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전문 기자분을 만났다. 페이스북으로 연결되어 서로의 피드를 나누기 시작한 시간은 꽤 되었지만 직접 연락을 취한 것도 함께 만나는 자리를 가진 것도 처음이었다. 따스하게 보듬기보다는 다소 냉철한 혹은 비판적인 시각으로 집필을 해오신 분이었다. 간혹 SNS 담벼락에 던지시는 단상의 면면에서도 냉소기가 넘쳐흐르곤 했다. 때문에 무서운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듯한 긴장감도 느꼈지만 동시에 한국 축구산업에 대해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TV 드라마 시리즈들이 양적 팽창과 질적 성장을 거듭하는 동안 K리그는 왜 발전의 속도가 이리도 더딘 것인가에 대해 알고 싶었다.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한 유튜브 채널들이 수십만, 수백만 구독자를 얻어 가는 현재에 국내 프로 축구는 왜 콘텐츠로서 외면받고 있느냐에 대해 명확한 인사이트insight를 구하고 싶었다.
설레는 마음에 약속 장소에 30분 가까이 먼저 도착하였다. 기자님 역시 감사하게도 일찍 도착하셨고 우린 통성명도 거의 생략한 채 축구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는 언론인이고 나는 경영인이다. 축구 산업을 공통으로 하고 있지만 각 주체가 영역 내에서 가지는 역할과 추구하는 목표는 확연히 다르다. 또한 나는 K리그를 영양분으로 커왔지만 유럽에서 사업을 운영했고 그는 유럽 축구를 섭렵하여 글을 쓰지만 물리적으로 한국 축구에 더 밀접해있었다. 이러한 차이점이, 그러나 한국 축구산업의 발전이라는 통일된 주제에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을 가능케 해주었다.
세 시간 이상 이어진 대화의 흐름에서 우리는 희망적인 부분을 찾기도 했고, 동시에 그 희망이 실상 현실의 벽 앞에선 구체화되긴 어렵다는 것에 낙담했다. 우리 리그는 세계 많은 리그와 비교하여 돈이 적은 리그도 아니고, 아시아를 대표한다는 아시아 축구 강국의 포지션도 갖추고 있다. 축구 산업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열정 있는 인재들도 광범위하게 포석되어 있다. 이러한 훌륭한 내외부적인 자산을 갖추고 있음에도,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갈수록 자산을 레버리징leveraging 하려는 시도 자체가 우리 축구에서는 소 귀에 경 읽기로 흘러버리는 구조적 한계를 재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변화? 개선? 혁신? 내 곳간에 쌀가마니가 매년 차곡차곡 자동으로 채워지고 있는데, 무슨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괜히 쓸데없는 일 벌이다 가마니에 구멍이나 내는 거 아닌가.
축구산업은 축구를 멀리해야지만 더 건설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경험이다
지자체 구단에는 줄기차게 포상인사褒賞人事가 이어진다. 그들에게 구단은 주체적 사업체로 인식되지 않는다. 기업에게도 축구단은 사업체로 인식되지 않는다, 잘해봐야 CSR 일환이다. K리그 22개 팀 중 그 어느 팀도 기업으로 인식되거나 운영되지 않는다. 판으로 들어오는 돈은 판 속의 사람들, 그리고 그 판을 짜주는, 판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판 밖의 권력자들의 사적인 영달을 위해 회전되고 소각된다. 그들의 리그는 그들만의 암묵적인 룰에 의해 혼돈 속에서 질서를 갖추어 운영된다. 가끔씩 들려오는 산업 개선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를 그들은 더 재밌는 축구를 해야 한다는 식의 축구 논리로 전환시키며 꺾어버린다. 우리나라 프로 축구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재밌는 축구, 공격 축구, 팬들이 즐길 수 있는 축구라는 축구 프레임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산업 성숙과 성장의 기회를 놓쳐왔다.
유럽 축구는 매우 단순하다. 리그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3부, 혹은 2부까지만 올라가면 클럽은 자생할 수 있는 매출을 이룰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하부 리그 팀들은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면서 가진 재량 안에서 최적의 결과를 만들어 더 높은 리그에 올라가 좀 더 편하게 살 날을 꿈꾼다. 상부 리그 팀들은 수익을 남겨 다음 시즌에 더 투자하거나 하는 등의 전략을 구축한다. 내가 구단을 운영했을 때도 단돈 몇 유로도 그냥 쓰는 일이 없었다. 모든 씀씀이에는 기회비용을 줄이고 획득 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과 노력이 동반하였다.
우리나라 프로 축구는 참으로 복잡다난하다. 그 태생의 기원, 이들을 지탱해 준 자금의 출처가 이 특이성의 가장 근원적인 이유일 것이다. 죽고 살기로 아끼고, 아껴서 더 잘 살고 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부차적인 명분과 사욕들이 엉켜서 산업을 이해하는데 더 복잡한 메커니즘을 쌓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상기 축구 프레임을 씌운다. 게다가 미디어와 팬들의 사고 역시 여기서 그 확장을 멈춰버리곤 한다. 축구가 축구로 방어하며 나오는 판국에 축구 발전을 논하며 그 방어막을 깨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대한민국 프로 축구는 왜,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진지하고 포괄적인 고민을 경주해야 한다. 이 질문에 응하는 진실되고 깊이 있는 답을 찾는 과정이야말로 이런 메커니즘과 프레임을 해체하고 우리 축구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구체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이유를 축출해줄 것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발전을 위한 논리를 펼쳐나갈 수 있다.
기자님과의 대화를 통해 소중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갈증을 적지 않게 해소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산업 내의 더 많은 분들을 만나고 배움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의 바람, 한국 프로축구 산업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표를 더 구체화할 수 있었으면 한다. 헤어지는 발걸음이 양쪽 모두 가볍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한 걸음 더 나아간 거라고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