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인문극장 2019 공연 #1
Synopsis: 공공임대 아파트와 인간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함께 다니는 수서의 어느 중학교. 이 학교에 다니던 정훈이 어느 날 가출을 한다. 평소 아이들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훈육하던 담임 교사 봉순자는 정훈이를 다시 학교로 데려오기 위해 그의 행방을 쫓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봉순자는 자신이 굳게 믿어왔던 교육관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며, 그동안 외면하려 했던 차별과 불공정한 경쟁의 이면들을 목격하게 된다.
21세기 수도 서울, 마세라티와 배민라이더가 병존하는 4G 시대에 우리 아이들은 버거킹으로 배를 채우며 질주하지만 전 세대보다 더 갈급하고 외롭다. 고시텔에 살지언정 아이패드와 에어맥스를 원하는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철가방을 선택한다. 최소한의 시스템, 무너져버린 공교육 안에서도 봉순자 같은 교사는 존재하겠지만, 졸업앨범비를 훔쳤다는 오해가 임대아파트아이들을 저격하면 무력하긴 마찬가지다. 내몰린 아이는 임대아파트라는 굴레, 나아가 집이라는 환상 자체를 박차고 나가게 된다. 중년여교사의 가출아이 찾기, 철가방추적작전의 끝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의 시스템은 여전히 공고하며 약자에겐 가차가 없는데.
연극 <철가방추적작전>은 공공임대 아파트와 민간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공존하는 수서의 어느 중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이 연극의 플롯은 제목처럼 매우 간단하다. 공공임대 아파트에 살던 학생 정훈이 가출을 하고 학교에 출석하지 않고, 졸업 유예가 될 상황에 처하자 담임선생인 봉순자가 그런 정훈을 추적하는 내용이다.
공공임대 아파트, 민간 아파트, 공존, 그리고 학교. 연극과 관련된 몇 가지 키워드를 함께 떠올려봤을 때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 속에 어떠한 문제가 있을지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연극을 보면서 그 예상이 정확히 맞아 들어갔을 때, 그리고 생각으로만 하던 그 문제가 가시화 되었을 때, 알고 있었던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충격의 파급력은 꽤 크게 다가온다. 우리가 진지하게 대면해야만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철가방 추적작전>이지만, 마냥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재치 있는 대사들과 그걸 맛깔나게 살리는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중간 중간 웃을 수밖에 없는 포인트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 연극이 직접적으로 고발하는 우리 사회의 차별의 문제는 넘치는 위트 속에서도 관객들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가라앉혔고, 절정 부분에서는 관객들을 울리기도 했다.
계속해서 <철가방 추적작전>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 이유가 ‘유형화된 등장인물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플롯 자체도 그러하지만, 상대적으로 인물들이 보여주는 역할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차별의 현상들이 각각의 인물에 투영되어 있고, 우리가 한 번쯤은 경험했을 모습이자우리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에 대한 이해와 충격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리뷰는 <철가방 추적작전>에 나오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해보고자 한다.
‘아파트’라는 이슈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많은 차별에 대해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철가방 추적작전>에는 유형화된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내 주위의 누군가를 투영하기도, 동시에 나 자신을 투영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극 속의 인물들 중 가장 와 닿았던 인물은 봉순자 선생님이었다.
차별의 목격, 그리고 현실과의 마주함
봉순자는 학교를 나오지 않는 정훈이를 추적한다. 처음에는 유급은 면해야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지만, 정훈이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그가 겪었던 차별들을 하나 둘씩 발견한다. 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가면 뭐가 달라지냐는 아이의 질문에 “뭐가 달라져도 달라져!”라고 대답하지만, 실은 앞으로의 현실도 그리 순탄하지는 않을 것을 차츰 깨닫는다. 정훈의 어려움을 하나씩 목격하면서 현실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고, 또 자신의 힘만으로는 현실을 바꾸기 어렵다는 걸 알기에 마지막 순간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건 배달 일을 하는 정훈을 찾아가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을 전하는 것, 그리고 따뜻한 장갑을 건네는 일뿐이었다.
나 또한 직접 차별을 겪기도 하고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에 계속해서 관심을 기울이면서 그 실체를 목격하곤 한다. 그 주제는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겠지만, 늘 느끼는 것은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감이다. 사회의 거대한 구조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의 크기에 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작게 느껴질 때 그 심정이 괴로울 때가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모이고 모여서 어떠한 변화를 이뤄냈을 때의 쾌감은 잊지 못하고, 드물게 일어나는 그 변화가 개개인이 아주 작은 노력이라도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하는 이유가 된다는 것을 안다. 내가 하고 있는 실천에 대해 ‘고작’이라는 마음이 드는 것, 그리고 큰 그림을 봤을 때 그것의 필요성을 아는 것, 이 상반된 두 가지 마음이 함께 존재하고 그 괴리에 힘이 들 때도 있지만, 극중 봉순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듯 나를 포함한 우리는 실천을 이어나가야 한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무엇이 변화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