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지 않을 때 비로소 선명해지는 찰나의 진실들
음악이 끝난 뒤에 나는 늘 잠깐 멍해진다. 방금 전까지 분명히 존재하던 것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라진 자리 앞에서. 소리가 빠져나간 공기는 조금 가벼워지고, 그 빈자리를 굳이 붙잡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순간이 좋다. 남아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한 줄의 음악은 연주되는 순간 사라지기 때문에 감동을 준다. 다시 재생할 수는 있지만, 방금의 그 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바람도 마찬가지다.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뒤에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손에 쥘 수 없는 것들은 대개 오래 머무르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것들이 기억 속에서는 더 오래 남는다. 딱 그만큼만 존재했다가 사라진 것들, 설명할 수 없고 이름 붙일 수도 없는 감각들. 그것들은 삶에서 빠져나간 것이 아니라, 조용히 통과해 갔다는 느낌을 남긴다.
그런 감각이 유독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 있다. 오래전 혼자 떠났던 제주 여행에서였다. 호텔 예약을 잘못하는 바람에 숙박비만 날리고, 아쉬운 대로 근처 게스트하우스를 급히 잡았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방에 들어와 누워 있는데, 같은 방을 쓰던 사람이 배고프지 않냐며 맥주나 한 잔 하자고 했다. 나는 옆 침대 사람에게도 같이 갈 건지 물었고, 그렇게 처음 보는 여자 셋이 근처 술집에 앉았다. 부산에서 왔다는 사람, 청주에서 왔다는 사람. 동향도, 사는 모습도 달랐다.
그날은 마음의 온도가 평소보다 낮아져 있었다. 낮에 혼자 카페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던 중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화면에 뜬 소식은 어린 시절부터 성장 과정을 지켜봐 왔던 한 유명인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내용이었다. 예상치 못한 뉴스는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혼자 삼키기엔 버거운 감정이 되었고, 그날 밤 처음 만난 사람들 앞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게 됐다. 이유는 없었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기에, 오히려 말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대화는 이상할 만큼 담담하게 흘렀다. 처음부터 각자의 인생을 꺼내놓은 것은 아니었다. 삶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오갔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각자의 인생으로 흘러갔다. '내일이면 남이 될 것'이라는 전제가 우리를 오히려 솔직하게 만들었다. 다시 볼 일 없는 타인이라는 익명성이 주는 해방감은 때로 가장 가까운 이들의 위로보다 다정하다.
다음 날 아침, 조식을 함께 먹고 체크아웃을 하며 여행 잘 마치라는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연락처를 저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은 관계였다. 돌이켜보면, 그때 제주에서 만났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스쳐갔고, 남지 않았고, 그래서 더 이상해질 필요도 없었다.
짧은 음악 한 소절이 오래 남는 이유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반복되지 않기 때문에, 붙잡을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감각의 밀도가 높아진다. 여행지에서 만난 이름 모를 사람과의 대화가 오래 기억에 남는 것도, 다시 보지 않을 걸 알기에 꾸밈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것들은 대개 무겁지 않다. 그러나 가볍지도 않다. 다만 정확한 무게로 우리를 통과한다.
산책 중 내 개가 길가 풀숲에 코를 박고 한참을 킁킁거릴 때가 있다. 그 모습은 무언가를 읽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박제된 텍스트를 해독하는 일이 아니다.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냄새의 결을 따라가며, 한 줄 한 줄 사라지는 선율을 감상하는 일에 가깝다.
개들은 그 냄새를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병에 담아 보관하지도 않고, 오래 붙들지도 않는다. 가장 뜨겁게 탐색하고, 가장 담담하게 잊어버린다. 충분히 음미한 뒤에는 미련 없이 다음 풀숲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 코끝을 따라가다 보면, 지나가는 것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영원한 의미를 찾으려 애쓰게 된다. 이 순간이 무엇이었는지, 왜 필요했는지, 어떤 이름으로 박제해야 하는지 끝까지 설명하려 든다. 하지만 지나가는 것들은 늘 현재에만 존재한다. 남기지 않기에, 증명하지 않기에,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충실하다. 어쩌면 삶은 의미를 축적하는 방식이 아니라, 의미를 요구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들을 통과하며 조금씩 가벼워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남겨진 것보다 비워진 흔적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주 붙잡는다. 의미를 고정하고, 관계에 이름을 붙이고, 사라지지 않게 만들려 애쓴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가장 자기다운 얼굴을 가진다. 그것들을 소유하려 하지 않고, 멈추려 하지 않고, 기꺼이 지나가게 두는 일. 그것이 어쩌면 그 존재에 대한 가장 정중한 예우이자, 내가 믿는 '지나가는 것들의 윤리'일지도 모른다.
결국 삶은 무언가를 축적하는 과정이 아니라, 잘 흘려보내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지나가는 것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존재의 내벽에 새로운 무늬를 스친다. 한 번 스치고 간 뒤에도, 우리 안에서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