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03 월요일
시간은 10시 10분까지! 딱 1호를 등원시켜 놓고
2호를 챙겨 나오면 맞는 시간이었다. 뭔가 SNS에서 보기로는 꾸안꾸 느낌으로 힘주고 가야 하는 것 같은데, 굳이 그래야 하나...
그래도 예의 차려서 입고 가야 하나 잠깐의 고민을 했다.
만 1세 아가반의 정원은 5명인데 그중 4명이 같은 아파트 친구들이다. 매일같이 등하원할 때 보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는 것 같아서 평소보다 조금, 아주 티 안 나게 평범하게 입고서 갔다. (사실 힘줘서 입을만한 옷도 없고 체력도 없고 의지가 없다)
우리 집만 유일하게 남편도 함께한다.
끝나고 같은 반 어머님들끼리 처음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남편은 간담회만 같이하고 보내야겠다 하고 생각을 했는데,
‘끝나면 점심인데... 조금 야박한가? 아침에 다른 엄마들도 같이 오라 했다는데...’
그래도 뭔가 남편과 함께한다니 유난스러운 느낌이라 남편에게 계속 같이 갈거나며 물었는데 타박하듯 들렸나 보다. 퉁명스럽게 돌아온 남편의 말
“왜 그래? 난 가면 안 되는 거야?”
“아니, 안 되는 건 아닌데 아빠만 가는 집이 우리 집뿐인 거 같아서... 2호랑 모처럼 집에 있으면 어떠나 해서”
“나는 육아휴직 중 아니었어도 연차 써서 참석했을 거야(뾰로통)"
맞다. 실제로 남편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래서 이왕 가는 거 점심까지 함께 먹고 오기로...!
10시 조금 넘어 도착했다. 어린이집 1층에 아가반을 살짝 스치듯 봤는데 1호와 친구들은 산책을 나갈 준비 중이었던 것 같다. 영아 보조교사 선생님의 옆모습만 보고 2층으로 곧장 올라갔다. (모든 어린이집, 유치원의 룰은 등원한 아이와 마주치지 않기! 마치 007 작전 같은 이 기분을 기관 보내는 부모님이라면 공감할 듯) 이미 다른 부모님들은 도착해 계셨고 아가반 담임선생님과 원장 선생님이 함께 자리하셨다. 지난 3월 첫 등원해 8개월을 지내며 아이들이 놀고 활동하는 모습을 이야기하듯이 들려주셨다. 1호의 어린이집은 요즘 어린이집들과 다르게 키즈노트가 없다. (절대 도입하실 생각이 없으신 원장님의 철칙이다. 교사들이 키즈노트보다 아이들을 직접 대면하고 함께 자유롭게 놀이하기를 원하는 교육방침이 남편과 나는 너무 좋았고, 일주일에 단 하루 금요일에만 어린이집 카페 홈페이지에 올려주신다. 너무 귀하디 귀한 1호의 모습들을 기다려지는 날이다. 선생님 하드 좀 더 털어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그래서 선생님의 시선으로 담은 아이들의 놀이하는 모습은 너무 귀염 지고 그 현장에 같이 있는 것처럼 즐거웠다. 에밀리아-레지오 학습을 하는 1호의 어린이집. 아이들은 자유롭게 놀이하며 산책길에 만난 자연물들과 블록과 찰흙, 소꿉놀이를 하는 모습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들은 매일같이 새로운 게 아니어도 자신들이 선택한 놀잇감을 즐겁게 활용하며 놀았는데 웃는 표정이 너무 즐거워서 함께 미소가 절로 나온다. 집에서 엄마 아빠와 노는 모습 밖에 못 봤는데 선생님의 설명과 함께 이런저런 스토리로 1호의 지난 일과들을 보니 제법 즐기며 원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산책 나가서 즐겁게 노는 동안 엄마들이 이곳에 모여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겠지?)
같은 아가반 친구들이긴 하지만 친구들은 23년 1월, 2월, 3월 생 친구들이다. 12월생인 1호는 입학할 시점에 친구들과 이미 발달에 차이가 크게 났었다. 아이들에게 1~2달 차이도 발달 단계에 큰 차이가 있는데 무려 10개월 전후로 차이 나는 친구들이라니...! 게다가 1호는 14개월이 돼서야 걷기 시작해서 입학하고 적응 기간까지도 어린이집에서 유일하게 몇 발자국 못 걷는 아가였다. 아가반중의 아가 찐아가. 이런 1호가 이미 말로 표현을 하고 뛰어다니는 친구들 사이에서 잘 다닐 수 있을까?, 내가 너무 일찍 보낸 건가... 이게 맞나를 몇 번씩 생각했었는데... (심지어 친구들도 처음엔 친구가 아니라 1호를 ‘아가’라고 불렀다 ) 그런 염려와 다르게 1호는 놀고, 학습하고 모방하면서 친구들과의 관계를 설정해 나갔다.
