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21 수요일
혼자 카페 가서 필사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젠 혼자 카페 갈 여유는 찾아볼 수 없고,
여행 가는 걸 좋아했어서
일을 쉴 땐 혼자 여행도 다녔는데
이젠 일을 쉬어도 여행은커녕
집 밖으로 쉽게 나갈 수 없고,
혼자 밥 먹는 게 어렵지 않아 혼자서 뷔페도 가던 난데
이젠 아이가 자고 겨우겨우 혼자 있을 때
그릇에 밥반찬을 담아 비벼먹는다.
상영 중인 영화가 어떤 게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궁금하지도 않게 되고
마지막 본 영화가 뭐였는지 생각도 안 나고
길을 지나다 들어가 보고 싶은 매장이 보여도
'언제쯤 저길 갈 수 있나'
'유모차가 들어갈 수 있는가'부터 찾아보게 되고
밖에라도 나가볼까 하면 전엔 신경도 안 썼던
날이 춥지 않은지 미세먼지는 괜찮은지부터 찾게 된다.
결혼과 다르게 아이를 낳고 난 삶이
정말 많이, 아주아주 많이 바뀌었다.
생각이상으로,
(사실 이런 모습까진 생각해보지도 않았지만)
많이 달라졌다. 힘에 부친다,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에너지를 얻던 나인데
말도 안 통하는 두 달 된 아이랑 스무고개 하듯 의사소통을 한다.
혼잣말하는 것 같아 현타가 가끔 오긴 하지만
그래도 좋다.
무슨 뜻인지 못 알아먹을 옹알이에 담긴
아이의 쫑알거리는 목소리가 좋다.
하루 종일 깨어있기라도 하는 날에는
어떻게 해서든 재우고 내 시간을 갖고 싶어
여차저차 겨우 씨름하고 재운다.
이상하다.
그렇게 힘들게 지쳐 재웠는데 아이가 보고 싶다.
눈을 빤히 쳐다보며 생글 웃는 배냇짓이 보고 싶다.
막상 일어나면 쉽사리 달려가는 발걸음이 아니지만
가보니 나를 발견한 아이의 눈을 보면
절로 '아이고 내 새끼 일어났쩌요'하는
돼도 안 되는 혀 짧은 소리와
그렇게 반가운 마음이 들 수가 없다.
아이를 번쩍 안아 들었을 때
가슴팍에 포옥 안긴 아이 무게와 체온.
내 귀옆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작은 콧구멍에서 나는 숨소리.
옹알쫑알 작은 입에서 들려오는 소리
내 뺨을 간지럽히는 아이의 솜털 같은 배냇머리
팔뚝에 걸터앉은 아이의 작은 엉덩이
떨어지지 않으려 아직 펴지도 않은 주먹으로 나를 감싸안는 팔
등을 토닥이면 한 손에 다 느껴지는 아이의 작은 등판
이렇게 느껴지는 아이의 모든 게
지친 육체적 피로에서 나를 다시 자꾸만 움직이게 한다.
언제 커버릴지 몰라서
언제까지고 안아줄 수 있을지 몰라서
작고 작은 너의 지금이 너무 소중해서
나밖에 모르는 네가 언젠간 더 큰 세상으로 갈 텐데
그때가 성큼 와버릴까 아쉬워서
그래서 지치고 피곤한 몸이라도
그래도 다시 한번 아이를 안아 든다.
온 감각이 아이로 인해 생경해진다.
이런 살아있는 생명을 얻게 된 우리가
무에서 유가 되듯 만들어진 생명을 품은 내가
그 모든 시간을 거쳐 생명이 된 이 아이가
너무 신기하다.
그래서 힘들어도 행복하다.
앞으로는 더 힘들겠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겠지.
그래도 그 힘든 값에 대한 품삯은
그냥 아무 이유 없는 너의 웃음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
분명 이런 감정은 나뿐만이 아닌
주변의 모든 엄마들이 느꼈을 거라 생각해 본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들다.
힘들다 해서 안행복한 것은 아니니까
행복하다 해서 안 힘든 것도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