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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 Jan 02. 2024

오래된 부부

 

결혼하기 전에는 부부간의 대화를 통해 크게 성장하는 나를 꿈꾸곤 했다. 나 자신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면 상대는 내가 미처 몰랐던 걸 깨닫게 해 주고 그래서 흩어졌던 사고가 한 줄로 꿰어지는 그런 상상으로 결혼을 시작했다. 잘 맞는 좋은 짝이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서로 잘 들어주고 티키타카가 잘 되어야 한다 여겼다.

그런데 남편은 말하는 것만 좋아하고 듣는 건 좋아하지 않았다. 미국의 신학자 폴 틸리히는 사랑의 첫 번째 의무는 듣는 것이라 했는데 남편은 의무를 나누어질 마음 상태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어서 상대의 말에 집중하거나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일이 없었다. 아내뿐 아니라 그 누구의 말에서도 아이디어를 얻거나 즐거움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동질성, 상대에 대한 이해, 공감 같은 것 일 텐데 남편은 자신의 말을 자신의 귀로 듣는 것만 좋아한다.

    

반면 나는 다른 사람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한다. 한 사람의 생은 한 권의 책과 같아서 대화하다 보면 그들의 지혜를 압축해서 받아들일 수 있다. 한때는 남편의 말이 재미있었고 침묵하는 어색한 순간이 없어서 좋았고 긍정적인 사고방식도 높이 평가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푼 알렉산더처럼 내 머릿속에서 엉킨 문제를 싹둑 자르는 명쾌함이 있었다.     

남편은 우리가 대화를 많이 한다고 한다. 우리는 그저 돈이야기, 회사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말고는 대화다운 걸 한 적이 없다. 그 내용조차도 이미 알고 있거나 반복되거나 일방적이다. 새로워야 하고 나아가야 하는데 이야기가 겉돈다.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려면 공유하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너의 고통은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안타까워하고 책을 읽고 사색을 하고 채워짐이 있어야 한다. 서로 취향을 이야기하며 농담을 하고 음악과 예술을 논하는 그런 대화는 불가능한 것일까.   

  

우리는 같은 직장에서 일했고 조직에 대한 적응력이 현저히 떨어졌던 나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통찰력을 통해 내가 놓쳤던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어 회사생활을 수월하게 해 주었던 부분도 있었다. 이제 직장생활을 끝내고 돌아와서는 서로의 약함에 귀 기울이고 연민을 가지고 서로 돌봐야 하는데 60년 세월 동안 연습하지 않았던 것이 갑자기 되는 일은 없다.     

대화가 힘들어도 가정의 행복을 유지하는 방법은 부부간에 서로 부탁을 거절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쓰레기통 좀 비워줘’ 하면 ‘응, 알았어’. 하고 들어주면 되고  ‘오늘 저녁 황탯국 먹자’ 하면 ‘응, 알았어 ’하면서 요리하면 된다.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알았어. 맞아 , 잘했어라는 말만 하면 가정의 평화가 올 텐데.


이것 좀 해줘라는 부탁에 바로 응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결국 마음 급한 내가 처리해 버린다. 그러다 보면 화가 난다. 화를 내고 나서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일 당장 풀어야 할 회사 일이 가득이니 집안일 정도에 계속 짜증 내고 있을 수 없다. 저절로 풀린다.

남편 입장에서는 가만히만 있으면 된다.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성질에 대꾸를 하지 않고 소파에 가만 앉아 있기만 하면 모든 일이 저절로 해결되어 있다. 우리 부부의 갈등 해소법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해소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남편은 꼭 토를 단다. 뒷 베란다에 놔둔 쓰레기 좀 버려줘 한마디에

“아직 더 차야 한다. ”

“나중에 할게.”

”시간 되면. “

그렇게 반년 넘게 뒷 베란다에 고장 난 선풍기가 방치되어 있었다.


임신했을 때 한번 정말 딱 한 번 포도를 먹고 싶다고 했다. 늦가을이었다. 철은 아니지만 그래도 찾아보면 있을 때였다. 그때도 토를 달았다.

“딸기면 안 되겠나.” 딸기도 사 오지 않으면서 말 뿐이다.

아이를 낳고 나면 꽃다발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남편은 빈손으로 병원에 나타났다.

“너무 일찍이라 파는 곳이 없더라” 꽃집이 문을 연 에도 결국 사 오지 않았다.

둘째는 오후에 태어났다. 남편은 국화를 사 왔다. 그것밖에 없더라면서 사 온 것이 '하얀 국화'다.

모든 것이 그렇게 건성건성이고 아내의 욕구를 무시한다.

드라마를 보니 임산부가 “니 애 밴 여자한테 밤중에 순대도 못사다주냐” 고 소리 지르던데 이런 건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엄마라면 오롯이 혼자서 임신과 출산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오래 서운했다.    

 

같이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남편은 소파에 앉고 난 주방으로 들어갔다. 같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파도 다듬고 웍질도 하고 네가 쌀 씻으면 난 국을 끓일게 이렇게 알콩달콩 살고 싶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신혼 초부터 너무 자상한 남편보다는 나에게 맡겨두는 스타일을 선호해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둘째가 태어나고 집에 입주도우미할머니가 들어온 후부터 우리는 싸움을 덜했다. 할머니는 우리의 평화유지군이었다.     

남편은 과거 일을 잘 잊어버리고 난 잊지 못한다. 그것이 우리 부부의 비극이긴 하지만 만약 남편이 지금이라도 잘 살아보겠다 앞으로 남은 생을 아내와 다정하게 즐겁게 살겠다 결심하고 노력한다면 과거 일 쯤 차츰 잊힐 것이다.

그런데.

“관람객 천만이 넘은 영화가 있다던데 보러 가자” “재미없다”

“요즘 창덕궁 후원에 단풍이 이쁘다던데” “.....” 대답 없이 얼굴에 귀찮음이 가득하다.

“전시회 보러 갈까” 까 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으으응”     

이러니 나도 치맥 한잔 하자거나 내가 만든 닭도리탕이 먹고 싶다는 남편의 기대를 채워줄 마음이 없어진다. 의외로 혼자 사는 삶이 편할 수 있다. 상대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으니 실망할 일도 없을 것이다.


이번에 아들의 미국발령에 따라가는 몇 달 동안 수 십 년을 함께 한 일상에서 남편을 괄호 밖으로 내어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 시험해보고  싶다. 부부로서 머리를 맞대고 어려움을 꾸역꾸역 헤쳐 나오며 살았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30년이 넘으니 잘 맞지 않는 부부라는 생각이 강하다.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왔지만 상대방 때문에 괴로웠던 적도 많았다.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그 모든 것이 습관이 되었다.

행복을 위해서는 좀 더 노력해야 함에도 ‘결혼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려니...’ 그저 참고 그대로 받아들인 세월이었다. 행복하지도 않고 만족스럽지도 않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삶을 좀 바꿔보고 싶다. 남편과 나는 입사동기이니 회사와 관련한 38년의 세월을 함께 했다. 회사를 퇴직하며 새로운 삶으로 리셋하려는 이때 남편과 함께 해야 할지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어디든 같이 가고 무엇이든 함께 하고 싶었으나 남편이 원하지 않으니 굳이 같이 살 필요가 있을까 싶다. 나의 욕구를 그렇게 무시하더니 나 없이 잘 살아봐라 하는 심리도 있다. 일단 남편은 집에 두고 아들을 따라 미국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 볼 참이다. 괴로움과 외로움 중 어느 것을 감당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몇 달 후에는 남편이 없어도 되는 존재인지 혹은 없으면 안 되는 존재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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