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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목 Sep 29. 2023

별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던

무수히 많은 별, 그 아래에서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과 은하수를 담은 사진은 몽골 여행을 결심하게 한 결정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비현실적이었던 장면이었다. 와닿지 않았기에, 더욱 간절하게 만나고 싶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직접 세다가 포기한 때가 얼마나 있을까. 주위에 아무것도 없었던, 밤이 찾아오면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았던 고등학교 옥상 위에서 밤하늘을 채우는 별들을 봤을 때를 제외하고는 딱히 기억이 나는 때가 없다. 군대에서 야간근무를 섰을 때 평소보다는 많은 별을 볼 수 있었지만, 머릿속 한편에 자리 잡을 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수많은 별이 자리 잡은 밤하늘이 야간근무 때마다 반겨줬다면, 그토록 지루하고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아니면, 반대로 그 시간이 너무 지루하고 힘들어서, 그때의 밤하늘이 생각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면서 말 그대로 별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던 밤하늘을 마주했던 건 몽골 여행 때가 유일했다. 투어 첫날, 해가 지고, 하늘이 점차 검게 물들면서 자취를 감추고 있던 별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별을 세는 일은 자연스러운 습관이었고, 항상 금세 끝에 다다르는 행위였다. 오히려 별을 찾으려 고개를 젖혀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무용해지는 것이 일상다반사였고, 별을 가리켰던 손가락을 다른 별로 옮기려다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자연스럽게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세다, 어느 별까지 셌는지를 잊어버려 길을 잃어버렸다. 일상에서는 별이 없어서 별을 세는 일이 무용했다면, 몽골에서는 별이 너무 많아서 별을 세는 일이 무용했다. 별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별이 빼곡히 채워져 있는 밤하늘을 생애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정말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을 지칭하는 어떤 단어를 가져와도 부족할 정도로.


몽골의 들판 한복판에서 처음 맞는 밤은 예상보다 더 추웠다. 낮에는 여름이었지만, 밤에는 겨울이 저만치에 와 있는 것 같은 늦가을 날씨였다. 하지만 게르 안에 머무르고 있기엔 밤하늘이 너무 예뻤고, 얇은 패딩을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한참을 밖에 서 있었다. 은하수와 수많은 별들,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출 정도로 빛났던 달,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일상에선 몇 없는 별들을 보며, 혹여나 아는 별자리가 있을까 찾기 바빴는데, 몽골의 밤하늘에는 별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어떤 모양의 별자리든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날의 밤하늘을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별똥별이었다. 별똥별은 일상에서 마주하기 힘든 것이고, 그렇기에 별똥별을 볼 때면 소원을 빌었다. 소원을 빌려하는 찰나에 별똥별은 금세 자취를 감추기 일쑤였는데, 그날 몽골의 밤하늘에서는 별이 시도 때도 없이 떨어졌다. 왼쪽 하늘에서 나타난 별이 지평선 가까이까지, 기나긴 획을 그리며 한참 동안이나 떨어지면 장면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별똥별이 밤하늘에 남긴 획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내는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었던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얘기하며 밤하늘을 바라보다, 게르에 들어가 몸을 녹이다, 다시 나와 밤하늘을 쳐다보는 일을 수없이 반복했다.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별들을 바라보자마자 가슴이 벅차올랐던 것은 그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별이 가득 차 있던 몽골의 밤하늘을 찍은 사진을 보고, 그 장면을 직접 담아내고야 말겠다는 일념 하에 돈을 모아 카메라를 산 일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 드디어 찾아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토록 꿈꿔왔던 장면이 내 앞에 있었고, 내 손에는 삼각대와 카메라를 들려 있었다. 곧바로 삼각대를 펼쳐 땅 위에 얹은 다음, 카메라를 삼각대에 결합시켰다. 미리 인터넷에서 찾아본 대로 조리개 값과 셔터 속도를 조절하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대망의 순간이었다. 30초 정도를 기다렸고, 찰칵 소리가 들린 뒤에 결과물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기대했던 것과 달리, 시커먼 밤하늘만이 존재했다. 당혹스러웠다. 이 문제를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당장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아직 DSLR에 익숙하지 않은 신출내기였고, 그곳은 인터넷이 되지 않는 오지였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카메라와 빠른 시간 내에 친해져야만 했다. 이리저리 만져도 보고, 값도 조정해 봤지만, 카메라 화면 속에는 여전히 새까만 밤하늘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카메라와 씨름했지만, 나는 그날 그토록 꿈꿔왔던 별 사진을 찍지 못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감격스러움과 아쉬움이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감정들을 붙든 채로 잠에 들었다.


