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초여름은 위로받기 쉬운 계절이다
물먹은 솜처럼 처지는 날이었다. 해결이 막막한 어떤 갈등이 있었다. 주어진 일을 해야 하는데 자꾸 뱃속에 드는 어떤 느낌 때문에 엄두가 나질 않았다. 명치 속 마음을 누군가 반으로 갈라낸 탓에 물컹한 내용물이 무참히 쏟아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꼭 부라타 치즈를 짓이기며 가를 때처럼. 그런데 치즈처럼 고소하지는 않고 다만 지저분하고 눅눅했다. 그래도 하루 종일 허리를 구부린 채 갈라진 부라타 치즈만 생각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으므로 스스로 기분 전환을 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달랠 수 있을지 고민해서 실행해보고, 그것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집을 나섰다. 예전에 김영하 작가가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고 말했던 게 기억 난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무리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라고 한들 집은 상처와 의무를 떠올리게 하고, 특히나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면 은은한 조바심까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는 신속정확한 응급 처치를 위해 재빠르게 집을 나가야 한다.
아예 시끄럽고 정신없는 곳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시간이 여유로울 때나 효과적이다. 짧은 시간에 기분을 제자리로 끌어올려서 할 일에 집중하려면 사람이 없고 고요한 곳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가까운 도봉도서관으로 향했다. 조용하면서도 채광이 좋아 쾌적한 라운지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창밖으로는 하늘과 가로수, 건너편의 소나무숲이 보였으므로 초록이 무성해진 계절에 찾기 좋은 곳이었다.
인기 많은 창가 앞 자리는 이미 만석이라 바 테이블에 앉았다. 다행히 그곳에서도 창밖이 잘 보였다.
보기 드물게 파란 하늘 아래로 햇빛을 받은 은행나무잎들이 찰랑거렸다. 이파리가 자잘하고 풍성한 게 어쩐지 히피펌을 한 머리 같기도, 응원 수술 같기도 했다. 초록 잎들이 명랑하게 흔들리는 풍경이 평화로웠다. 날씨가 매일 변덕을 부리고 있지만 어쨌거나 신록이 산과 나무를 뒤덮은 데다 입하가 코앞이니, 이제는 초여름이라고 친다면. 여름은 상처를 입어도 위로받기가 더 쉬운 계절 같았다. 무성한 녹음은 보기만 해도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데가 있으니까. 찾아보니 푸른 식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신경이 안정되고 스트레스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그러니까 여름에는 거리 곳곳에 신경안정제가 서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습하고 더워도 여름을 좋아할 수밖에 없나 보다.
나무를 계속 보고 있으니 줄기를 끌어안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요즘 종종 드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늘 흰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시도할 용기가 안 났다. 오늘도 흰 옷을 입고 있었다. 나중에 패턴이 많고 색이 어두운 옷을 입은 날 한번 안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도봉도서관 근처 컴포즈커피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 사 왔다. 기분이 안 좋을 때 단 것을 먹으면 좋지만, 그렇다고 단 음료를 마시는 것은 별로다. 기분이 조금 나아지다가도 입안이 텁텁해져 금세 성가시기 때문이다. 깔끔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속을 냉수마찰 시켜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축 처져 있던 마음이 찬기에 놀라 조금 일어나는 것 같다.
커피를 마시면서 에세이를 읽었다. 속이 터져버렸을 때는 소설 보다는 가벼운 일상 이야기에 삶의 통찰이 담긴 에세이가 소화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슬아 작가의 에세이를 읽기도, 아트인사이트에 있는 글을 읽기도 했다. 도서관에 혼자 앉아 있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웃음 섞인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마음도 슬쩍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바람을 쐬러 옥상으로 올라갔다. 날 좋은 날 햇볕과 바깥공기를 쐬지 않으면 손해 보는 기분이다. 이곳에 오면 옥상을 꼭 들러야 한다. 시야를 가리는 건물 하나 없이 산이 드넓게 펼쳐진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볕 아래서 산멍을 때리다가, 여린 가지가 돋은 어린나무에 다가가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코앞에서 구경하다가, 한편에 마련돼있는 옥상 텃밭 사이를 거닐었다. 로메인 상추, 토마토, 그 외에도 식물을 잘 모르는 나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식물들이 가득했다.
유년 시절, 재개발이 되기 전 외할머니가 살던 집이 생각났다. 조그만 주택이었는데, 부엌에 있는 나무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옥상이 있었다. 그곳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방울토마토, 상추, 고추, 오이 같은 것들을 키우셨다. 그곳에 있던 식물들이 귀엽고 신기해서 유심히 들여다봤던 기억이 났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것은 단연 방울토마토였다. 어쩐지 조금 말라있던 꼭지, 익으려면 한참 남은 조그맣고 새파란 토마토, 초록빛이 아직 남아있던 설익은 토마토, 빨갛게 영근 토마토도. 방울토마토가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퍽 흥미로웠다.
나중에 나도 꼭 옥상이 있는 빌라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채소도 키우고, 여름에는 태양 아래서 야외 요가도 하고, 친구들을 불러서 파티를 해야지. 그러면 정말 즐거울 것 같았다. 지금 당장 집을 구할 수는 없으니 일단 베란다에서 식물을 키워볼까 고민했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도 식물을 키울 수 있나. 아마 어려울 것 같았지만,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니 기분이 꽤 들떴다.
이쯤 되니 마음이 제법 회복되었다. 편의점에서 도넛 하나를 사서 배까지 가볍게 채워주니, 주어진 일을 해낼 에너지가 생겼다. 천천히 해야 할 일을 리스트업하고 처리하기 시작했다. 미뤄놓았던 할 일을 하는 것도 마음의 짐을 덜어줬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남아 있다. 갈등의 해결책을 고민하는 것. 마음을 짓이겨놨던 그 문제를 해결해야, 아니 완벽하게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차분한 마음으로 곰곰이 들여다봐야만 산뜻해질 수 있을 거다. 이 글을 쓰고 난 뒤, 다시 문제를 마주하러 갈 테다. 부디 덜 고통스럽고 최대한 신속하게 해결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