어리고 어리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1호가 개월 수가 제법 차이 났던 친구들 사이에서 잘 놀고 잘 자라고 있다는 게 너무 기특했다. 물론 부모의 입장에선 이러하지만 같은 반 친구들 입장을 생각을 해보면 쉽지만도 않았을 것이다. 블록을 쌓아 놀거나 소꿉놀이를 하는데 아직 ‘함께 가지고 논다’는 개념을 잘 모르던 1호가 망가뜨리거나 몽땅 쏟아내기 일쑤였다고 선생님께 전에 지나가는 말로 전해 들었기 때문... 집에서 나랑 나무 블록놀이를 할 때도 쌓기가 무섭게 무너뜨리던 1호. 나도 너무 아쉽고(한편으론 조금 짜증(?)도 나고) 그랬는데 아가 반 친구들은 오죽했을까. 그런데도 친구들은 자신보다 아직 어린 1호에게 양보하며 놀고 함께 자라는 친구가 되어 주었다.
태어난 지 15개월. 몇 발자국 걷지도 못했던 1호. 가정 보육으로는 더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없어서 미안한 내 마음에, 하루 종일 함께 일과를 보내며 지친 내 체력 때문에, 이유식을 시작하고 유아식에 들어서며 제어되지 않고서 치밀어 오르는 내 감정 때문에 1호를 너무 일찍 기관에 보낸 게 아닌가 자책도 했었다. (이땐 왜 그렇게 체력이 없었나 생각해 보니 2호를 임신 중이었다. 그리고 집 주변에는 편하게 갈 수 있는 공원 하나 없고 죄다 아파트 공사 중인 터라 낮에는 흙먼지와 소음으로 어딜 가볍게 나갈 수가 없었다. 최소한 차를 타고 가야 뭐라도 할 수 있어서 체력적으로 더 지쳤던 것 같다.) 더군다나 같이 품앗이 육아를 하던 네 명의 친구들은 1호와 한 친구를 제외하곤 가정 보육을 더 하고 있던 때여서 더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 산으로 산책을 가고, 흙과 풀을 만지며 자연을 느낀다는 게, 매일 반가운 친구들과 웃으며 상호작용을 한다는 게 내가 다 채워줄 수 없는 영역이란 걸 느끼고 내려놓으니 마음이 좀 나아졌다. 매일 단조롭고 쳇바퀴 돌던 일상에 여유라는 틈이 생겼다. (한 끼를 원에서 먹고 온다는 게 제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먹태기가 오거나 자기 주도 식사를 하며 몽땅 어질러진 상과 바닥이 가장 심했던 감정의 동요였는데 점심 한 끼를 먹고 오기 시작하면서 아이에 대한 요동치는 감정의 파도를 잠재워줬다.)
가정 보육을 하며 엄마가 되도록 오래 데리고 있어야 아이가 안정감을 느끼고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말을 지나가는 글귀 속에 보곤 했다. 삐뽀 삐뽀 선생님도 기관에 보내는 건 만 3세부터 권장한다. 맞는 말이다. 이 나이 때 부모를 떠나서 즐거운 들 부모와 함께 있는 것보다 만족스러울까. 하지만 나와 무조건적으로 함께 있기만 한다고 해서 시간 대비 질적으로 좋은 게 있을 게 없을듯했다. 내 안에 자꾸자꾸 미안하기만 한마음과 나태함과 무력함만 하루 한 덩이씩 얹히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마음이 여실히 느껴질 때쯤 할까 말까 했던 어린이집에 입학을 결정했고 15개월. 몇 발자국 걷지도 못했던 1호는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아이의 자라나는 속도와 시간이 나로 인해 정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거다. 1호의 예쁘고 소중한 시간들, 내가 몽땅 가지고 뭐 할 텐가 꿰기라도 해 놔야 1호에게 성장하는 시간들로 만들어줄 텐데.
그렇게 1호는 적응을 해내며 (때때로 울며 등원을 하던 날도 있었지만) 날마다 자신의 속도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걷고 뛰고, 배운 것들을 말하지 않아도 몸으로 표현하고, 이젠 제법 말문도 트여서 많은 단어들을 모방하며 말하고 있는 1호가 되었다. 그 8개월 동안 1호는 얼마나 열심히 자라고 있던가를 간담회를 통해 새삼 느끼게 됐다. 기특한 내 새끼.