둘째 날 밤, 무엇이 잘못됐는지 결국 찾아냈다. 문제는 의외로 정말 간단했다. 별을 찍으려고 하면서, 계속해서 밤하늘에 초점을 맞추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자동 초점으로 되어 있던 걸 수동 초점으로 바꾸기만 하면 해결될 문제였다. 가끔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가 그러했다. 더군다나, 오랜 시간 꿈꿔왔던 장면을 앞에 두고도 예상과 다른 결과물을 계속 얻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은 탓에, 더 조급해져서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던 것 같다. 추웠던 날씨도 조바심이 나게 하는 데에 한몫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결국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별을 카메라에 담는 데에 성공했다. 카메라 화면에 담긴 수많은 별을 확인한 뒤, 나직한 환호성을 지르고, 삼각대에서 카메라를 떼어내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여줬다. 오히려 허둥지둥 대던 시간이 있었기에, 원했던 결과물을 처음으로 얻어냈던 그 순간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이 아닐까.


별을 카메라에 담기는 했지만, 결과물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셋째 날에는 비가 와서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없었고, 넷째 날 밤에 이르러서야,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별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그 느낌이 사진에 담겼다. 그리고 그날, 마음에 드는 별 사진을 얻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별이 가득 찬 밤하늘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방법 또한 터득할 수 있었다. 그날은 처음으로 게르가 아닌 텐트에서 밤을 보냈던 날이었다. 텐트를 친 후, 테이블과 의자를 펼쳐 놓고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은 뒤, 블루투스 스피커로 노래를 틀어 놓고서 낮에 사놓은 주전부리와 수많은 별이 채워진 밤하늘의 풍경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셨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의자에 앉아서, 혹은 돗자리 위에 누워서 밤하늘의 별을 지긋이 보는 일이 이토록 황홀한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밖에 꺼내놓은 맥주도 냉장고에 넣었을 때만큼 차갑지는 않았으나, 그런대로 시원해서 좋았다. 적당한 탄산감과 시원함을 간직한 맥주가 목구멍을 간지럽혔던 때가 추운 날씨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순간이었다. 맥주가 미적지근했어도 뭐 어떤가. 그토록 아름다운 장면을 앞에 두고 마시는 술의 맛이 없을 리가 있겠는가. 그렇게 한참이나 아름다움을 실컷 만끽하고 나서, 카메라에도 가득 담았다. 이번에는 아쉬움 없이, 황홀함과 감격스러움만을 안은 채로 텐트 안 침낭 속에 몸을 뉘었다. 내일이면 또 마주할 별과 은하수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넷째 날 밤 찍은, 밤하늘의 별과 은하


매일 밤마다 넷째 날 밤에 알게 된 밤하늘의 별을 즐기는 방법을 실천했다. 어떤 날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은 채로 테이블을 펼쳐 놓고, 의자에 앉아 술을 마시며 밤하늘의 별을 만끽했고, 어떤 날은 돗자리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눈에 실컷 담았다. 슴슴한 육수와 입이 맞대는 순간이 많아질수록 평양냉면의 매력이 더 진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별이 가득 메우고 있었던 밤하늘의 풍경은 마주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더 좋아졌다. 눈꺼풀이 감길 정도로 피곤했음에도, 그 순간을 더 붙들고 싶어서 매번 게르나 텐트 밖에 나와 한참을 밤하늘에 두 눈을 뒀다. 친구들이 다 잠에 든 뒤에, 바위나 돗자리 위에 누워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며 밤하늘의 별을 한참 동안 바라봤던 매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참으로 행복했다.


당시에 내 플레이리스트를 주로 채우던 것은 맥 밀러의 <Swimming> 앨범이었다. 그 앨범이 내는 분위기는 별이 가득했던 밤하늘과 찰떡궁합이었다. 몽골 여행을 다녀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맥 밀러의 부고를 들었다.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사람이었지만 정말 좋아했던 예술가였기에, 특히 몽골 여행 동안 행복했던 순간마다 그의 음악이 함께였기에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밀려왔던 슬픔은 무척이나 컸다.


나는 맥 밀러의 음악을 꺼내 들을 때마다, 별을 찾아보기 힘든 우리나라의 밤하늘을 쳐다볼 때마다 별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던 몽골의 그 밤하늘이 생각날 것이다. 숨 막힐 듯 아름다웠던 그 장면은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면 문득 찾아와 나를 위로해 줄 것이다.


마지막 날 밤에 찍은 밤하늘과 게르. 별똥별이 남긴 하나의 획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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