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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Feb 24. 2023

나는 언제쯤 천사를 가질 수 있을까?

짧은 이야기

고요한 적막 속에 가습기가 내뿜는 작은 소음만이 귓가를 간질인다. 온종일 옆에서 떨어지지 않는 아내와 딸 내외를 억지로 밖으로 내보냈다. 낮에 오셨던 목사님의 기도소리도 머릿속에서 잠시 떠나보냈다. 그냥 잠시만, 아주 잠시만이라도 혼자 있고 싶었다.


내 나이 55세.

백 세 시대라는데, 이제 막 반을 넘긴 내 나이가 그저 아쉬울 뿐이다.


나는 전라남도에 있는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푼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한 것이 23살이던가 22살이던가. 군대를 막 제대했을 때니 22살이 맞을 것이다.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농사나 지으라는 아버지에게 반항해 달랑 기차표 하나 들고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서 공부하던 친구의 하숙집에서 2년 동안 눈칫밥 얻어먹어가면서, 나는 세상이 가진 온갖 쓴맛은 다 맛보았다.


나는 하늘을 날고 싶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도와 밭일을 하던 내 머리 위로 비행기 한 대가 날아간 적이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짙은 푸른색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한 백색 꼬리 선을 달고 지나가는 비행기 한 대. 어린 내 눈에는 비행기가 긴 천을 나풀거리며 하늘로 올라가는 천사로 보였다.

‘저 천사를 가질 거야.’

나는 두 팔을 벌려 있는 힘껏 소리 지르며, 쌓여 있던 울분을 토해냈다.

내가 진정한 자유를 느꼈던 첫 순간이었다.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했다. 낮에는 막노동으로 시작해 온갖 일을 다하고, 저녁에는 졸린 눈을 비벼가며 공부했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기에 검정고시부터 준비했다.


시험에 합격한 날, 나는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감격했다. 아마 내 인생 중 가장 기쁘고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내 딸, 윤지가 태어나던 순간과 바로 검정고시에 합격했을 때일 것이다. 합격증을 손에 들고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환호했다.

그때도 하늘 위로 비행기 한 대가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손을 길게 뻗었다. 그리고 미친 듯이 뛰고 있는 심장소리에 귀 기울이며, 큰 소리로 외쳤다.


"곧 데리러 갈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가 내가 천사를 갖기 위해 살았던 마지막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 해에 옆 방에 살던 하숙집 형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형은 나에게 검정고시 문제랑 많이 틀리지 않을 테니, 공무원 시험 한번 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 나는 흔들렸다.


‘한번 봐볼까? 떨어지면 말고. 원래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잖아.’  


하지만, 운이 좋게도 나는 한 번에 합격했고, 잠깐의 고민도 없이 합격증을 받아 들었다. 처음 발령 난 부처에서 정숙한 아내를 만났고, 다음 해엔 소중한 딸 윤지도 낳았다. 윤지는 몇 년 전에 결혼해서 듬직한 아들을 내게 주더니, 올해는 소중한 손자, 민이도 안겨주었다. 생각해 보면 나쁘지 않은 인생이다.


그래 나쁘지 않은 인생이었다. 만약 암이라는 이 친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친구라고? 그래, 이젠 친구라고 해도 되겠지. 벌써 몇 년을 같이 있었는데.


처음 이 친구를 만났을 때는 충격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후에는 있는 힘껏 싸웠고, 이겼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이 친구가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 나는 안정적인 나의 삶 속으로 다시 스며 들어가고 있었다.


세상을 떠날 생각을 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때 공부를 계속했더라면, 나는 천사를 가질 수 있었을까?


내 삶은 잔잔한 바다 위를 순항하는 배처럼 평탄했다. 아프지만 않았더라면, 모든 이들이 부러워하는 완벽한 삶을 살다 갈 수 있었다.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에 점점 나아지는 살림, 하나밖에 없는 딸 유학도 보내고, 시집갈 때는 시댁에 기죽지 말라고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줬다. 나는 비록, 천사를 가지진 못했지만, 대신 다른 것을 얻었다. 어차피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눈앞으로 작은 빛 하나가 보였다. 나는 빛을 따라가며 평안하게 내 의식을 떠나보낼 준비를 했다.


그런데,

'나, 날고 있구나.'


내가 흰 천을 온몸에 두르고, 두 팔을 벌려 하늘을 날고 있었다. 백색의 긴 천이 꼬리가 되어 내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렸을 때 보았던 하늘 위, 눈부신 천사였다.


'내가 바로 그 천사였어!'


두근두근 심장이 뛰어갔다. 온몸이 설렘으로 짜릿해진다. 이런 기분 살아생전 느껴본 적이 있었나?


‘어렸을 때 그 밭 위에서? 검정고시 합격증을 들고 온 동네를 사방팔방 뛰어다닐 때?’


나는 다음 생에는 꼭 천사를 가져보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왠지 예전에도 이런 결심을 한 적이 있었던 같은데... 나는 낯설지 않은 느낌을 간직한 채,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나는 언제쯤 천사를 가질 수 있을까?ㄴㄴ언제쯤 천사를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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