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개의 속도로 걷는 오후

기다림이 아니라, 같이 흐르는 것에 대하여

by 그냥 하윤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손바닥을 파고들던 팽팽한 장력은 이제 없다. 14살이 된 달이와의 산책은 이제 줄다리기가 아니라, 느슨하게 늘어진 줄의 곡선을 읽는 일에 가깝다.


넘치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해 내 팔을 기어코 앞질러 가려 했던 시절은 지나갔다. 지금 녀석은 내 발뒤꿈치 어디쯤에서 걷는다. 줄은 우리 사이에서 완만한 U자를 그리며 흔들린다. 통제를 위한 끈이 아니라,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르는 두 개의 시간을 위태롭지 않게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선.


녀석의 걸음은 자주 끊긴다. 냄새를 맡느라 멈추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허공을 응시하느라 멈춰 선다. 예전 같으면 "가자" 하며 줄을 살짝 당겼을 테지만, 이제 나는 녀석이 멈추면 같이 멈춘다.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고개를 돌려 다시 나를 바라볼 때까지 기다린다.


그 멈춤의 시간 동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빠르게 걷는 운동으로서의 산책일 땐 회색 덩어리로만 뭉개져 보이던 풍경들이 제각각의 질감을 드러낸다. 보도블록 틈새에 말라비틀어진 겨울 풀이 얼마나 끈질기게 뿌리를 박고 있는지, 가로수 그림자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마나 미세하게 각도를 틀고 있는지, 쌩쌩 지나가는 차들의 소음 뒤편에 얼마나 깊고 서늘한 침묵이 깔려 있는지. 내가 멈춰 선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내게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지면 위에 남은 시간


작은 노견의 뒷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허리 통증 때문에 엉덩이를 조금 낮추고 엉거주춤하게 걷는 걸음걸이는, 어딘가 조심스럽고 신중해 보인다. 어릴 적의 그 경쾌한 뜀박질이 지면을 차고 오르는 행위였다면, 늙어가는 지금의 걸음은 지면을 꾹꾹 눌러 담는 행위에 가깝다.


늙음이란 단순히 기능이 쇠퇴하여 느려지는 것이 아니라, 중력을 견디는 방식이 바뀌는 과정이다. 이 작은 개는 지금 온몸으로 지구의 무게를 버티며, 자신의 생을 한 발 한 발 아주 성실하게 찍어내고 있는 것이다.


횡단보도 앞에서 한 번 더 멈춘다.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었지만, 녀석은 건널 생각이 없어 보인다. 횡단보도 건너편의 냄새보다는 지금 발밑에 떨어진 마른 낙엽의 바스락거림이 더 중요한 모양이다. 나는 줄을 당기는 대신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내 옷깃과 녀석의 희끗한 털을 동시에 스치고 지나간다. 입김이 하얗게 흩어진다. 내 입김은 높게, 녀석의 입김은 낮게 흩어지지만, 결국 공기 중에서 섞여 형체 없이 사라진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오후


나의 시간은 직선으로 흐른다. 목적지를 향해, 내일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 나간다. 반면 이 노견의 시간은 멈춤과 흐름을 반복하며 점선으로 이어진다. 과거의 기억인지 현재의 감각인지 모를 것들에 수시로 발목을 잡히며, 녀석은 자주 뒤를 돌아본다.


산책은 내가 가진 직선의 시간을 꺾어, 이 작은 존재의 점선 위에 조용히 포개는 일이다. 내가 걷는 속도를 늦추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같은 풍경을 공유할 수 있다. 이 하얀 털의 존재가 내게 가르쳐주는 것은 인내심이 아니라, 삶의 적정 속도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위해 그리 급하게 걸어왔는지, 헐떡이며 지나친 풍경 속에 무엇을 두고 왔는지. 녀석은 멈춰 선 채 온몸으로 내게 질문을 던진다.


줄 끝에서 미세한 진동이 전해진다. 다시 걷겠다는 신호. 뻣뻣해진 뒷다리에 힘을 주고, 다시 냄새를 맡으며 느릿하게 앞발을 뗀다. 나도 천천히 발을 맞춘다. 겨울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누워 우리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다. 두 개의 그림자가 겹쳐져 하나처럼 일렁인다.


우리는 겨울의 한복판을 아주 느리게 통과하고 있다. 한때 팽팽했던 줄이 헐거워진, 그 정도의 속도로.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