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orzine Prologue
떠오름에 대해서
어떤 작품에 대한 감상을 단번에 조리 있는 문장들로 표현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어딘가에 가서 소심하게나마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나조차도, 그러니까 책과 영화를 꽤나 즐기고 있는 나조차도 각각의 작품에 대한 감상을 완벽히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생각을 나누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럽고 가끔은 두렵기도 하다. 또 그것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내 안의 논리들이 꼬여버려서 결국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다고요.”하는 어정쩡한 문장으로 끝내기도 한다.
떠오르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억누른 적이 많았다. 실은 그 떠오름에는 분명 작품이 주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다 어느 날 생각했다. 왜 추상적인 떠오름은 자신 있게 말해서는 안 되는 걸까? 꼭 무언가에 대단한 이유가 있어야만 그 느낌을 드러낼 수 있나? 처음에는 “어쨌든 그렇다고요.”하는 느낌일지라도 그 느낌의 근원을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면 몇몇의 공감을 얻을 만한 감상이 나오지 않을까?
그래서 어느 날 결심했다. 떠오름을 외면하지 않기로. 설령 보기 좋게 정리된 글이 아닐지라도 내 느낌과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색의 힘은 강력하다
그런데 왜 하필 ‘색’의 떠오름이냐고?
색의 힘은 강력하다. 색은 두 가지 면이 적절히 섞여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정 색을 보고 ‘대개’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이러한 많은 이들과 공유하는 색의 공통적인 의미 덕분에 우리는 많은 기호들을 해석하고 그 색을 사용한 사람의 의도를 읽어내기도 한다. 반대로 색에는 각자가 갖고 있는 이미지 또한 존재한다. 그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을 때도 있고 개개인의 특별한 경험 때문일 때도 있다.
가령 나에게 청록색은 애정이 있는 색이다. 22살의 내가 스웨덴에서 살던 주에 취향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았는데, 그 이후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청록색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뭐냐고 코웃음 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렇다. 내가 아무리 싫어하는 것일지라도 그것이 청록빛을 갖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볼 정도니까. 누군가에게 청록색은 별 의미 없는 것일 수도, 혹은 소름이 끼치도록 싫은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청록색은 존재만으로도 애정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색이다. (앞으로의 내 글에서 청록색이 나온다면 그것은 나의 강력한 애정의 표현일 수도 있음을 미리 말해둔다.)
어쨌든 몇이나 될지는 모르겠으나 (설사 그 수가 너무도 적다고 할지라도) 내 글을 읽어주는 이들과 함께 같은 작품에 대한 비슷한 느낌을 나누기도 하고, 나의 느낌은 그렇지 않았다고 활발한 대립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나에게 그 영화는 전혀 그런 색깔이 아니었는데!’, ‘그 영화에 그 색깔은 꽤 잘 어울리지만 그런 이유는 전혀 아니잖아!’와 같은 반응들을 매우, 격렬히 환영한다.
무엇보다 나는 이번 글들을 서슴없이 쓸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 앞으로 써 내려갈 글들은 단순히 내 느낌에서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주 적은 사람이라도 좋으니, 내 글에 이유 없는 느낌일지라도 표현하는 것에 망설이지 말아 달라. 우린 단지 느낌과 떠오름과 구름과 연기 따위에 충실한 사람들일 뿐이니까.
색과 책과 영화와 또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에 대한 근거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뭐가 됐든 가장 원초적인 떠오름에 충실하고, 그래서 솔직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거다. 떠오름을 붙잡고, 그에 대한 이유를 천천히 정리하며 내 생각들을 더욱 온전한 ‘내 생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어떤가? 지금부터라도 내 안에서 일어나는 떠오름을 마주하겠는가? 떠오름을 간직하고 서로의 떠오름을 나눌 준비가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