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평야 뷰를 곁들인
몽골을 여행하는 동안 음식을 먹을 때마다 정말 운이 좋다 느꼈다. 현지 음식을 먹을 때도 있었지만 가이드 누나가 해준 음식을 먹을 때가 많았는데, 음식 솜씨가 정말 좋으셨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한국 음식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공부를 할 때, 족발집에서 알바를 했다고 얘기했는데 그때의 경험 덕분일까. 아니면 원래 음식 솜씨가 좋고, 관심이 많아 한국에서 먹은 음식들이 모두 경험치가 되었던 것일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현지의 재료를 쓰는데도 불구하고 익숙한 맛이 났다.
양, 낙타, 소고기, 매번 고기의 종류는 달라졌지만, 몇 가지의 뿌리채소들과 함께 매콤한 양념에 볶아낸 고기를 밥에 얹어줬던 그 음식은 먹을 때마다 맛났다. 제육덮밥과 비슷한 맛이었는데, 돼지고기가 아닌 다른 고기를 쓰다 보니 이국적인 느낌도 가미되었다. 한 번은 고기가 엄청 부드러워서 무슨 고기냐고 물었는데, 낙타 고기였다. 몽골의 낙타 냄새를 맡아본 사람은 모두 공감하겠지만, 어느 냄새보다도 지독했다. 그래서 낙타 고기가 생각보다 잡내도 없고, 부드러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속단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무엇이든 직접 경험해 봐야 아는 법이다.
새로운 음식이나 재료를 접함으로써 경험의 폭이 넓어지는 순간은 언제나 두려우면서도 설렌다.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는 만큼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고 믿기에, 언제나 도전하는 쪽을 택한다. 그리고 실제로 먹어보면, 우리가 먹던 것들과 접점이 생각보다 많다. 일부러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매번 다양한 재료를 쓰려했던 가이드 누나의 노력 덕에, 여행은 더 다채로워졌다. 심지어 익숙한 맛을 매번 낸 덕에, 새로운 도전의 순간이 항상 두렵지도 않았다.
현지음식도 입맛에 맞았지만 낯선 땅에서 익숙한 맛의 음식을 만들어준 가이드 누나가 없었다면, 여행의 피로도가 더 컸을 것 같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모든 순간이 마음에 들기는 힘들다. 기분 좋게 하는 단맛 나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지치게 하는 쓴맛 나는 순간도 있다. 가이드 누나가 해줬던 음식에서 났던 기분 좋은 매콤함이 쓴맛 나는 순간이 있었을지도 모를 시간들을 대신 채워준 덕에, 더 기분 좋은 여행이 될 수 있었다.
여행의 막바지에 그 감사함을 크게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허르헉을 먹는 날이었다. 허르헉은 뜨겁게 달군 돌을 고기와 번갈아 쌓아, 그 돌의 열기로 고기를 익히는 음식인데, 약간의 누린내가 났지만 찌듯이 익혀진 양고기의 풍미가 좋았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식사에 옥에 티가 하나 있었다. 밥이 문제였는데, 한 숟갈 뜨자마자 입 안이 아릴 정도로 짰다. 우리 일행이 사막을 다녀온 사이에 다른 일행의 가이드가 밥을 지을 때 소금 간을 한 탓이었다.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가이드라 밥에 간을 해버렸다고 미안하다 하며 가이드 누나가 밥을 가져다줬는데, 얼마나 짤까 하면서 먹었던 순간 느꼈던 짠맛은 아직도 생각이 난다. 배가 고파서 다 먹기는 했는데, 밥을 한 술 뜰 때마다 느껴지는 짠맛에 당황스러우면서도, 한국 음식에 대해 잘 알았던 가이드 누나에 대한 감사함도 느낄 수 있었다.
음식의 맛도 좋았지만, 식사 시간에 보이는 풍경이 정말 비현실적이었다. 이동하는 중간에 밥때가 찾아오면, 가던 길을 멈추고 들판 한가운데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았다.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친구들과 주변을 걷고 바위 위에 뛰어 올라가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못 참을 정도로 시장해질 때쯤 의자에 앉았다. 맛있는 냄새가 코 끝을 간지럽히다가 비강까지 들어찰 때가 되면, 음식이 접시에 담겼고, 그러면 각자 접시를 받아 와서 다시 의자에 앉았다. 배가 고픈 와중에도 음식이 놓인 배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잠시 감탄을 하기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그러고 나선, 밥을 몇 술 떠서 입 안에 집어넣은 다음, 풍경에 감탄했다가, 다시 음식 맛에 감동했다가, 식사 시간은 언제나 그런 일들의 반복이었다.
몽골에서의 식사 시간은 매번 행복했다. 음식도 맛있었고, 풍경도 끝내줬다. 함께 갔던 친구들도 불평하는 사람 하나 없이 현지 음식이든, 가이드 누나가 해줬던 음식이든 다 잘 먹어서 좋았다. 우리의 접시는 언제나 깨끗하게 비워졌고, 그 덕에 가이드 누나도 잘 먹어서 음식 해줄 맛이 난다며 뭐라도 더 만들어주려 했다. 먹는 일에는 배고픔을 해소한다는 의미만 담겨 있지 않다. 새로운 경험이자,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누군가의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며, 그 음식이 곁들여진 풍경을 한층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식당에 들어가 뷰가 좋은 자리를 찾아 눈알을 이리저리 굴릴 때마다, 광활한 평야를 눈에 담으며 가이드 누나가 해줬던 음식을 먹었던 그때가 생각이 난다. 어느 식당보다도 뷰가 끝내줬던 테이블 하나와 의자 몇 개가 전부였던 그 들판 위 조촐한 식당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