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담기 위해 구매한 DSLR
내 첫 카메라는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사주셨던 30만 원가량의 디카였다. 예전부터 아버지는 남는 것은 사진이라 말씀하시며, 기억하고픈 순간을 카메라와 캠코더에 남기기를 좋아하셨다. 도쿄로의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내게 건네주셨던 그 카메라는, 처음 밟는 이국 땅의 기억을 간직할 도구를 선물하고픈 마음이 아니셨을까. 나도 아버지가 그래왔던 것처럼, 그 뒤로 여러 장면과 순간들을 디카에 담았다. 주변의 풍경과 친구들은 물론이고, 싱가포르,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대만, 일본을 비롯한 여러 장소에서의 추억이 디카 속에 담겼다. 여권을 처음 만들 땐 이 많은 공간을 다 채울 수나 있으려나 싶었는데, 어느덧 여권엔 여러 나라에서 받은 도장들이 빼곡히 채워졌다. 그리고 늘어난 여권 속 도장들만큼이나, 디카에 담은 사진들도 차곡차곡 쌓였다.
새 카메라를 장만해야겠다 처음 마음을 먹은 것은 몽골 여행을 결심했을 때였다. 이 카메라로는 몽골의 별과 은하수를 찍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몽골의 별을 카메라에 담을 기회가 또 언제 찾아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름의 몽골 여행을 위해, 겨울부터 그다음 봄학기까지 학교에서 근로를 했다. 그렇게 모은 돈이 대략 120만 원 정도였다.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폭풍 검색을 한끝에, 선택지를 몇 가지로 추릴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 결정을 내린 채로 용산 전자상가로 향했다.
렌즈는 미리 생각했던 것과 같은 것으로 골랐다. 한정된 예산이었지만 렌즈만큼은 새 걸로 구매하고 싶었고, 계획대로 새 렌즈를 샀다. 카메라 바디는 초급자용을 구매하려던 원래의 계획과는 달리, 중급자용을 샀다. 조리개 값과 셔터스피드를 조절할 수 있는 버튼이 따로 있다는 점과 설정해 놓은 값들을 작은 화면에서 미리 확인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예상보다 더 편리하게 느껴졌다. 다만, 예산 때문에 카메라 바디는 중고로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DSLR을 만난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셔터를 누를 때 느껴졌던 손맛. 그 느낌에 매료되어 자리에서 몇 번이나 셔터를 눌러댔다. 사진을 찍을 때의 손맛을 맛보고 그대로 돌아설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으리라. 처음 카메라를 들었을 때 느껴졌던 묵직한 무게감도 꽤나 마음에 들었다. 사진을 찍을 때 수전증으로 인해 카메라가 흔들리는 것이 항상 고민이었는데, 그 묵직함이라면 걱정을 한 움큼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디어 내게 DSLR이 생긴 순간이었다. 항상 사고는 싶었지만 미뤄온 순간이었는데, 몽골 여행이 그 순간을 더 이상 미루지 않게 도왔다.
카메라 가방을 들고 몽골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의 설렘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토록 꿈꿔왔던 장면들을 이 카메라에 담는다니, 믿기지 않았다. 사실 설렘의 크기는 다르지만, 카메라를 들고 어딘가로 나서는 순간마다 나는 설렌다. 찍고자 했던 장면이,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순간이 그곳에 담길까 하는 생각에. DSLR을 구매했을 때에 비해 눈에 띄게 좋아진 스마트폰 카메라 때문에 무거운 DSLR에 먼지가 소복이 쌓이는 시간이 점차 많아졌지만, 더욱 선명하게 기억해두고 싶은 장면이 있을 땐 오른쪽 어깨에 양해를 구하고 카메라 가방을 챙긴다.
사진을 찍으면 어떤 장소의 아름다움을 보고 촉발된 근질근질한 소유욕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다. 귀중한 장면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불안은 셔터를 누를 때마다 줄어든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중
여행 때마다 카메라를 무조건 챙기는 것은 귀중한 장면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다. 유별나게 마음에 드는 장면을 만나면 나는 셔터를 더 많이, 더 자주 눌러댄다. 그렇게 하면 그 순간을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을 것만 같다. 불안감이 얼마나 심했으면,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나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에 이르러서야 카메라를 챙기지 않은 것을 알아차리는 꿈을 몇 번 꿨다. 어떤 사람에겐 쉽게 잊힐 개꿈일지도 모르나, 내겐 재입대를 하거나 전역이 미뤄지는 꿈 다음으로 가장 무서웠던 악몽이었다. 대부분의 꿈은 휘발성을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카메라를 챙기지 않아 허둥지둥 대는 나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한 것을 보면, 카메라는 내게 여행을 떠날 때 빼먹으면 안 되는 필수품임이 분명하다.
불안감 때문에 언제나 무거운 카메라를 챙기는 습관은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의 성격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한다. 모든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물건이든 간에 집을 때마다 추억이 떠오른다. 혹시나 물건을 버리면,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추억까지 버려질까 하는 걱정에 무엇이든 쉽게 버리지 못한다. 여러 물건을 둘 수 없는 좁은 기숙사 방에서 산 시간이 오래되면서 예전보단 나아졌지만, 여전히 나는 미니멀리스트보단 맥시멀리시트에 좀 더 가깝다. 그리고 남는 것은 사진이라 하셨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매번 여행지에서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든 채로 많이 걷는 바람에 다리와 어깨가 항상 욱신거렸지만, 그 덕분에 남들은 지나쳤을 장면들을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카메라를 챙기는 또 하나의 이유는 여행 이후의 삶을 위해서다. 일상에서 힘들고 지치는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예전에 찍어뒀던 사진들을 꺼내본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나면 문장과 페이지를 기록해 두는 것처럼, 여행할 때 찍어뒀던 사진들은 삶을 살다가 마음에 드는 순간을 남겨둔 것과 같다. 특히 몽골 여행은 같이 떠났던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서로 최고의 여행으로 꼽을 정도로 맘에 들었는지라, 그때 찍은 사진들이 내 삶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은 꽤 크다. 군대에 갔을 때도 밖에 나가고 싶을 때마다 몽골 여행 때 찍었던 사진을 꺼내보며 위로를 받았다.
몽골 여행 전에 돈을 모아서 DSLR을 구매했던 것은 여러모로 잘한 선택이었다. 그 덕에 여행지에서 마주한 의외의 순간들과 기억해두고 싶은 장면들을 많이 남길 수 있었으니. 내게 카메라는 수명을 다할 때까지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여행의 필수품이자, 단짝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