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슬픈 곳에서 가장 따뜻해진 얼굴

떠난 이는 말이 없지만, 대신 다정한 연결을 남긴다

by 그냥 하윤

장례식장에 들어서면 공기가 다르다. 슬픔이 가득 차 있어야 할 공간인데, 이상하게도 사람의 온기가 먼저 느껴진다. 오래 보지 못한 얼굴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있고, 조심스럽게 안부가 오간다. 울음이 지나간 자리에서 웃음이 아주 잠깐 고개를 든다. 그 짧은 순간들이 이 공간을 더 묘하게 만든다.


나는 아빠의 얼굴을 자꾸 보게 됐다. 울음이 지나간 뒤의 표정인지, 아니면 이미 다른 시간으로 옮겨간 얼굴인지. 이미 몇 번의 이별이 지나간 뒤였다. 형제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웠고, 이제 남은 손으로 셀 수 있는 관계 앞에서 이별 하나가 더해지는 일이 어떤 무게로 남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기억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사람에게 이별의 장면은 너무 큰 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친척들이 하나둘 모이자, 아빠의 표정은 조금씩 풀어졌다. 조카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였다. 어릴 적 세뱃돈을 받을 생각에 헤실거리며 웃던 언니와 오빠의 얼굴, 깍쟁이 같았다던 나의 어린 시절, 사촌언니가 유난히 잘 불렀다는 노래 한 소절을 떠올리며 웃기도 했다. 이름과 장면이 이어질수록 얼굴은 살아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어떤 기억은 존재만으로도 치료제가 된다. 이야기 속에서 수십 년 전의 골목을 소환하는 것만으로도, 아빠의 표정에는 금세 생기가 돌았다. 의학적인 근거를 빌려 '정서적 자극'이라 이름 붙이기엔 그날의 장면이 너무도 단순하고 따뜻했다. 성분이 분명한 약효라기보다, 엉켰던 관계가 풀리며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온기에 가까운. 기억보다 먼저 반응한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였을지도 모르겠다.


“학교 끝나면 형님이 꼭 자전거를 끌고 와서 교문 앞에 서 있었어. 날 태우고, 가끔은 뒤에서 밀어주려고.”


이제 막 칠십이 된 동생의 기억 속에서 큰아빠는 여전히 자전거를 끌고 기다려주는 든든한 보호자였다. 아빠를 뒤에 태우고 금호동의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던 그 투박한 힘이, 어쩌면 큰아빠가 평생 짊어지고 온 장남이라는 무게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그를 책임감 넘치는 장남으로 기억했다. 아빠에게도 늘 어른 같은 형님이었다고 했다. 살아 있는 동안뿐 아니라, 떠나는 순간에도 그 역할을 끝까지 놓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말없이 질서를 남기고, 남겨진 이들이 각자의 무게를 조금 덜어낼 수 있도록.


고모가 내게 말했다. 큰엄마는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큰아빠를 간병해오셨다고. 길고 고된 시간이었을 거라고, 그 말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큰아빠는 큰 소리 없이, 잠들듯이 가셨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것이 남겨진 사람에게 보내는 마지막 말은 아니었을까. 이제는 내려놓아도 된다는, 오래 미뤄두었던 허락 같은 것.


장례식장은 가장 슬픈 장소이면서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공간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기 위해 모였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다시 연결된다. 흩어졌던 삶들이 한 번 더 교차하고, 안부가 오간다.


슬픔은 나눈다고 해서 사라지는 성질의 감정은 아니다. 여전히 남아있다. 다만 슬픔의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온기가, 슬픔보다 먼저 감각되는 순간이 있다.


그날, 웃음이 돌아온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어떤 이별은 남아 있는 사람들을 더 단단하게 묶어놓는다. 떠난 사람은 말이 없지만, 대신 관계를 남긴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건네는 선물이라면, 꽤 다정한 방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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