남편과 같이 오길 잘했다. 몇 안 되는 1호의 사진이 있었고 생각보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함께 와서 직접 보고 소감을 말하니 이제야 함께 육아휴직을 하는 의미도 생각하게 됐다. 자식의 행사와 일들을 직접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시간이란 걸...! 남편은 육아휴직 동안 등 하원뿐만 아니라 식단 검수와 재능기부(동화책 읽어주기), 부모 참여 활동에 참여도 하고 소풍 도시락도 나와 함께 쌌고, 하원을 하고 나면 1호와 이곳저곳을 가보며 시간을 보냈다. 육아휴직이 아니었으면 남편은 맘 편히 해볼 기회를 만들기가 어려웠을 거다. 그리고 함께 하며 1호와 2호를 양육하니 나도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 게 없다. (오히려 나보다 남편이 더 힘들어하고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건 어린이집 아가반 선생님과 종종 통화하거나 알림장으로 주고받으며 느낀 건데, 나는 1호를 어린이집에 ‘맡겼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크게는 어린이집, 그러니까 정확히는 아가반 선생님과 1호를 함께 키우고 있었다. 1호를 정말 귀여워해주시고 그 이상의 사랑으로 대하고 있다는 걸 많이 느꼈다. 내 아이를 의심 없이 믿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물며 부모님께 맡겨도 양육적, 교육적 가치관이 다르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런 걱정 없이 함께 1호를 키울 수 있는 대상이 있다니, 그것도 매일을! 선생님은 종종 1호가 출근할 이유라며 말씀하신다. 물론 나는 부모이기 때문에 1호의 행동이 정말 사랑스럽고 귀여운데 내가 생각하는 이 귀여움 포인트를 함께 아는 사람이라니. 귀하다 귀해.
(이런 나와 남편 그리고 1호에게 이런 선생님과 어린이집이 있다는 건, 보육 그 이상을 넘어서 양육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 양육 마인드맵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가지 중 하나이다. 이 어린이집에 만족하며 2호도 언젠가 함께 보내야지)
나갈 때도 미션은 딱 하나! 아이들과 마주치지 않기. 원장 선생님은 아가반 선생님께 영아 보조 선생님들과 연락하며 위치를 파악하라는 미션을 주셨고 마침 아이들이 저 멀리 산 입구 물고기 정원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놀고 있다고 한다. 아니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겠지만 재원 시간 중 엄마나 아빠를 잠깐이라도 마주치고 나면 이 이후 시간은 울음바다가 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나오기 전 1호가 생활하는 아가반을 잠깐 둘러보았다. 학기 초 적응 기간에 며칠 와봤을 땐 이 좁은 곳에서 5명의 아이들이 놀 수 있나? 싶었다. 지금은 그런 걱정은 전혀 없다. 아이들이 만지고 타고 놀았을 교구들과 장난감들 위로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목소리와 고사리 같은 손들이 보이는 것 같아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선생님이 꾸며놓으신 아이들의 사진은 엄마 미소에 덤이다. 언젠간 또 알림장 사이에 끼워져서 오겠지, 그리고 나와 남편은 냉장고든 자동차든 어딘가에 붙여놓으며 볼 때마다 귀여워하겠지.
-1호야, 1호 이름은 뭐야? (1호!), 그럼 엄마 이름은 뭐야? (엄~마!)
엄마들과 무사히 미션을 성공하고 근처 칼국숫집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평소엔 길게 하지 못했던 대화들을 잠깐이나마 더 나눴다. 지금은 다들 아이들의 엄마인 이름으로 살고 있었지만 서로들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엄마로서의 시간을 살아가기 전에 어떤 일을 하며 살았는지, 어떤 사람인지를. (나도 1호를 낳기 전의 삶들이 꿈같다. 혜민 언니의 말에 의하면 전생 같달까. 진짜 그런 기분이다. 내가 그런 일을 했었는지 지금 다시 복직해도 할 수 있는지... 거울 너머의 다른 차원의 내가 살았던 삶이 내 기억에도 심어져 있는 것처럼 이질감 느껴지던 엄마 이전의 나라는 사람.) 다들 조심스럽게 직업을 묻고 답을 하는데 너무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슈퍼우먼들이 내 주위에 있다니... 이런 멋진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이제는 삶에 일이 차지하는 비율이 적어지고 그 외 대부분의 시간들을 아이들의 엄마로서 보내고 있다.(아니 그 일을 하는 동안에도 엄마로서 살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지내고 있다...
엄마로서 양육에 쓰이는 삶은 너무나 당연한 거라 나로서 살았던 모습들이 빛바래진 것 같아 뭔가 씁쓸하다. (뭐 내가 엄청 대단한 직업을 가졌던 건 아니다.) 다른 엄마들은 내 직업도 대단하다며 말해주었지만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직업들을 가진 다른 엄마들이 더 대단해 보였다. 여하튼 이런저런 대화들을 주고받으며 조금 더 알게 되니 엄마들과 더 가까이 친하게 지내지고 싶어졌다.
혈혈단신 아는 이 하나 없던 이 곳에 1호로 인해서 내 관계가 만들어지고 넓어지고 있다. 연결고리들이 하나씩 하나씩 늘어나면서 외딴섬 같던 우리 가족이 자리 잡는 터전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로 인해 가까워졌지만 아이들이 좀 더 자라고 나면 개인과 개인으로써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다. 난 사람이 너무 궁금하다. 다들 각자의 어떤 이야기들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어떤 삶이 있는지 궁금해서 더 알아가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지금이야 만나려면 아이들을 떼 놓을 수 없으니 같이 만나고, 같이 만나면 정신이 없어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조금 미뤄두고... 오래 보면서 가까이 지내고 싶다. 그래서 이 관계들로 인해서 내가 더 나답게 지내는 날이 다가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