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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Feb 03. 2023

어느 카페

짧은 이야기

한 노인이 카페에 들어선다. 노인에게선 참을 수 없는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카페 안에 있던 몇몇 손님이 코를 움켜쥐고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런데 정작 카페주인은 환한 미소로 노인을 맞는다.


노인은 방금 구운 빵 하나를 가리키며,  "빵 하나를 주게."라고 말했다. 카페 주인은 미소만 띤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인은 "나는 돈이 없어."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제야 카페 주인이 입을 열었다.


"돈이 없다면, 대신 다른 것을 주세요. 그럼 방금 구운 빵과 따뜻한 커피를 드리겠습니다.”

“나는 줄 것이 하나도 없어. 내 모습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있을 겁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던 노인이 버스럭버스럭 주머니를 뒤져본다. 언제 넣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꼬깃꼬깃한 쓰레기가 우수수 떨어졌다.


“봐, 아무것도 없잖아.”

“그럼 저는 어르신께 빵과 커피를 드릴 수 없습니다.”

“여기 오면 공짜로 식사할 수 있다더니, 쳇, 그 영감이 날 속였나 보군.”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카페에선 공짜 음식은 나가지 않아요. 어르신.”


역한 냄새가 진동하는 노인 때문에 카페를 찾은 몇몇 손님이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카페주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표정이다.


“그럼, 식사는 없는 건가?”


코를 찌르는 향긋한 빵 내음이 노인의 허기진 배를 마구잡이로 휘저었다. 벌써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아무것도 먹지 못한 노인이었다.


“빵과 커피는 드릴 수 없지만, 카페 구경은 시켜 드릴 수 있는데, 구경하시겠어요?”

“뭐? 허허, 나는 배가 고프다고.”


노인이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지만, 진동하는 달콤함이 노인의 발걸음을 붙잡고는 놔주지 않았다. 노인이 조심스럽게 카페 안 쪽으로 들어섰다.


‘참 묘한 분위기의 카페로군.’


카페의 한쪽 면에는 각양각색의 그림과 글이 빼곡히 걸려 있고, 수많은 장식장에는 크고 작은 온갖 미술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인의 취향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군.”


노인이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느 명화집에서 본 것 같은 멋들어진 작품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그런데 작가의 이름이 있는 작품은 정말 극소수에 불가했다. 대부분이 어린아이가 장난 삼아 그린 것 같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림들 뿐이었다.


“응? 그런데 저건 신문지에 그린 건가? 아, 저건 햄버거 봉지인데?”


그림 하나하나를 살펴보던 노인의 표정이 점점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아! 저건!”


갑자기 우뚝 멈춰 선 노인이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한기가 도는 듯 양팔로 자신을 꼭 감싸 안았다.


“저 그림이 마음에 드시나요? 제가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랍니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카페 주인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노인에게 말을 건넸다.


“그렇게 생각하나?”


노인의 목소리가 잘게 떨려 왔다. 꼬깃꼬깃한 종이에 연필로 쓱쓱 그려 넣은 거대한 나무 한 그루.


고급스러운 액자의 틀에 둘러싸인 그림은 어느 미술관에서나 걸려 있을 법한 명작처럼 보였다. 노인의 양 볼을 타고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떨어진다. 노인은 쭈글쭈글한 손으로 나무가 그려진 액자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카페 주인이 노인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어르신, 저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주세요. 그럼 방금 구운 따뜻한 빵과 커피를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래.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주지.”


노인이 안쪽 주머니에서 종이 몇 장을 꺼내 든다. 종이에는 액자에 걸려 있는 것과 똑같은 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이 나무는 유일한 친구였다네. 사람들한테 내쳐진 나를 유일하게 받아줬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언제나 내 곁에 있어줬어. 몇 달 전, 무슨 건물인가 짓는다고 이 친구를 없앤다고 했을 때는, 정말 한참을 울었다네. 이건, 이 친구와 헤어지기 전날 마지막으로 그렸던 그림일세.”

“그래서 그랬군요. 그림에서 느껴졌던 '애틋함'이 그 때문이었군요.”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리라곤 정말 상상도 못 했는데. 자네에게 이 그림을 주겠네. 그럼 나는 빵과 커피를 먹을 수 있는 건가?”

“그럼요. 어르신”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빵과 커피를 먹은 노인은 카페를 나가기 전 다시 한번 그림 앞에 섰다.


“자주 와도 되나?”

“그럼요. 어르신, 관람은 무료입니다. 대신, 빵과 커피는 공짜로 내어 드리지 않습니다.”

“그럼, 그럼. 그래야지. 나는 자네에게 줄 것이 있으니까.”

“그럼요. 지금까지 여기서 공짜로 빵을 먹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노인은 정말 오랜만에 환하게 웃으며, 카페 주인을 향해 말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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