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천 옆 나의 안식처

오늘은 보문역 카페를 가야 하는 날씨

by 윤하원

보문을 가야 하는 날씨다. 성북천이 흐르는 보문으로. 날씨를 더 진하게 느끼고 싶을 때는 보문을 간다. 눈이 오면 설경을 즐기러, 기온이 푸근할 때는 기분 좋게 산책로를 거닐러 간다. 오늘은 날이 푹해서 산책로에 사람들이 제법 많다. 친구와 걷고, 혼자 달리고,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 하천 위 가로수길은 아직 벌거숭이지만, 담벼락을 뒤덮은 개나리는 벌써 샛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조금 기다리면 가로수길도 곧 화려해질 것이다.


평일 낮의 성북천 가로수길에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 아무리 좋다는 곳도 사람이 많으면 가고 싶지 않은데, 보문은 아직 한적하다. 주말에도 카페에는 사람들이 붐비지만 거리는 한산한 편이다. 성북천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키와 생김새, 부피가 모두 다른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늘어서 있다. 아무리 커봤자 6, 7층이 겨우인 낮은 건물들이다. 그 건물들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들이 들어서 있다.


작년 초겨울부터 보문 카페를 찾기 시작했다. 좋은 공간이 주는 힘과 영감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집 근처 스타벅스에 가는 게 일상이었다. 아니면 집에 있거나. 혼자 카페에 가는 것은 주로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서인데, 분위기 좋은 카페는 보통 작업하기에 적합하지도 않을뿐더러 멀리 나가기까지 해야 했으므로 귀찮았다. 게다가 그런 곳은 이미 입소문이 나서 사람들로 북적이기 마련이므로. 그렇게 분위기 좋은 카페는 다른 사람과 약속이 있을 때나 다니다가, 작년에 한 친구 덕분에 아늑한데 작업도 하기 좋은 카페를 알게 되었다. 전형적이거나 획일적이지 않고, 들쭉날쭉한 가구와 소품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카페였다. 이후 혼자서 다시 찾아갔을 때도 기분 좋게 작업에 몰두하는 스스로를 발견한 뒤부터,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삶에 새로운 것을 더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 예쁜 카페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 보문을 무작정 찾았다.



보문에서 처음 방문한 카페는 '커피스토어'였다. 지금도 나는 커피스토어에서 글을 쓰고 있다. 이곳은 내가 첫눈에 반해 보문에서 가장 많이 찾은 아지트 같은 곳이다. 그렇다는 것은 일단 작업하기 아주 좋은 곳이라는 의미다. 이곳은 분위기 좋은 여타 카페와 다르게, 테이블마다 콘센트가 마련되어 있어서 언제든 안심하고 노트북을 들고 갈 수 있다. 손님도 웬만하면 노트북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단지 콘센트뿐이었다면 이렇게 자주 방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카페가 가진 매력을 하나씩 소개해 보겠다.


출입문을 열면 저 멀리 기다란 석제 테이블로 된 카운터가 눈에 띈다. 그 위에는 또 은은한 오렌지색 빛을 내는 기다란 펜던트 조명이 달려있다. 테이블 안쪽에는 커피를 내리는 도구들이 나란히 놓여있고, 뒤로는 깔끔한 주방이 한눈에 보인다.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나는 홀과 다르게 아주 단정한 인상이다. 우아한 느낌마저 든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유롭고 빈티지한 느낌이 물씬 난다. 빈티지한 찻잔과 그릇이 놓인 목재 찬장과 목재 서랍이 카운터 양옆에 놓여있다. 서랍 옆 몬스테라부터, 홀 테이블 사이에 놓인 여인초,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 옆 작은 식물들은 공간에 차분한 생기를 불어넣는다. 여기에 넉넉한 크기의 노르스름한 목제 테이블과 의자, 입구에 쪼르르 놓인 뭉툭한 파란색 의자 세 개는 아기자기함을 더한다.



이곳은 빛이 좋은 곳이다. 한낮, 출입문이 있는 벽면이 통창으로 되어 있어 햇빛이 잘 든다. 입구 근처 테이블에 앉으면 영하 17도의 한겨울에도 뜨듯하게 일광욕을 즐길 수 있다. 그뿐인가. 유리에 반사된 작고 얇은 무지개가 책상이나 의자에 내려앉기도 한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두드리는 내 손등에도 무지개가 포개져 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도 평화롭다. 카페 앞 인도를 오가는 사람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 다시 인도, 그 위의 가로수들, 건너편 거리로 이어지는 안암교, 다리 너머 아기자기한 건물들까지. 빼곡한 건물 사이가 아닌 성북천 옆에 위치한 덕분에 창 너머로 여러 겹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작년 11월 말에 처음 방문했던 탓에 아직까지 앙상한 가로수밖에는 보지 못했는데, 초여름 신록이 돋아나면 아름다움이 배가 될 것이다.

저녁, 어둠이 카페 안까지 침투하면 조명들이 제 몫을 하기 시작한다. 이곳은 천장등이 없는 대신 거의 모든 테이블마다 아르떼미데 톨로메오 조명이 놓여 있다. 심지어 민트색 물병과 컵이 놓인 철제 카트도 오직 저만을 위한 반려 조명을 두고 있다. 덕분에 시간이 늦어질수록 분위기는 한층 더 그윽해진다. 사위가 어둑해진 저녁, 조명이 만드는 작고 동그란 빛 안에서 할 일에 몰두하고 있으면 안전한 기분마저 든다.

햇볕과 조명, 커피스토어의 낮과 밤을 밝히는 두 빛은 사장님에 의해 꽤 세심하게 관리된다. 볕이 강하게 들이치는 때에는 통창의 블라인드를 내리고, 빛이 슬며시 약해지는 것 같으면 다시 블라인드를 올려서 실내가 충분히 환해지도록 조절한다. 테이블 조명까지 손봐주시기도 하는데, 한번은 음료를 가져다주다가 (여기는 음료도 직접 서브해준다) 내가 조명 빛이 닿지 않는 부분에서 노트북을 하고 있자 조명 각도를 조정해 주셨다. 정성껏 빛을 관리하고 접객하는 사장님 덕분에 카페가 더 좋아진 것은 물론이다.

파운드케이크 향이 은은하게 나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이 조용히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는 평화로운 곳. 낮에는 공간 구석구석을 비추는 따뜻한 햇볕에 둘러싸여서, 저녁에는 내 테이블을 밝혀주는 조명 빛을 두르고 작업을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이다지도 감미로울 수 없다. 들뜨고 산란한 마음은 명상할 때처럼 차분히 가라앉는다. 이곳에 처음 방문해 박연준 시인의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를 읽었던 때에는 극도로 평화로워서 눈물까지 날 지경이었다.

불안에서 벗어나 '나'에게 집중하고 싶은 이에게, 감미로운 고요를 누리고 싶은 이에게 이곳 커피스토어를 추천한다. 당신에게도 포근한 안식처가 되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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