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도 소녀였던 시절이 있었겠지#18
할머니와 언니, 그리고 나는 지금은 각자의 방에서 자지만
언니와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한방에 붙어서 꾸역꾸역 같이 잤었어
그렇게 크지도 않은 안방이어서
셋이 누우면 빈 공간 없이 딱 맞아서 새벽에 화장실을 갈 때면
가장 바깥쪽에 누워있던 언니는 꼭 한 번씩 나와 할머니에게 발을 밟히며 ‘악’하는 비명소리를 내고는 했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서 언니와 나
특히나 나는 혼자만의 공간이 너무도 필요함을 느꼈고
우리 셋은 각자의 방에서 자게 되었어.
그렇게 자게 된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할머니는 부쩍 낮에 하품을 하며 피곤해하는 걸로 모자라
낮잠을 저녁잠처럼 주무시는 거야.
그런 할머니가 나는 어디 아픈 거 아닌지 걱정이 돼서 병원에 한번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며 물어봤어.
할머니는 요즘 들어 저녁에 잠을 못 자 그런 거라고 답하면서
나와 언니를 태어날 때부터 키우며 하루도 빠짐없이 같이 잤는데
지금은 우리가 각자의 방에서 자니 옆자리가 텅 비고 허전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시더라.
나는 내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자는 게 참 좋았는데
할머니는 우리가 없어서 새벽에도 우리 방을 살짝씩 열어보면서 잠 못 들고 계셨다는 거야.
그때 할머니는 아침에 일어나 잠에 드는 순간까지도 우리가 전부인 삶을 20년 넘게 살아왔다는 걸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딱 들었어.
새벽에 연년생인 언니와 나를 옆에 눕혀두고 혹시라도 깊이 잠들어 울음소리를 듣지 못할까, 선잠을 자던 습관 탓에 할머니가 유난히 잠귀가 밝다는 것도 그때 알았어.
참.. 생각해보니 옛날에는 할머니 없이는 잠을 못 자서 새벽에 잠깐 깼을 때도 할머니가 옆에 없는 걸 알면 엉엉 울고는 했는데
지금은 할머니가 잠깐 방문을 여는 그 시간도 알아서 자겠다며 그만 좀 열라고
짜증을 내니..
내가 참 이기적이구나, 못된 손녀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좀 많이 아리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