 선한 영향력은 널리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지구의 환경도 나아지고 식재료도 더 건강해지면 좋겠다. 아주 이기적으로.


내 몸은 이제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한다. 우유 대신 두유로 바꾼 지 꽤 시간이 지났다. 라테를 마실 때는 스타벅스나 폴바셋으로 간다. 아니면 라테를 포기하거나. 우유를 두유로 바꿔주는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다. 고기도 예전만큼 즐기지 못한다. 한참 잘 먹던 때의 1/3도 못 먹는 것 같다. 입이 예전 식성을 기억하고 식탐을 부리면 꼭 탈이 난다. 예전에는 조각, 부분으로만 보이던 식재료들이 이제는 원형 그대로가 연상이 된다. 뭐하나 먹는 것이 불편해졌다는 얘기다. 몸과 입과 머리가 아직은 합의가 되지 않아서 제각각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 그래서 아주 이기적인 바람 하나를 더한다면, 자연스럽게 몸이 원하는 방향으로 입맛이 변해서 힘들게 고기를 끊지 않고 채식만으로도 행복하고 싶다.



영화 <노팅힐>에서 남자 주인공과 소개팅을 했던 여자가 프룻테리언 중에서도 떨어진 열매만 먹는 채식주의자로 나온다. 처음 그 장면을 볼 때는 웃기는, 개그 장면 정도로 받아들였었다. 지금은 그 장면을 보며 웃지 않는다. ‘그렇구나. 좀 불편하지는 않을까? 그럼 새나 야생동물들과 경쟁할 수도 있겠네.’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아마도 지금 플렉시테리언 언저리쯤인 것 같다.





** 참고

채식주의자 분류

출처 :

https://n.news.naver.com/article/088/0000579993


** 제주도 비건카페 ‘And 유 Cafe’에 다녀왔어요

https://www.instagram.com/p/CCgSPkzlgbk/?igshid=ibcshf60zg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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