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서 생긴 일(상 파우 병원 가는 길)

아직도 그 마음보다 옳고 그른 것을 먼저 따지고 있는 나를 본다

by 윤지원


| 2020년 2월 11일 맑음 바르셀로나, 스페인



예쁘게 차려입고 메트로로 향했다. 가우디의 스승인 몬타네르가 설계한 상 파우 병원을 보러 가는 길이다. 해가 쨍하니 날이 맑아서 기분도 한껏 좋다. 콜블랑 역에서 메트로를 기다리는데 오늘따라 여행 캐리어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가족단위로, 어린아이와 함께 있다. 전에 캐리어 군단 덕분에 메트로 하나를 놓친 적이 있어서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안전하게 딱 타는 찰나. 내 아킬레스건이 큰 캐리어 바퀴에 눌렸다. 다행히 피는 안 난다. 캐리어 주인인 아이 엄마는 내 얼굴을 한 번 보고는 아무 말 없이 자기 아이를 챙긴다.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열이 오른다. 욕설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입 밖으로도 나왔을까. "워 워" 남편이 나를 진정시키며 옆 칸으로 이동시킨다. 마침 자리가 있어서 앉았다. 부글부글, 중얼중얼. 자식이 생기면 저렇게 변하는 걸까? 자기 자식만 눈에 보이는 걸까? 내가 부모가 아니라서 이해를 못 하는 건가? 별의별 생각들이 머릿속을 온통 헤집어 놓는다. 문득 스치는 생각 하나가 내 속을 평정시킨다.


32인치짜리 대형 캐리어를 가지고 여행 다니면서, 모르고 또는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까? 나는 떳떳한가?


자신할 수 없다. 누군가는 나 때문에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나 때문에 메트로를 못 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메트로를 타기까지 그 가족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살기 위해, 베네수엘라에서 힘든 과정을 거쳐 막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스페인에는 베네수엘라의 힘든 상황을 피해서 이주한 사람들이 많다. 상 파우 병원 가기 전에 들른 브런치 카페 주인아저씨가 알려주셨다. 본인도 베네수엘라에서 왔다고.) 적어도 내 다리를 일부러 공격한 것은 아닐 것이다.


시끄럽고 뜨겁게 타올랐던 마음 한 켠이 잠잠해진다. 이 마음은 분명 하나님이 조명해 주신 것이 틀림없다. 이 상황에 이런 성찰을 이렇게 빨리 할 내가 아니다. 나중에 내게 아이가 생기면 그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지. 더해서 내 아이가 귀한 만큼 남의 아이 귀한 것도 잘 헤아려야겠다. 어른도 누군가의 아이일 테니. 감정코칭한다면서 아직도 그 마음보다 옳고 그른 것을 먼저 따지고 있는 나를 본다.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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