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창백한 범죄자'에게 작별을 고하며
연말이 되면 나는 유난히 창가에 오래 서 있는 사람이 된다. 특별히 볼 것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풍경을 그대로 두고 싶어서다. 찬 공기를 사이에 둔 채 서 있다 보면, 생각들도 잠시 제 속도를 잃는다. 급히 어디론가 향하던 마음이 제자리를 찾고, 그제야 그동안 미뤄두었던 장면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창밖은 고요한데, 그 고요가 오히려 내 안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멈춰 선 시간 끝에서 마음은 늘 같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생각들은 제멋대로 흩어졌다가 마지못해 스스로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 해를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사유는 종종 성찰이라는 가면을 쓴 채 '후회'로 변질되곤 한다.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 선택은 명백한 실수였어."
지나간 시간의 파편들을 굳이 끄집어내어 현재의 나를 찌르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 그것은 내게 일종의 연례행사와도 같았다.
이토록 괴로운 반추의 늪에 빠질 때마다, 책장 한구석에 꽂힌 오래된 책을 꺼내 들곤 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스스로를 망치의 철학자라 불렀던 사람. 그는 기존의 견고한 가치와 믿음을 산산조각 내고 그 파편 위에서 인간이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세우길 요구했던 사상가다.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는 사랑과 우정, 죽음과 덕,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의 심연이 예언자 차라투스트라의 목소리를 빌려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유독 내 시선을 붙잡았던 대목이 있다. 바로 '창백한 범죄자'에 대한 이야기다.
생각과 행위, 그리고 그 행위에 대한 표상은 별개의 것이다.
한 표상이 사람을 창백하게 만든다. 그는 행동으로 옮기자 자신의 행위에 필적할 만한 자가 되었지만, 행위 이후에는 그 표상을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그 자신을 하나의 행위자로 간주해왔다. 나는 이것을 광기라 부른다. 그에게는 예외적인 것이 본질이 된다.
ㅡ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니체는 자신이 지닌 풍요로운 가능성을 잊은 채, 과거의 특정한 순간과 특정한 과오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 사람들을 '창백한 범죄자'라 불렀다.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마치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창백하다'는 표현은 단순히 핏기가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것은 과거의 행위가 드리운 그림자에 짓눌려, 현재의 생명력을 상실한 상태를 가리켰다. 창백한 범죄자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과 자신이라는 존재를 하나로 묶어버린다. "나는 실수를 한 사람이다"가 아니라, "나는 실수 그 자체다"라고 규정해버리는 것이다. 니체가 말한 광기란, 찰나의 예외적인 사건을 자신의 영원한 본질로 착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인간은 과거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매 순간 자신을 다시 써 내려가는 존재다. 그렇기에 삶을 계속해서 새로 써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과거에 대한 원한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미 흘러간 강물을 거슬러 오를 수 없듯, 지나간 과오를 끝없이 곱씹는 일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붙잡아 두는 행위일 뿐이다. 그럼에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일 사이에는 언제나 긴 간극이 존재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타인에게는 제법 관대한 위로자였다. 과거의 실수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주저 없이 건넸다.
"너무 괴로워하지 마. 과거의 너와 지금의 너는 엄연히 다르잖아."
그 말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잣대를 나 자신에게 들이댈 때는 엄격하기 그지없었다. 남에게는 봄볕 같은 위로를 건네면서, 스스로에게는 한겨울의 칼바람처럼 매서운 비난을 퍼부었다. 과거의 행적들로 나를 규정하는 사고방식은 마치 단단한 콘크리트처럼 굳어 있었다.
니체의 망치가 그 견고한 벽을 두드린 것은 그때였다. 책을 덮고 눈을 감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나와 분리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것은 회피도, 비겁한 변명도 아니었다. 오히려 오래 짊어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는 데서 오는 묘한 해방에 가까웠다.
니체를 다시 읽은 이후로, 나는 과거의 나를 이전보다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보게 되었다. 후회로 점철되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이제는 이렇게 말해본다.
"그때의 나는,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던 거야."
물론 이것이 과거의 모든 잘못을 미화하거나 무조건적으로 용서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잘못은 잘못으로, 기억은 기억으로 그 자리에 두되, 그 그림자가 현재의 나를 규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 과거의 실수가 오늘의 나를 설명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극복은 시작된다.
사람에게 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아마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와는 무관해 보이는 사유의 시간들이, 사실은 가장 깊은 절망에서 우리를 건져 올리는 밧줄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철학은 과거를 지워주는 지우개가 아니라, 과거를 다른 각도에서 보게 만드는 안경에 가깝다.
올해도 어김없이 연말은 찾아왔고, 나는 또다시 지난날을 떠올릴 것이다. 다만 예전처럼 창백한 얼굴로 후회의 벽 앞에 서 있지는 않으려 한다. 대신 니체가 건네준 망치를 손에 쥐고, 나를 가두려 드는 벽을 하나씩 깨뜨리며 새해를 향해 걸어 나갈 것이다. 과거의 나와 작별을 고하고, 비로소 다시 생동하는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
마치는 글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만큼은 스스로에게 가장 너그러운 위로자가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우리가 새로 쓴 '철학의 안경' 너머로 바라보는 내년이, 후회의 그림자보다 당신의 생동하는 빛으로 더 선명해지기를 바랍니다.
이 하루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당신 곁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일, 다시 시작하는 당신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