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다서영 Feb 11. 2023

치열함

짧은 이야기(시)

밖으로 나가기 전,

나는 두꺼운 옷을 꺼내 놓는다.

그리고 맨살이 드러나지 않게끔, 하나 둘 걸쳐 입는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커다란 모자도 눌러쓰고,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긴 장갑도 챙긴다.

목 주위와 팔목에는 많은 이의 손을 거쳐 간 황금색을 주렁주렁 매달고,

곰처럼 비대해진 몸뚱이를 뒤뚱뒤뚱 움직이며 거리로 나서본다.


거리로 나온 나는,

곰의 털을 두텁게 걸친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내 몸뚱이와 비교한다.

그리고, 내 옆을 지나가는 거대한 몸뚱이에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며, 다짐한다.

더 비대해져야 한다.

더 무거워져야 한다.

더 많이 가져야 한다.


위태로운 걸음이 어깨를 짓누르는 옷더미 속에서 멈출 때까지

주렁주렁 매달린 장신구에 패인 살들이 서서히 무너져 내릴 때까지

다른 이들의 날카로운 시선에 드러난 맨살이 만천하에 모습을 드러날 때까지


환상 속에서 허우적대는 나의 치열함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카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