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인문극장 2019 강연 #3
두산인문극장의 세 번째 강연은 인류학자 정헌목 교수의 <아파트는 생활이다>로 진행되었다. ‘We study what we are’이라는 인류학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문구로 강연을 시작하면서, 아파트 단지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총체적 접근으로 구성된 내용을 소개했다.
* 아래 내용은 정헌목 교수의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현존하는 아파트 중에 한국 최초의 아파트인 충정 아파트(1937)를 시작으로, 1998년도부터 시작된 브랜드 아파트의 등장까지, 한국의 아파트는 다양한 사건 사고를 겪으며 독특한 특성을 형성한다.
먼저, 아파트의 시초인 충정아파트는 ‘중정’이라는 특이한 형태를 가진다. ‘중정’이라함은 중앙이 뚫린 형태의 아파트의 형태를 말하는데, 이를 통해 사람들은 같은 층 사람은 물론이고 다른 층의 사람들까지 마주칠 수 있었다. 결국 ‘중정’은 아파트 내에서 일종의 커뮤니티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고 ‘중정’의 형식은 아파트가 처음 지어졌을 때부터 1970년대의 원일 아파트까지 꽤 길게 이어져온다.
이후 1962년 정부 차원에서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아파트 단지인 ‘마포 아파트’가 들어선다. 이는 기존의 한국 의식주가 비경제 ‧ 비합리적이라고 여긴 정부가 생활 혁명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현대적인 집단 공동생활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아파트인 ‘시민 아파트’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기도 하는데, 이는 1970년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가 일어나면서 전면 중단된다. 날림 공사 때문에 일어나게 된 이 사건은 앞으로 한국의 아파트가 어떠한 정체성을 확립할 것인지에 대한 기로에 서게 한다.
중요한 기로 앞에 선 한국의 아파트는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를 추구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예시인 1970년에 세워진 한강맨션이나 1972년에 지어진 반포 아파트는 이후 한국 아파트의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크게 보면 두 가지 개념과 그로 인한 폐쇄성이 핵심이 된다.
먼저 한강 맨션 분양 당시에 ‘모델 하우스’의 개념이 처음 도입된다. 이는 아파트를 지을 때 부족한 자금을 위해 택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아파트의 모델을 선보이고 먼저 분양한 후에 그 자금으로 공사를 하기 위해 실시되었다. ‘모델 하우스’의 도입은 결론적으로 사람들이 아파트의 단지가 아니라 집 하나만을 온전한 공간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가구 단위의 폐쇄성’을 유도한다.
두 번째로 ‘근린주구개념’이 확립된다. 근린주구개념이란 도로에 둘러싸인 한 블록 안에 편의시설 등을 모두 조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결국 대규모 단지를 외부와 분리하고 영역화하면서 ‘단지 단위의 폐쇄성’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폐쇄성과 더해서 한국 사회에 형성된 ‘무관심의 문화’는 한국의 브랜드 아파트 단지에서도 관찰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단지 현안에 무관심하고(입주자 대표 회의의 투표율이 현저히 낮은 점), 사람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그리고 그 반대의 사람들은 오히려 이상한 사람의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이렇게 된 이유를 거꾸로 생각해보자면, 초기 중정 형태를 보였던 아파트와는 달리 한국 아파트의 정체성이 변화하면서 사람과 사람이 마주칠 일이 최소화되고, 점점 좁은 곳으로 폐쇄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앞서 폐쇄성과 무관심의 특성을 갖게 된 과거의 한국 아파트를 설명했다면, 지금 우리 삶에 있어 아파트는 어떠한 의미일까? 현재 아파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단지형 브랜드 아파트는 편의 시설의 접근성이 높고 아파트가 공원화 되면서 편리하고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그리고 경비 업체나 보안 시스템이 철저하고, CCTV가 구축되어 있어서 범죄로부터 안전하다는 이미지도 동시에 갖고 있다. 이 두 가지의 특성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파트가 계속해서 공원화되고 살기 좋은 곳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는 사람들의 ‘교외 생활에 대한 이상’이 작용한다. 이는 서구 사회에서도 드러나는데,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도시 외곽에 고급 주거 단지를 형성하면서 계속해서 교외가 확장되고 있고, 프랑스에서는 도시 대로변에 화려한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편리성을 추구하는 아파트를 짓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프랑스와 유사한 현상을 보이는데, 이는 도시 개발에 국가 권력이 개입했다는 점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아파트는 프랑스의 아파트와는 달리 주변 도시 환경으로부터 격리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도심에 위치한다. 즉, 도심에 위치하지만 도시와는 분리된 아파트가 탄생한 것이다.
