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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목 Oct 03. 2023

OFF인 시간의 소중함

온종일 ON이었던 삶에서 잠시 멀어지면서

우리는 어쩌면 항상 ON인 삶을 산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로, 메신저와 SNS 등을 통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여러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접해 있다. 내 삶도 그러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스마트폰을 처음 손에 쥔 이후로, 몽골 여행을 떠나기 이전에 일상의 대부분이 OFF였던 적은 스마트폰 사용을 금했던 고등학생 때밖에 없었다.


여행 준비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몇 가지 있고, 현지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방법을 찾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여행지에서 검색을 하고, 길을 찾고, 긴 시간을 이동할 때와 같이 무료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인터넷은 필수이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몽골 여행을 가기 전, 그곳에서 어떻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지 검색해 봤다. 검색 끝에 현지에서 유심침을 구매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 판단을 내렸고, 고비 사막 투어를 떠나기 전 숙소 근처 백화점에 들러 유심침을 구매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고비 사막 투어 동안 유심칩이 큰 쓸모는 없었다.


유심칩이 큰 쓸모가 없을 것이란 건 울란바토르를 벗어난 뒤에야 깨달았다. 어디서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이곳에서도 유심칩을 휴대폰에 꼽기만 하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투어 동안 우리에게 유일하게 인터넷이 허락된 순간은 식자재를 사러 마을에 들를 때뿐이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검색도 불가능했고, 연락도 할 수 없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메모해 두었다가 마을에 들렀을 때 검색했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그 자리에서 바로 읽어보지 않고 캡처를 해 두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듣고 싶었던 노래들을 저장하기 바빴다. 당시에 내가 쓰던 음악 스트리밍 어플은 벅스였는데, 다행히 저장해 둔 노래들을 오프라인 상태에서 들을 수 있는 기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노래들이 저장되기를 기다리며, 카카오톡으로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네이버로 세상 소식을 살펴보다 보면 우리에게 인터넷이 허락된 유일한 그 시간은 금세 끝이 났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 너무 불편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지 않는가. 나는 금세 새로운 삶에 적응할 수 있었다. 오히려 여행의 순간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휴대폰을 꺼낼 때는 오직 재생할 노래를 고를 때와 사진을 찍을 때밖에 없었다. 여행의 순간을 그때마다 공유할 수도 없었다. 덕분에 차로 이동하는 동안 휴대폰에 잠시 정신이 팔릴 수도 있었던 나의 두 눈은 언제나 차 안의 대화와 차창 밖의 탁 트인 풍경을 향했고, 하루의 끝에서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찾고 있었을지도 몰랐을 내 두 눈은 별이 가득 찬 밤하늘을 항상 향할 수 있었다. 고비 사막 투어 동안 누군가가 내게 연락했을까 확인할 필요도, 내가 올린 게시물에 대한 반응을 살펴볼 필요도, 세상의 소식을 확인해 볼 필요도 없었다.


온라인 공간을 언제나 드나들 수 있는 자유를 헌납한 대신, 오프라인 공간에 집중하는 시간은 더 많아졌다. 어느 때보다 여행에 더 진득하게 집중할 수 있었고, 몽골 여행의 농도는 덕분에 더 짙어졌다.


휴대용 단말기를 누구나 갖게 된 현대 사회에서는 퇴근 후에도, 공휴일에도 일에 쫓기며 살아간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사무실에 있으면서도 취미 관련 정보를 손쉽게 수집할 수 있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즉 일상에서 ON과 OFF의 구분이 사라진 것이다. 휴대용 단말기의 보급이 ON과 OFF 사이에 존재했던 벽을 허물어버린 것이다.

- 마스다 무네아키, <라이프스타일을 팔다> 중


언제든 ON인 삶을 살게 한 스마트폰은 과연 편리함만 주었을까. 우리의 삶에는 온라인, 오프라인을 구분 짓는 스위치도 있지만, 일할 때와 쉴 때를 구분 짓는 스위치도 있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휴대용 전자기기는 우리를 온라인에 항상 접해 있게 하면서, 일할 때와 쉴 때의 구분도 없앴다. 우리는 일하는 중간의 쉬는 시간에 즐길 거리를 찾을 수 있게 됨과 동시에, 놀 때도 일에 대해 걱정하게 되었다. 일과 휴식의 구분이 없어진 것은, 바꿔 말하면 완전한 휴식이 힘들어졌다는 것과 같다.


스마트폰은 삶의 스위치를 언제든 ON에 가 있을 수 있게 만들었다. 타인과 매 순간 접해 있을 수 있게 되고, 일과 휴식의 경계를 없앰으로써 나만을 위한 시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앗아갔다. 그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느낀 후, 나는 스위치를 끄는 연습을 했다. 스마트폰에 눈을 돌리지 않고, 온전히 지금에 집중하는 연습을 했다. 스마트폰이 아닌 활자로 된 책을 들고, 스마트폰 화면 대신 주위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산책도 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부터 완전히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했다. 삶의 스위치를 ON으로 돌려놓는 것은 습관이었다.


삶의 스위치를 완전히 OFF로 돌려놓는 일은, 그러지 못할 때 비로소 가능해졌다.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몽골에 내 두 발이 닿고서야 완전히 OFF인 삶을 잠시나마 살 수 있었다. 스마트폰 속 인터넷 세상과 강제로 격리된 시간을 보내며, OFF인 삶의 소중함을 느꼈다. 현실의 문제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고, 지금에 오로지 집중할 있었던 시간을 보내며, 이따금씩 온전히 삶의 스위치를 OFF로 돌려놓는 시간을 가지자 다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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