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운명은 고정값인가요?

by 윤해

어느 날, 바그다드의 한 상인이 하인 한 명을 시장으로 심부름 보냈습니다.

그런데, 장에 갔던 하인은 시장에서 죽음의 신을 마주치고 공포에 질려 '사마라'로 도망쳤습니다.

주인이 시장으로 가 죽음의 신에게 왜 하인에게 겁을 주었는지 따져 묻자, 죽음의 신이 답했습니다.

"나는 그를 겁준 게 아니라, 그저 놀랐을 뿐이오. 오늘 밤 그와 사마라에서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는데, 그가 아직 여기 있었으니 말이오."


이 "사마라의 약속"이라는 우화는 운명의 절대성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한 번쯤 접했을 "오이디푸스의 신화"에서도 태어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이 결국은 이루어지고 맙니다. 아무리 도망치려 하거나 바꾸려 해도 이미 결정되어 있는 미래는 그 노력마저도 결과를 향해 가기에 폭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이를 "운명론"이라고 하는데, 어찌 됐던 너의 운명은 정해져 있으니 운명에 순응하며 살기를 강요합니다.

어쩌면 이런 운명론은 당시 사회를 안전하게 지탱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였는지도 모릅니다. 신의 목소리가 법보다 앞섰던 고대와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신의 뜻인 운명을 거스르는 것은 곧 사회적 금기를 깨는 행위였습니다.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믿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처지를 겸허히 받아들이게 했고, 이는 곧 권력의 안정과 체제 유지로 이어졌습니다. 신의 권위 아래에서 정해진 운명에 순응하는 것만이 세상을 평화롭게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던 시대였으니까요.


이러한 신앙중심의 시대에 뉴턴이 등장합니다.

뉴턴의 등장과 과학 혁명으로 사람들은 세상이 신의 뜻이 아닌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프랑스의 수학자 라플라스는 우주 모든 원자(입자)의 현재 상태(위치, 속도, 힘)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악마가 있다면, 미래를 100% 계산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결정론"이라고 하는데, 과거의 어떤 일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고, 현재 나의 선택이 내 미래를 만든다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이제 우리는 신앙시대의 꽉 막힌 폭력적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지금 나의 선택이 내 미래를 바꿀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결정론은 거대한 우주를 신의 세계에서 정밀한 시계로 만들어버립니다.

시계의 톱니바퀴는 어떤 선택으로 다르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내 현재의 선택마저도 역시 톱니바퀴의 맞물림 중 하나일 뿐인 거죠. 현재의 선택 역시 내 과거 행동의 결과일 뿐입니다.


어떤가요?

엄청 숨 막히지 않나요?

어떤 짓을 해도 내 미래는 변하지 않고, 세팅된 대로 움직인다니 나는 신의 꼭두각시인 걸까요?

그럼 범죄자들은요? 그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싶어서 저지른 게 아니라 운명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게끔 태어난 건가요? 그렇다면 하찮은 인간이 그들을 벌할 수 있을까요?


양립론 학자들은 결정론에 자유의지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과거의 행동들이 혹은 환경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나에게는 단 한 가지가 아닌 무수한 선택의 길이 있고 현재의 내가 한 선택으로 미래의 내가 결정된다는 것이죠.

어떤 한 사람이 범죄자의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그의 부모에게서 받은 영향이, 학교에서의 교육이, 친구나 동료와 주고받은 우정이 그리고 본인의 의지가 그가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합니다.

실제로 제임스 팰런이라는 신경과학자는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진 자신의 성향을 극복하여 교수이자 강연자로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이 "결정론"은 명리학에서의 운명과도 맞닿습니다.

명리학에서 명(命)은 내가 태어날 때 이미 결정된다고 봅니다. 태어나는 그 순간 사주팔자가 결정되고, 앞으로 살아나갈 대운과 세운도 이미 결정됐습니다. 나는 이제 운명의 흐름대로 살아야 합니다.

운명대로 산다는 건 어떤 걸까요?

같은 사주팔자를 가진 사람들은 같은 운명을 가졌으니 운명공동체처럼 같은 삶을 살게 되나요?

그렇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럴 때 저는 종종 탄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요

탄소는 어떤 환경을 만나는가에 따라서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하고, 흑연(연필심)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게 더 가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다르겠지만 중요한 건, 같은 원료라도 어떤 환경을 거치는가에 따라 다른 모습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지피티만 보더라도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심리상담사가 되기도 하고 검색엔진이 되기도 하고 프로그래머가 되기도 합니다.


저의 예를 들어볼까요?

저는 식신이 강한 사주이고, 제 일간 옆에 신금 용신을 두고 있어 저는 교사를 했어도 좋았을 것이고 역마를 끼고 있으니 돌아다니며 강사를 했어도 됐고, 기자를 직업으로 두었어도 괜찮았을 겁니다.

요리사도 좋고요, 작가, 공방, 사회복지사 제가 가진 사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합니다.

제 대운은 관운과 인성운으로 흐르니 대학원에 진학하여 교수가 되었어도 좋았을 테고, 정치참여를 했어도 괜찮았겠지요.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지금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고, 운명은 나도 모르는 새 내 원국대로, 내 대운의 흐름대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저를 더 잘 알았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삶을 살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 원국을 알고, 내 명운(命運)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내 인생의 흐름이 어떻게 흐르는지를 알아야 내가 가야 할 방향과 피해야 할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피해야 할 것을 선택하여 풍파를 견디고 우뚝 선다 하더라도 그 고통을 알고 즐기는 것과, 모른 채로 맞닥뜨린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까요.


결정론자들은 인과율을 이야기합니다.

내 현재는 내 과거 선택의 결과물이다. 내 미래는 현재 나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운명론자들은 신에게 받은 사명을 이야기합니다.

나의 운명은 이미 신께서 결정해 주셨다


운명은 정해져 있을까요?

운명(運命)은 말 그대로 명의 움직임입니다.

사람의 명은 태어나는 순간 정해져 있어도 그 움직임은 분명 자유의지에 따라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운명을 어디로 흘러가게 하고 싶은가요?

그 시작은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부터라는 것을 꼭 기억해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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