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정치다

두산인문극장 2019 강연 #4

by 김얼레

04_1.jpg 출처 : 두산인문극장


한국의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시설로 그 의미를 다하지 않는다. 그 뒤에는 우리 사회가 발전해온 과정, 응축된 문제들, 정치적 이해관계 등 다양한 것들이 혼재되어서 탄생한 것이 지금의 한국의 아파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산인문극장의 네 번째 강연에서는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 교수가 ‘아파트는 정치다’를 주제로 강남 불패 신화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앞선 강의에서 한국 사회 전반에서 형성된 아파트의 현상들, 그리고 그와 연관된 총체적인 한국인들의 삶을 조망했다면, 이번 강의는 정치적 관점에서의 아파트, 그리고 강남 개발과 중산층 양산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되었다.



* 아래 내용은 박해천 교수의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01. 아파트 분양가의 책정과 4.19 세대의 중산층화


‘근대화-산업화-강남’으로 이어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과정 속에서 한국의 아파트는 ‘산업화-도시화-국민화’를 겪으면서 계층 질서의 상징이 되었다. 이때 아파트와 함께 등장한 것이 ‘중산층’인데, 강연자는 이 중산층이 ‘4.19 세대’라고 말한다. 박정희 시대, 그들은 목표했던 ‘근대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체제 유지에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에 더해 강남의 미래를 설계하면서 ‘중산층 양산’이라는 목표를 내세우고 그에 적합한 것이 바로 4.19 세대였기 때문이다.


우선 4.19 세대는 ‘기성세대의 전복, 미국식 민주주의 그리고 개천의 용’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이들은 4.19 혁명을 지나면서 기성세대의 전복을 경험했고, 처음으로 미국식 민주주의 교육을 받았다. 또한 대부분 지방 출신으로 신분상승을 꿈꾸며 도시로 모여 엘리트 교육을 받는다. 그런 이들에게 서울에서의 내 집 마련에 대한 욕망은 컸고, 이것이 강남과 중산층의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 1960년대, 즉 실질적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던 때에 화이트 칼라로 빠르게 진급한 이들은 대부분의 돈을 저금하고, 강남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이 현상은 수치로도 정확히 확인되는데, 전국의 40세~44세 전문대졸 이상 여성의 42,698명 중 11,749명이 강남에 거주하고 있다. 이로써 강남의 엄청난 대졸자들의 밀집도를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이때 국가의 발전 – 개인의 발전 – 기업의 발전, 이 세 가지가 맞물리면서 그야말로 ‘개천에서 난 용’인 새로운 상위 10% 화이트칼라가 등장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현상은 10년 주기의 경제 호황기와 함께 반복되고, 10년의 주기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된다. 양대 오일쇼크 사이의 70년대 중후반에는 강남이 개발되면서 4.19 세대가 몰리고, 3저 호황의 80년대 중후반에는 목동․과천․상계의 개발에 유신 세대와 4.19 세대의 일부가 몰렸으며, 90년대 초중반에는 수도권 5개 신도시에 386 세대와 유신 세대 일부가 몰렸다. 각각의 세대들은 지방출신-대졸-중산층의 ‘가족로망스’를 완성하는데, ‘지역의 영재-상경-서울역 콤플렉스-하숙방-광장-취업-결혼-아파트-자녀교육-1가구 다주택’라는 일련의 꿈을 꾸는 것이다.


강연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이러한 반복과 규칙에는 그 원인이 있고 대한민국을 다음과 같이 설계한 자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와 함께 살펴본 것이 대한민국의 경제정책이었다. 1976년, 재산형성 저축제도가 도입되는데, 국민들이 저축을 통해서 자금을 만들 수 있게 만드는 제도였다. 이후 1977년에는 민간 아파트에도 분양가 상한제가 확대 적용되고 이와 맞물려 주택청약제도가 발생한다. 분양가 상한제는 당시 경제기획원의 김재익 기획 국장이 주도한 것으로 상한제 기준을 월급쟁이가 7~8년 정도를 벌어 모으는 금액으로 설정했다. 이는 중산층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데, 국가에서 내 집 마련의 시기를 결정한 것과 동시에 중산층이 될 수 있는 일종의 ‘관문’을 설계한 것이다. 결국 이에 상응하는 구매력이 있는 4.19세대들이 강남의 아파트를 사기 시작했고, 분양가 상한제에 의해 차익을 남기면서 새 아파트로 이주하게된 것이다. 이에 4.19 세대는 강남으로 밀집되고 계속해서 부를 축적하면서 중산층을 형성했다. 이는 이후 문희갑과 박승이 비슷한 방식으로 국가 제도를 운영하면서 10년 주기로 다음 세대의 중산층을 형성하기까지 이른다.



02. 청년 세대와 아파트: 더 이상 중산층 양산이 불가능해진 한국


그러나 1997년 IMF가 찾아오면서 당시 경제부총리 강경식은 상한제를 폐지했고, 이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중산층이 형성되는 것이 어렵게 만들었다. 2002년을 기점으로 아파트의 가격이 폭등하면서 아파트를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구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에 내 집, 자식, 결혼을 포기하는 3포세대가 출현했고, 현재는 아파트가 중산층 양산 기능을 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출현하는 것이 ‘전투적 중산층 예비가정’인데, 2000년대의 중산층이 맞벌이를 하고 부모에게 자식을 맡기는 등의 형태를 뜻한다.



결국 아파트와 중산층 형성에 관련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한국의 경제 정책 그리고 정치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아파트에는 수많은 이해관계와 지금까지 한국이 거쳐 왔던 과정들이 담겨있다. 이번 강연 또한 ‘정치’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한국과 한국의 아파트의 연결고리를 제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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