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내 마음이 아픈 만큼은 너를 사랑하고 있구나.
바르셀로나를 떠날 때가 다가온다. 곧 세비야로 이동한다. 한 달이면 아주 짧게 있었던 것도 아닌데 가본 곳, 했던 것, 본 것은 생각이 잘 안 나고 아쉬운 것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호프만 베이커리가 있는 보르네 지구로 간다. 크루아상 마스카포네를 사러 이틀에 한 번은 호프만 베이커리에 들렸다. 바르셀로나에서 호프만 베이커리가 가장 맛있는 빵집인가?라고 묻는다면 글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최고의 빵집이 맞다. 아침이나 저녁, 하루에 한 번은 꼭 생각나는 크루아상 마스카포네. 바르셀로나에 다시 와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단연코 호프만 베이커리의 크루아상 마스카포네를 먹기 위해서다. 어쩌면 이렇게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단 맛을 만들었을까? 관계에서도 이런 적정 레시피를 알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보르네 지구를 걸으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작년(2019년) 12월 초부터 지금(2020년 2월)까지 나의 인간관계가 많이 허물어졌다. 어쩌면 그 이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인지하는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기준으로 하면 그렇다. 가까운 이와의 관계가 힘들어지니 관계라는 키워드 하나가 무거운 돌덩이같이 느껴진다. 내가 사회성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이런 내가 소통을 강의할 자격이 있을까 싶다. 그동안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하면 되었는데, 원하는 반응을 하면 되었는데 그러면 참 쉬운데. 이제는 그게 잘 안된다. 나의 감정과 속마음이 너무 크게 들려서 외면할 수가 없다. 전에는 들리 지도 않았고 작은 소리로 들려도 못 들은 척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잘 안된다. 내 마음도 중요하다고 속에서 아우성이다. 내 마음도 잘 챙기면서 상대방도 잘 볼 수는 없는 걸까. 관계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나. 새삼스럽다.
한국에 돌아가면 직장생활을 다시 해야 하나? 참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오래 겪어서 내가 참는 법을 잊은 걸지도 몰라. 자존심 상해도 참고 내 마음을 꾹 누르며 여러 사람과의 감정 줄을 타며 월급 받는 고행을 하면 관계가 조금 더 수월하게 느껴지려나. 마음에 안 드는 것 투성이라면, 그 모든 곳에 공통으로 존재했던 것은 바로 나 자신일 테니 문제는 나인가. 차라리 완전히 모진 마음이었더라면. 마음속에서 다 쳐 내버리고 홀로 갈길 가면 편하련만. 잡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이렇게 구질구질한 마음으로 몇 달을 보내고 있는 걸까 나는.
한 편으로는 지금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다. 나는 굉장히 차가운 면이 있는 사람이라서 이렇게 구질구질한 상태로 있다가 마음의 결정을 하게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힘든 마음도 아픈 마음도 없이 모든 여지가 없어진 상태가 된다. 그렇게 되면 나 스스로의 의지로도 내 마음을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나는 그 순간을 두려워하고 있다. 스스로는 힘들지언정 따뜻한 피가 도는, 사람 같은 지금의 내가 그래도 좋다. 냉혈인간 같은 내가 갑자기 되어버릴까 봐 불안하고 두렵다. 나에게는 소 같은 면이 있어서 무엇이든 오래도록 잡고 있지만 떨어져 나간 끈을 다시 이어 붙일 에너지를 따로 남겨놓지는 않는다. 그러니 구질구질할지언정 마음 한 켠이 늘 아리고 쓰릴지언정, 지금 이 마음을 계속 유지하고자 한다.
마음 한 구석에 우울의 방이 푸른빛을 머금고 있다. 그래서 모처럼의 해외에서의 장기여행을 100%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불편한 부피만큼은 나에게 뜨거운 피가 돌고 있다는 증거가 되니 안심이 된다. 아직 내가 따뜻한 사람 쪽에 있구나. 다행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아직 내 안에 있구나. 적어도 내 마음이 아픈 만큼은 너를 사랑하고 있구나. 관계에도 적정 레시피가 있으면 좋겠다. 내 마음을 잘 구워서 너에게 줄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