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하지 않는 삶의 평온함
몇몇 사람들은 종종 내 일상을 보며 엉뚱한 오해를 하곤 한다. 밤낮없이 일에 매진하는 나를 보고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나 골드미스가 목표냐"고 묻기도 하고, 반려견을 보살피거나 요리를 해 먹는 모습을 보면 "의외로 아이도 잘 키우고 결혼 생활도 잘하겠다"는 덕담 아닌 덕담을 건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그저 웃어넘기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한다. 나는 비혼을 맹세한 투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되기 위해 점수를 따고 있는 예비 신부도 아니다. 그저 지금의 이 상태가 편안한, 지극히 현실적인 생활인일 뿐이다.
사실 내 삶은 겉보기에 그리 화려하지 않다. 내 것이 아닌 부모님 소유의 집에서 독립인 듯 독립 아닌 '반(半) 자취' 생활을 하고 있고, 주차장에는 작은 국산차 한 대가 서 있을 뿐이다. 이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는 일도 벅차다고 느낄 때가 많다. 밖으로 출근하지 않을 뿐, 내 방 책상 위는 치열한 일터다. 일을 마치고, 어지른 것을 치우고, 빨래를 돌리고, 운동을 가거나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에너지는 남김없이 소진된다.
내 몸 하나, 내 공간 하나 건사하기도 이렇게 숨이 차는데, 내가 죽을 때까지 두 사람, 아니 세 사람 이상의 몫을 짊어질 수 있을까?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답은 늘 '아니오'였다.
경제적인 부분도 그렇다. 사업 소득은 계절을 탄다. 확 벌 때도 있지만 보릿고개도 있다. 그러다 보니 저축보다는 투자의 야생성에 익숙하다. 이런 내 불규칙한 리듬을,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에 익숙한 누군가와 맞추는 과정은 상상만으로도 피로하다. 무엇보다 나는 내 침대를 공유하고 싶지 않다. 고단한 하루 끝에 대자로 뻗어 잠들 수 있는 온전한 고독, 옆 사람의 뒤척임에 깨지 않을 권리. 이 사소해 보이는 욕망이 나에겐 결혼이라는 거대한 제도보다 훨씬 더 절실하다.
그렇다고 해서 오는 사람을 밀어내는 것은 아니다. 다만 30대가 넘어가면서 나만의 확고한 필터가 생겼다. 결혼이 급해 보이거나, 서로 알아가기도 전에 결혼 얘기부터 꺼내는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마음을 정리했다. '나중에 바뀔 수도 있지 않나?' 라는 희망 고문으로 남의 귀한 시간을 뺏는 건 죄악이다. 누군가와 함께여도, 아니어도 이 원칙은 같다. 그저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충실할 수 있는 상대를 원했을 뿐이니.
가끔 스레드(Threads) 등의 SNS를 보면 미혼의 삶에 대한 기이한 강박이 느껴진다. 미혼이라면 으레 경제적으로 완벽해야 하고, 해외여행을 다니며 와인 잔을 기울이는 '화려한 싱글'이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같은 것들 말이다. 마치 결혼한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멋지게 살지 않으면 패배자로 낙인찍힐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자신을 과하게 증명하려 하는 것은 어쩌면 약자들의 언어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더더욱 내 삶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설득하려 들 필요는 없다고 느낀다. 미혼은 약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자가 돈 자랑을 요란하게 하지 않듯,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은 굳이 행복을 과하게 전시하거나 선택을 변명하지 않는다. 결혼하지 않았어도 내가 충분히 가치 있다는 사실은, 화려한 소비나 연출로 입증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설명하고 증명하려는 태도야말로, 스스로를 약자의 위치에 놓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나는 보여줄 게 별로 없다. 입이 떡 벌어지는 집도, 번쩍이는 외제차도 없다.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멋진 전시품은 내 삶에 별로 없다. 하지만 적어도 타인의 시선에서는 자유롭다. 내가 선택한 삶이기에, 누군가에게 "나 잘 살고 있어"라고 검사받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20대 때는 남들이 가는 궤도에서 이탈하는 것이 두려웠다. 미래가 막막해 잠 못 이루던 밤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30대가 되어 살아보니 알겠다. 특별한 사건 없이, 그냥 살아지는 것이 인생 최대의 복이라는 것을.
적당한 벌이가 있고, 가끔 내 취미에 투자할 수 있고, 사랑하는 반려견과 평온하게 잠들 수 있는 삶. 전시할 게 없어서 오히려 평온한 이 삶. 누군가가 부러워하는 화려한 싱글이 되느니, 마음 편한 생활인으로 늙어가고 싶다. 지금으로서는, 그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