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기억이다

두산인문극장 2019 강연 #6

by 김얼레
06_0.jpg 출처: 두산인문극장

2019 두산인문극장 아파트의 여섯 번째 강연은 정재호 작가의 ‘아파트는 기억이다’로 진행되었다. 정재호 작가는 청운시민아파트에 대한 작업 이후 도심 속 오래된 아파트를 주제로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자신의 작품과 함께 그가 마주한 오래된 아파트들에 대한 기억과 느낌들을 하나씩 소개했다.



* 아래 내용은 정재호 작가의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오래된 아파트 속에서 찾아낸 아름다움


시간이 흐르고 사람이 늙어가듯 아파트도 늙는다. 지금 한국에 존재하는 아파트 중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1937년 지어진 충정 아파트인데, 1937년이면 1997년생인 나보다 60년이나 더 오래된 셈이다. 이 도심에는 이렇게 나보다 훨씬 늙은 아파트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 아파트들도 아마 처음엔 누군가의 야심찬 계획과 꿈에 부푼 상상들로 지어졌을 거다. 그러나 이제는 그로부터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고, 도심의 옛날 아파트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더 뒤로, 사람들로부터 멀리 위치하게 되었다.


나 또한 평소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던 아파트들이었지만, 정재호 작가는 청운시민아파트를 시작으로 오래된 아파트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기울여왔다. 그는 ‘오래된 아파트는 시급히 철거되거나 재건축되어야 하는 도시의 흉물이다’라는 일반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이 아파트들이 갖고 있는 이야기와 세월의 흐름만큼 깊어진 의미들을 찾아 나섰다.


자신의 작품과 그것을 만드는 과정을 순서대로 소개한 그는 오래된 아파트를 하나 둘씩 알아가면서 외부의 특정한 시각으로 보기보다는 그 속에서 볼 수 있는 순수한 아름다움 자체를 발견했다. 가령 그의 작품 중 ‘대광맨션아파트’는 갖가지 색과 각기 다른 빛바램으로 그 세월을 담고 있는 차양막으로부터, ‘대광맨숀아파트’는 중앙이 툭 튀어 나와 있는 형태와 아파트 자체의 색으로부터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지워져가는 오래된 아파트의 기억, 그리고 기록


사실 강연을 들으면서 그가 발견한 미적인 아름다움에 공감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치만 현실은?’이라는 물음표가 생기기도 했다. 그가 본 아름다움도 존재하지만, 분명 그 안에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고, 그를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들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마음 속의 삐딱함이 발동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내 우리와 분명 이어져있을, 우리의 부분을 차지하는 시간을 담고 있는 이들 아파트에 대한 기억과 기록을 남기는 이가 있다는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떠한 한 가지에 대한 것이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무한히 다양할 수 있고, 시각의 다양성은 우리의 시간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김민섭 작가의 강연을 제외한) 지금까지의 강연에서는 아파트를 둘러싼 갈등이나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전해 들었지만, 이번 강연에서는 오래된 아파트들의 존재 자체를 마주할 수 있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다각도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 기록들을 남기는 것은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들을 최대한 오래, 그리고 자세히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겠다는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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