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술이 빠질 수는 없지
술이 아니면 건널 수 없던 시절이 있었거나 술을 통해서만이 타인과 진실로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술이 그 자체로 좋았다.
-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중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술을 처음 접한 이후로, 줄곧 술이 좋았다. 힘든 시기를 이겨내거나, 누군가와 가까워지기 위해 술의 힘을 빌리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술이 함께 했던 때와 힘든 시기가 겹쳤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순간이 즐겁기도 했지만, 그런 이유만으로 술을 마셨던 것은 아니었다. 술을 마시는 특정한 때나 이유 같은 건 없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다 보니 술 생각이 나서, 날이 좋아서, 비가 와서, 오랜만에 모인 자리여서, 적적해서 등등. 누군가를 왜 좋아하냐 물었을 때 갖가지 이유를 댈 수 있는 것처럼, 나는 술을 마시고 싶은 갖가지 이유를 댈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필요 없는 것처럼, 모든 이유에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 술 생각이 났고, 마시고 싶었을 뿐이다. 그저 술이 좋았을 뿐이다.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되면서, 차츰 쌉싸름한 소주의 진정한 맛을 깨치게 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소주의 쓴맛이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 사이에 크나큰 인생의 시련이 찾아왔다거나, 유별난 인생의 쓴맛을 맛봤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도 함께한 시간이 쌓이면 몰랐던 매력을 알게 되고 점차 마음에 들어지는 것처럼, 소주도 자주 마주하다 보니 자연스레 좋아졌던 것 같다. 쌉싸름한 맛 말고는 어떠한 존재감도 내뿜지 않아서 웬만한 음식에 다 잘 어울렸다. 그리고 다른 술에 비해 배가 덜 불렀고, 금세 취기가 올랐다. 가벼운 대학생의 주머니에 저렴하고 금방 취하는 소주만 한 선택지가 없기도 했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라지기는 했으나, 물처럼 느껴질 정도로 밍밍할 때도 좋았고, 약간의 쌉싸름함이 느껴질 때도 좋았고, 유독 쓰게 느껴질 때도 좋았다. 어떤 순간이든, 저마다의 이유로 좋았다.
맥주는 식도를 찌르는 탄산과 더위와 갈증을 시원하게 씻어 내려주는 목 넘김 때문에 좋아했다. 대학을 다니던 첫 해, 독일과 체코에서 먹었던 맥주가 나를 완전히 흔들어놨다. 특히, 체코에서 먹었던 코젤 흑맥주의 부드러운 목 넘김과 달콤 쌉싸름함, 약간의 스모키 한 향은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의 황홀한 풍미였다. 맥주의 세계는 생각보다 넓었다. 그 뒤로 나는 각기 다른 맥주로부터 각기 다른 매력을 느끼며 경험치를 늘려갔다.
소주와 맥주를 시작으로, 여러 종류의 술을 접했고, 다양한 술의 매력에 빠졌다. 취향에 맞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각자가 가진 매력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완전히 싫어하는 주종은 없는 것 같다. 도수가 높은 술이든, 낮은 술이든, 향이 강한 술이든, 약한 술이든, 각기 다른 이유로 좋았다. 새로운 술을 시도하는 순간이 매번 성공으로 끝났던 것은 아니지만, 그 술과의 작별 인사는 영원한 이별보다는 다시 만날 날을 위한 기약에 가까웠다. 언젠가는 이 술의 매력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있겠지, 비워낸 술잔의 수가 많아지면 취향이 지금과는 달라질 수도 있겠지.
대학에 들어온 이후, 술과 긴 시간을 떨어져 지낸 거의 유일한 시기는 군대에 있었을 때였다. 맛있는 음식을 떠올리며, 짝꿍이 될 만한 술을 함께 떠올리는 것이 군대에서의 낙이자, 나를 괴롭게 했던 습관이었다. 술에 대한 갈증이 어느 때보다 컸기에, 가끔 술을 만날 기회가 찾아오거나, 휴가를 나가서 술을 마실 때면 유난히 신이 났던 기억이 있다. 군대에서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술은 언제나 내 일상의 단짝이었다. 여행을 떠날 때도 술을 빼놓을 수 없었다. 아니, 빠지면 안 됐다. 낯선 땅에서 그 지역의 술을, 그 지역의 음식과 함께 먹어볼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 다른 지역의 술 문화를 경험하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걱정 없이 낮술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여행지에서 낮술을 할 때의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낮술을 곁들이면 음식의 맛도, 기분도 더 좋아졌다. 낮술은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기도 했다.
몽골 여행의 주인공은 보드카였다. 몽골이 보드카로 유명하다는 것은 여행을 가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 독주와 친하지 않았던 나는 몽골에서 보드카를 마실 일이 거의 없을 줄 알았다. 독주 중에서도 보드카는 엠티에 갔을 때 콜라를 비롯한 음료수를 섞어 먹은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기대보단 걱정이 앞섰던 것 같다. 어찌 됐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몽골에서의 첫 술은 결국 보드카였다.