두 번째로, ‘안전’에 대한 현대 아파트의 이미지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먼저, ‘안전의 미학’이다. 이제는 안전함에 대한 것이 본질적인 기능을 넘어서 주민들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는 도시 생활의 변화에 맞춰서 새롭게 등장한 미학적 코드라 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CCTV에 관한 것으로, 현대 사람들은 ‘감시 사회에 자발적으로 동의’한다. CCTV로 인한 사생활 침해의 여지보다는 낯선 이로부터의 공포를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 곳곳에, 특히 아파트에는 CCTV가 줄줄이 달려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일종의 ‘감시’ 혹은 ‘사생활 침해’라는 인식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현재 한국의 아파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동체 활동을 살펴보면 ‘무관심 가운데 소수 주민들의 감시’가 계속되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라고 할 수 있는 입주자 대표회의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그것을 감시하는 공동 활동은 오로지 소수만이 행하고 있다. 결국, 한국 아파트에서의 공동체 생활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적절한 선에서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에서의 아파트는 우리 삶과 어떠한 연관성을 맺을 것인가?
먼저, 지금 세대의 사람들에게 아파트는 고향이 된다. 더 이상 시골적인 이미지나 응답하라 1988의 골목길의 이미지는 사람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되지 못한다. <안녕, 둔촌 주공 아파트> 시리즈나 다큐멘터리 <집의 시간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앞으로의 우리는 아파트에 향수를 느끼고,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아파트’와 ‘고향’이라는 단어는 일직선 상에 놓이게 될 것이다. 즉, 시간이 지나면서 고향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변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현재 아파트가 가진 문제점을 보완하는 몇 가지 실천들이 등장한다. 가령 ‘We stay 사업’이나 ‘공동주택 같이 살림 프로젝트’와 같은 것들이 있다. 기업형 임대 주택 ‘New stay 사업’을 보완하는 사업인 ‘We stay 사업’은 사회적 기업이 주도함으로써 건설사가 막대한 이익을 가지게 되는 단점을 보완한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일어나는 여러 생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주택 같이 살림 프로젝트’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공간인 아파트에 대안적 자본주의를 모색하는 사회적 경제의 개념을 도입해 공동 육아 기업과 같은 것을 운영하는 방안을 말한다.
미래의 한국, 미래의 아파트를 위한 고민이 필요한 지금
이처럼 미래의 아파트는 더 이상 삭막하거나 회색빛의 무언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고향이 될 곳이다. 아파트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생활’ 그 자체와 같다. 우리 생활과 점점 더 가까워지는 지금, 우리는 분명 아파트에 대해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사실 한국 사회는 한 번도 ‘공공성’이라는 것을 제대로 경험해본 적이 없다. 우리는 공동체로 움직이면서 집단이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헌목 교수가 말하듯 ‘완벽히 자유로운 개인들이 다시 모인 집단’이 형성된다면, 우리가 원하는 공동체의 방향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빠르게 성장해온 한국 사회에서 빠르게 변화를 겪어온 한국의 아파트는 그것만의 고유한 특성도 단점도 가지고 있다. 계속해서 달려오기만 한 우리 사회가 이제는 뒤를 돌아볼 때가 되었듯이, 몇 가지 단점이 곪고 있는 한국의 아파트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