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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Future Writers

by 윤다서영 Mar 08. 2023

소녀와 한 조각의 빵

짧은 이야기

'내가 이 나라에 왜 왔을까?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라고. 멍청한 놈.'


나는 언제 정리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덥수룩한 수염과 머리카락, 그리고 구멍이 숭숭 뚫린 거적때기를 몸에 걸치고, 점점 굳어가는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가파른 산을 오르고 또 올랐다.  


점점 숨이 가빠오고, 다리가 무거워진다.

하지만, 나는 살아서 돌아갈 것이다. 절대로 이렇게 허무하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나라.

그곳에서 전쟁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나와 톰은 작은 호프집에 앉아서 흑백 TV를 통해 중계되는 낯선 나라의 전쟁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영화가 아니야. 진짜라고.”

우리는 긴 총을 둘러메고 작은 군모를 눌러쓴 채 앞으로 달려 나가는 군인들의 모습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남자라면 저렇게 살아야지.”

톰과 시선을 맞춘 나는 그 즉시 군대에 지원했고, 울고 불며 매달리는 어머니를 뒤로한 채 전쟁터로 향했다.


***


낯선 나라의 낯선 풍경.

나는 전장으로 향하는 덜컹거리는 군용차 안에서 낯선 모든 것들에 시선을 빼앗긴 채 흥분했다.


“이건 훈련이 아니라 실전이야. 제임스, 우리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그래, 어서 전장에 투입되었으면 좋겠어.”

“앞으로 경험할 일들을 마크한테 말하면 부러워 죽겠지?”


우리를 놀려대던 힘이 장사였던 마크.

선장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바다 위 온갖 풍파를 다 겪어 봤다고 얼마나 유세를 떨던지, 그의 자랑도 전쟁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서 꼴 보기 싫은 마크와 그의 똘마니들 앞에서 우리의 영웅담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톰과 한참 수다를 떨고 있는데,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군인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우리를 통솔해서 전장으로 데리고 가던 군인 중 하나였다. 그의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흔치 않은 어둡고 깊은 회색의 눈동자.

그의 눈동자를 쳐다보는 순간 심장을 울리는 기묘한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첫사랑과 키스하기 전 느꼈던 두근거림도 이곳 전장으로 오게 됐을 때의 그 설렘도 아니었다.


알 수 없는 기묘하면서 두려운 그 무언가...


***


“제임스.”

“톰, 움직이지 마. 내가 도와줄 사람을 불러올 테니. 여기서 꼼작하지 마.”


멋있다고? 남자라면 한 번 경험해 봐야 한다고? 우리는 어째서 이런 멍청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했을까?


나는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 있는 톰을 안고는, 도와달라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제임스 일병, 자네 미쳤나. 어서 일어나. 여기 있다가는 총알받이가 될 거라고.”


정신이 반쯤 나가 소리치며 울고 있는 나를 한 남자가 일으켰다.

어둡고 깊은 회색의 눈동자.

나는 그의 눈동자에 홀려서 꼭두각시 인형처럼 를 뒤를 따라 움직였다. 톰이 마지막 눈물을 흘리며, 숨을 거두는 것도 보지 못한 채, 살기 위해 그가 생명의 동아줄이라도 되듯이 황급히 쫓아갔다.


하지만, 결국 그도 내 곁을 떠나고 말았다.


***


“하아, 하아, 하아”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전쟁은 영화 속의 멋진 장면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적들을 물리치며 끝까지 살아남아서 영웅이 되었던 영화 속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의 눈동자 안에서 기묘하게 두근거렸던 심장을 부여잡고, 나는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힘겹게 끌어당기면서,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가자. 정상까지 가보자.'


저 멀리 산등성이 위로 태양이 떠오르는 듯 주홍빛 햇살이 넘어오는 것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눈에는 주홍빛 햇살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처럼 보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정상에 가면 분명 살 수 있을 거야.'


***


“톰. 미안해, 네 마지막 말은 들어줬어야 했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나를 구원해 줄 천사 따위는 없었다.

나는 커다란 나무에 기대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강한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들 사이로 청명한 가을 하늘이 얼핏 얼핏 드러났다.


"우리 마을의 하늘만큼이나 아름답구나. 이번 생의 마지막 장소가 되기에 나쁘지 않겠어."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축 쳐진 몸을 스르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그 순간, 뭔가가 코끝을 간질였다.


"빵 냄새?"


어머니가 아침마다 구워주던 오븐에서 갓 꺼낸 따끈따끈 한 고소한 빵 냄새가 났다.


'이제 정말 갈 때가 되었나 보네.'


/부스럭/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나는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총을 집어 들었다.


'적인가? 그럴 리가. 이렇게 높은 산꼭대기에 적이 있을 리가 없어. 그럼 짐승? 살아 있는 채로 짐승의 밥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나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간신히 부여잡은 총을 겨누었다.