투어 동안 매일 낮마다 식자재, 물을 비롯해 필요한 것들을 사기 위해 마을 식료품점에 들렀다. 하루 중에 허락된 유일한 쇼핑 시간이었기 때문에 가이드 누나가 식자재를 고르는 동안, 우리는 간식거리와 음료수 같은 것들을 골랐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투어 둘째 날 때쯤, 가이드 누나가 식자재를 사면서 보드카 한 병을 샀다. 칭기즈칸 보드카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깔끔한 뒷맛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차에서 우리는 종이컵에 보드카를 조금씩 따라 건배하고 마시기를 반복했다. 안주는 함께 샀던 매콤한 맛의 과자. 흔들거리는 차 안에서 종이컵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와중에도 틈 날 때마다 술을 홀짝 거렸다. 몇 번 홀짝거리자 금세 기분이 좋아졌고, 신이 난 상태로 마구 떠들고 노래도 따라 불렀다. 역시 어떤 술이든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독주 특유의 타는듯한 목 넘김이 아직 익숙지 않을 때이긴 했지만, 뒷맛이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게 좋아서 틈 날 때마다 홀짝거렸다. 그날 밤, 반 병 정도 남은 보드카를 별이 가득 찬 밤하늘을 배경 삼아 친구들과 함께 다 비웠다. 친구 한 명은 술을 잘 못해서, 나와 남은 친구 한 명이 거의 다 마셨고, 취기가 오른 상태로 기분 좋게 잠에 들었다. 하루 만에 보드카 한 병을 다 비워서 숙취를 걱정했는데, 다음 날 아침에 생각보다 개운하게 일어났다. 술이 깔끔해서, 공기가 좋아서 숙취가 없는 것 같다고 오전 내내 신나서 떠들어댔다.
당시에 함께 보드카를 비웠던 친구 한 명은 숙취가 심해서, 투어 마지막 즈음에 이르러서야 여행의 마무리를 기념하기 위해 마을 식료품점에서 보드카 한 병을 하나 더 사서 마셨다. 그 전까지는 맥주가 여행의 새로운 주인공이었다. 꽤 추웠던 밤 날씨 덕에 맥주를 바깥에 꺼내놓기만 해도 나름 시원하게 마실 수 있어서 좋았고, 맛도 꽤 마음에 들었다. 별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밤하늘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지만, 술과 함께일 때는 더욱 좋았다. 밤하늘을 안주 삼아 마시는 순간도 좋았고, 맥주 두 캔 정도를 비우고 취기가 살짝 오른 상태로 바라보는 풍경은 맨 정신으로 바라봤을 때보다 더 특별했다. 약간 취기가 올랐을 때 의자에 몸을 늘어트려놓거나, 돗자리 위에 뻗은 채로 이른바 '별멍'을 때릴 때는 흘러가는 시간을 잠시만 잡아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했다.
투어의 마지막 밤, 그날의 음주는 몽골식보다는 한국식에 가까웠다. 술게임을 하자는 가이드 누나의 제안에, 우리는 보드카를 부어둔 종이컵을 중간에 놓고서 술게임을 했다. 무슨 게임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게임에 진 뒤에 들이켰던 꽤 많은 양의 보드카가 식도의 위치를 일러줬던 그 순간은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했듯이, 먹는 술의 양이 쌓여갈수록 게임은 더 빨리 마무리되기 일쑤였고, 우리는 둘째 날보다 보드카를 더 빨리 비웠다. 아쉬웠던 건, 마지막에 먹은 보드카가 처음 먹었던 칭기즈칸 보드카만큼 깔끔한 맛이 아니었던 거였다. 희석식 소주를 마실 때와 마찬가지로, 뒷맛이 깔끔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수는 소주보다 훨씬 높아서 뒷맛이 지저분한 편에 가까웠다. 처음 먹었던 것보다 뒷맛이 지저분했던 보드카를, 처음 먹었을 때보다 빨리 비웠기에 숙취가 심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걱정했던 대로,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다음 날 아침, 숙취로 인해 머리도 아팠고, 속도 좋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염 증세도 함께 찾아왔다. 더군다나, 마지막 일정은 울란바토르를 향해 하루종일 차를 타고 이동만 하는 일정이었고, 숙취와 장염이 함께 찾아온 상황에서 덜컹거리는 차 안에 꼼짝없이 앉아있어야 하는 상황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온갖 후회가 밀려왔다. 과유불급이라 하지 않던가.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못한 것이다. 특히, 그곳이 낯선 여행지라면 더더욱. 울렁거리고 어지러웠던 투어 마지막 날의 아찔했던 오프로드는 내게 값비싼 교훈을 줬다.
보드카가 몽골 사람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컸다. 술 이상의 의미를 지닌 듯했다. 속이 안 좋다고 했을 때 마을에 들러 가이드 누나가 사 왔던 것은 보드카였고, 풀독이 올라 벌게진 손에 발랐던 것도 보드카였다. 우리나라 민간요법에는 다양한 주연들이 있었는데, 몽골의 민간요법에선 보드카가 항상 간판 주연 배우였다. 몽골에 가보지 않았다면, 그저 몽골 보드카가 유명하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 이토록 몽골 사람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술을 좋아하지만, 기쁜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항상 지나치게 마시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취기가 올라 기분이 좋아지면 그 다짐은 쉽게 깨어져버렸다. 그렇게 신나게 달리고 나면, 언제나 막심한 후회와 함께 다음날 아침을 맞이했다. 즐겁고 기쁜 순간만 함께 했다면 좋으련만, 나의 술 역사에는 희로애락이 다 존재했다. 그리고 그 희로애락은 여행에서 더 극적이었다. 술을 마신 뒤에 찾아온 기쁨과 즐거움도 더 컸고, 숙취와 함께 찾아온 후회와 고통도 더 컸다. 그 후회와 고통이 독주의 쌉싸름함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괴롭게 한다는 것을 알지만, 술을 마신 뒤에 찾아오는 기쁨과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다. 숙취로 인해 괴로워했던 몽골 투어의 마지막 날이 있었음에도, 몽골에서 술과 함께했던 순간들을 지금도 그리워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