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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빈 Nov 06. 2021

민심을 이긴 당심..개혁보수와 작별한 국민의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대회 취재후기

  국민의힘 출입기자로 5일 열린 대선 후보 선출 전당대회 현장을 취재하고 왔습니다. 현장의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했습니다. 지지자들 간의 충돌도 없었고, 패배한 후보들이 즉각 승복을 선언하면서 아름다운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죠. 더불어민주당 경선이 끝나고 이낙연 전 대표가 이의제기를 하는 등 불복 논란이 벌어진 것과는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 발표 이후 온라인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경선 결과에 대한 좌절과 상실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여론조사에서 크게 앞서고, 2040세대가 지지했던 후보가 탈락한 데 대한 분노의 표현일 텐데요. 그간 국민의힘이 오세훈 서울시장-이준석 대표로 이어지는 개혁보수로의 변화 흐름에서 이탈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미리 예견됐던 윤석열 후보 승리


  사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승리는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1,2차 경선 때부터 윤 전 총장이 당원 투표에서 워낙 압도적으로 앞섰기 때문이죠. 


  최근 선거는 대부분 세대별 대결의 양상을 띕니다. 이번 국민의힘 경선에서도 2040 세대는 홍준표 의원을 지지했고, 윤 전 총장은 50대 이상 중장년층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국민의힘 당원 구성상 20대는 8.31%, 30대는 10.09%, 40대는 16.05%에 불과합니다. 2040세대가 똘똘 뭉쳐도 전체 당원의 약 34%에 불과하죠. 


  반면 50대는 27.6%, 60대 이상은 38%입니다. 당원 비율에서 청년층과 중장년층이 34 대 66 구조를 이룬 것이죠. 실제 당원 투표 결과도 홍 의원은 약 35%, 윤 전 총장은 약 58%를 얻어 세대별 선거인단 구성과 비슷한 결과를 보였습니다. 개혁보수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유승민 전 의원은 여론조사에서 10.7%를 기록했지만 당원 투표에서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4.3%를 얻는데 그쳤죠.


  저를 비롯해 여러 기자들은 국민의힘에서 4강 진출자를 가리는 2차 컷오프 경선 이후 새로 투표권을 얻은 19만 명의 당원 중 젊은 층의 비율이 높은 점에 주목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했던 건 전체 당원 구성 중 중장년층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었죠. 이로 인해 당내에서는 경선 기간 도중에도 윤 전 총장의 승리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윤석열 캠프는 자체적으로 여론조사에서 5~10%포인트 열세, 여론조사에서 20~25%포인트 우세를 예측했습니다. 여론조사와 책임당원 투표를 50%씩 반영하는 경선 방식을 감안하면 적게는 5%포인트에서 많게는 10%포인트까지 이긴다는 계산을 내놨죠. 실제로 두 후보 간 격차는 6.35%포인트였습니다. 홍 의원 측도 내부적으로는 여론조사에서 10%포인트 이상 이기더라도 당원 투표의 격차를 좁히기 쉽지 않을 것으로 봤습니다. 그렇기에 경선 막판 당원들에게 읍소하는 전략을 구사했지만 당원 구성상 한계가 뚜렷했습니다. 


  이처럼 어느 정도 결과가 예견된 선거였지만 막상 윤 전 총장의 승리를 보니 새삼 놀라웠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정치에 입문한 지 130일이 됐고, 국민의힘에 입당한 지 98일 된 후보가 제1야당의 최종 후보로 됐다는 것, 그리고 여론조사에서 10%포인트 이상 지고도 압도적인 당심을 기반으로 이길 수 있는 당의 구조가 피부로 느껴졌기 때문이죠. 


국민의힘 후보들의 이름이 새겨진 당 점퍼. 중장년층의 지지를 받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청년층의 지지를 받는 홍준표 의원을 꺾고 최종 후보가 됐다. ⓒ필자 촬영



'이준석-오세훈' 승리 공식 파괴


  국민의힘은 올해 4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오세훈 후보를 앞세워 57.5%를 기록하는 대승을 거둡니다. 이어지는 6월 전당대회에서 만 36세의 이준석 대표를 당선시키면서 정당 역사의 한 획을 그었죠. 개혁보수의 상징성을 지녔고, 2040 세대가 지지할만한 후보를 내놓으면서 당의 변화를 보여주는 전략으로 유권자들의 시선을 잡았습니다. 국민의힘은 탄핵의 강을 건너는 것처럼 보였고, 중도층이 보기에도 당이 바뀌었다는 인상을 줄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착시효과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선거인 대선을 앞두고는 다시 예전의 흐름으로 돌아가는 모습입니다. 2040 세대의 지지를 바탕으로 여론조사에서 10%포인트 이상 앞선 홍 의원이 중장년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윤 전 총장에게 패배한 것이 이를 상징합니다. 


  윤 전 총장의 경선 캠프는 사실 친이-친박 세력에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측근이 일부 결합된 형태라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새로운 얼굴은 없었던 거죠. 당 관계자는 "사실 국민의힘은 오세훈-이준석이라는 화장을 했던 것뿐이지 내부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라고 푸념했습니다.


  홍 의원을 열렬히 지지한 2040세대들은 여러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에 좌절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2030 세대는 취업난과 폭등하는 집값으로 계층 상승의 기회가 상당히 막혀 있습니다. 이들은 흙수저 출신의 무계파 정치인인 홍 의원을 통해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고 싶어 했습니다. 비유하자면 과거 노무현 열풍과도 비슷한 양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집단적 열망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죠. 이 상실감을 과연 윤 전 총장 측이 다독일 수 있을까요?


  기득권을 쥔 이들이 청년세대의 열망을 배신하고, 민심과 괴리된 후보를 뽑았다는 반감은 그리 쉽게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윤 전 총장 스스로가 국민의힘 내부의 기득권 세력과 결별하고 중도 확장성을 지닌 인물들로 캠프를 재편하는 게 첫 번째 과제겠죠. 

 

  윤 전 총장은 이 과제를 해낼 수 있을까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캠프를 물갈이하려는 순간 경선에서 승리를 일군 이들에게서 청구서가 날아들 것입니다. 정치 신인이자 '1일 1 실언' 논란에 시달리는 불안한 후보였던 윤 전 총장을 압도적인 당심으로 이기게 한 인사들이 순순히 물러날 리가 없죠. 선대위 구성에서부터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국민의힘은 이 딜레마를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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