하지만, 뜬금없이 나타난 건, 예닐곱 살 밖에 안돼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아이는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한 발자국씩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오는 아이를 보기 위해 흐릿해져 가는 의식을 억지로 붙잡았다. 멀리서 봤을 때는 멀쩡한 아이인 줄 알았는데, 아이의 한쪽 팔이 보이지 않았다. 바람에 날려 펄럭이는 아이의 한쪽 팔이 스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이의 얼굴은 눈이 부시도록 았다.


나는 아이를 향해 방긋 웃었다.

"안녕”

살짝 손을 올려 인사를 하는 내 모습에 아이가 잠시 움찔하더니 한걸음 물러난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다시 두 걸음 다가왔다.

“내가 지금 이 모양이라 일어날 수가 없어.”

나는 아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태어난 나라와 마을이야기, 그리고 톰과 내 어머니, 마지막으로 내 꿈에 대해서. 아이는 알아듣는 것처럼, 중간중간 옅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마지막이란 거 다 아는데, 나 진짜 살고 싶다. 꼬마야.”


내 두 눈으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그러자, 나를 빤히 쳐다보던 아이가 갑자기 부스럭부스럭 하나밖에 없는 작은 손을 열심히 움직이더니,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빵?”


얼마나 쥐고 있었는지 회색의 때가 드문드문 묻어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빵이었다.


“나 주는 거야?”


빵을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절박해 보였다. 침을 삼키는지 아이의 목 젓이 계속해서 위아래로 움직인다. 가죽만 남은 앙상한 아이의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왔다.


“하, 하아, 하…. 하”


그 모습에 메마른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이가 자신의 생명을 내게 주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그렇게 느꼈다. 아이가 자신의 생명을 게 주고 있다고.

아이는 손에 든 빵을 억지로 내 입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내게 환한 웃음을 지으며, 눈부신 햇살의 잔상과 함께 스르르 사라졌다.


***


“물론, 그 아이가 진짜 내게 생명을 줬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나는 아이를 통해 살아야겠다는 힘을 얻은 거지.”


나는 살았고, 조국으로 즉시 이송되었다. 그 이후 나는 아이에게 받은 생명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친 듯이 공부했고, 후에는 내로라하는 회사의 오너가 되었다. 지금은 다른 이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사는 중이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나는 나에게 죽음과 생명을 한꺼번에 맛보게 해 준 그곳에 섰다. 나라는 많이 변해 있었다. 그래서 산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누워 있던 나무가 어떤 건지, 찾을 수가 없어.”

“그렇겠죠, 할아버지. 시간이 많이 흘렀잖아요.”


나는 산 정상에 서서 멀리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오는 내내 망설였다. 당시의 고통이 다시금 나를 사로잡을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오길 잘했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니, 아이가 떠올랐다.


/부스럭/   


설마?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누구십니까? 여기는 산행 코스가 아닙니다."

“안녕하십니까?”


이 나라 말을 할 수 있는 손자 놈이 선뜻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회색의 누빔 옷을 입고 삭발한 머리를 보아하니 이 근처 어느 암자의 비구니인 것 같았다. 외국에서 일부러 찾아왔다는 말에 비구니는 우리를 자신의 암자로 초대했다.


“그런 일이 있었단 말입니까?”

작은 암자 안에서 나의 이야기를 손자를 통해 전해 들은 비구니의 두 눈에서 폭포수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동생입니다. 내 동생.”



"이건 스님이 주신 우리의 생명이야. 그러니 어디에 흘리지 않게 잘 가지고 다녀.”

“응. 언니.”

작은 빵 하나를 손에 쥐고 방긋방긋 웃던 동생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폭격으로 부모님을 잃고 동생의 한쪽 팔도 잃었다. 나는 동생의 남은 팔을 잡고, 날아다니는 총알을 피해 산 깊은 곳까지 숨어들었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스님에게서 빵 두 조각을 받은 나는 동생의 손에 하나를 쥐여주고는 신신당부를 했다.

그런데,

“누굴 줬다고? 너 미쳤어? 생명이라고 했잖아. 스님이 생명이라고 했다고!”

“알아. 그런데 나보다는 그 사람이 더 필요한 거 같아서.”

“뭐라고?”

“나보다는 그 사람이 살아야 할 거 같아서 줬어.”

동생은 산꼭대기 어떤 나무 아래 묻어달라는 말과 함께 빵을 건넨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할아버지, 이만 내려가시죠. 이제 해도 지려고 하는데 곧 어두워질 거예요.”


아이의 언니는 아이가 입었던 옷을 길게 찢어서 아이를 묻은 나무에 둘렀다고 했다. 나는 아이의 나무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진짜 생명이었구나. 진짜 네가 나에게 생명을 주었어.”


아이는 나의 무엇을 보고 자신보다 오래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산에서 내려오는 내 눈동자 안으로 작은 불씨 하나가 튀어 올랐다.


"그래, 나는 아이가 내가 해주길 바랐던 그 일을 지금처럼 하면 되는 거야."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다 바칠 것이다.


내 한쪽 팔에 아이의 끈 일부를 가져다가 묶었다. 나는 바람에 펄럭이는 긴 끈을 바라보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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