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인문극장 2019 강연 #5
[2019 두산인문극장 아파트]의 다섯 번째 강연은 김민섭 작가의 ‘아파트는 욕망이다’로 진행됐다. 처음 강연 제의를 받았을 때 자신은 아파트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며 고사했던 김민섭 작가였지만, 인문학의 영역에 속해있는 그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아파트라는 주제에 대한 따뜻한 해결안을 던졌다. 앞선 강연에서 아파트에 관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지식을 얻었다면, 이번 강연에서는 추상적이지만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답을 얻은 것 같다.
* 아래 내용은 김민섭 작가의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아파트에는 끊임없이 욕망이 더해진다. 아파트에 덕지덕지 붙은 우리의 욕망은 지나다니면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아파트의 이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브랜드 아파트의 성공작이라 말할 수 있는 롯데 ‘캐슬’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면서 사람들이 더 높은, 더 좋은 아파트를 쟁취하고 싶은 욕망을 북돋는다. 이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 결과 ‘서브브랜드’라는 새로운 욕망의 언어들이 탄생한다. 프리미어 팰리스, 메가트리아, 더 테라스 등 VIP로 시작한 이들이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VVIP, VVVIP가 되고 싶어 하듯이 계속해서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위치나 정체성을 아파트의 긴 네이밍으로 확인하고자 한다.
더 좋은 아파트가, 더 비싼 브랜드가 우리의 격을 높여준다는 생각은 ‘닮은 사람(브랜드)’ 찾기로 확장되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그에 따라 구획하게 된다. ‘빌거(빌라 거지)’, ‘휴거(휴먼시아 거지)’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그들은 자신과 다르다는 선을 긋는가 하면, 같은 아파트의 학생들끼리 반을 구성할 것을 요구하고, 심지어 아파트에 따라 다른 교복을 입을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학생 분류에 아파트 브랜드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야기를 들었을 땐 경악스러울 수 있지만, 모두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낸 욕망이 커지고 커진 끝에 점점 우리가 끌려가고 있는 건 아닐까? 절망스러운 요즘의 이야기들의 끝에 작가님은 “시대의 욕망(훈)은 개인과 기업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고, 우리는 꾸준히 그것에 대한 모멸감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모멸감과 경계. 듣기만 해도 끔찍한 지금의 비정상적인 이야기들에 맞서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더 이상 욕망과 훈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지금보다 예민하게 그것을 경계하고, 또 거침없이 모멸감을 드러내야만 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만으로 뿌리 깊은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김민섭 작가는 나의 불안함에 대한 답으로 '닮음'을 제시했다. 욕망과 브랜드에 의한 구획은 부정적인 방향으로의 닮음 찾기로 이어졌지만, 그것을 뒤집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우리와 닮은 이들을 위한 연대를 해야 한다. 즉, 우리는 타인을 상상하고 타인의 처지에서 사유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로 작가님이 직접 겪은 ‘93년생 김민섭씨 여행 보내기 프로젝트’를 말씀해주셨다.
이 이야기는 일본으로의 여행을 떠나고자 했던 김민섭 작가가 어떤 사정으로 비행기표를 취소해야했고, 취소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시작된다. 이럴 바에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그는 항공사에 문의하고, ‘대한민국에 김민섭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영어 철자까지 같은 남성’이라면 양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쉽지 않은 조건이었지만, 김민섭 작가는 SNS에 글을 올렸고, 꽤 많은 반응이 있었지만 조건에 완전히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로부터 3일 뒤, 자격을 갖춘 김민섭씨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 뒤로 기적 같은 일들이 이어진다. 김민섭씨의 댓글 아래로 교통 패스를 주겠다는 사람, 숙박비를 지원하겠다는 후원자, 포켓와이파이 임대를 해주겠다는 직원 등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93년생 김민섭씨는 83년생인 김민섭 작가 덕분에 일본 여행을 무사히 다녀오게 되고, 시간이 지난 뒤 자신이 꼭 03년생 김민섭을 찾아 여행을 보내줄 것을 다짐한다.
강연장에서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느꼈던 전율과 감동은 모두 욕망의 시대에 살고 있는 인간의 또 다른 모습 때문이었다. 강연 초반, 절망스러운 감정을 느꼈고 경계와 모멸감이라는 방향성도 얻었지만, 여전히 답답했고 과연 이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게 존재할까? 라는 회의적인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93년생 김민섭씨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비현실적인 이상처럼 들렸던 타인에 대한 상상과 사유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느껴졌다. 같은 아파트의 주민, 그곳에서 일하시는 직원분들, 더 나아가 외부의 주민들, 동네 사람, 지역 사람 등등 우리는 계속해서 닮음의 범위를 넓혀가고 ‘함께’ 해야 한다. 김민섭씨의 이야기가 증명해주듯, 우리는 ‘따뜻한 연대’라는 것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