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도에 가까운 마음으로

살얼음 위에서 마음이 방향을 바꿀 때

by 그냥 하윤

1월의 아침은 거칠게 마감된 아스팔트의 질감마저 서늘하게 비추는 예리한 빛으로 시작된다. 골목길 그늘진 구석, 누군가 쏟아버린 유리의 파편처럼 반짝이는 것이 발끝에 걸린다. 살얼음이다. 그것을 무심코 밟으면 '파삭' 하는 비명이 들린다. 고체가 되기를 선택한 물의 완강함이 무너지는 소리다.


0도는 늘 조용한 싸움이 벌어지는 온도다. 과학의 언어로는 결빙점 혹은 빙점이라 부르지만, 살갗으로 느끼는 0도는 액체와 고체가 서로의 영역을 탐색하며 미세하게 진동하는 임계점이다. 멈춰 서서 어제를 방어하려는 완고함과, 기어이 녹아내려 내일로 흐르려는 갈망이 팽팽하게 맞붙는 지점. 얼음의 모서리가 햇볕에 닿아 투명하게 젖어 드는 그 찰나를 보고 있으면, 이 작은 물웅덩이가 사실은 거대한 투쟁의 현장임을 직감하게 된다.


우리의 1월 또한 이 기묘한 경계선 위에 놓여 있다. 새해라는 거창한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마음의 내부는 여전히 작년의 추위가 만들어낸 단단한 결빙들로 가득하다. 무언가 시작해보려는 의지는 액체처럼 유연하고 생동감이 넘치지만, 늘 하던 대로 머물고 싶은 관성은 얼음처럼 차갑고 묵직하게 발목을 잡는다. 의지는 타성에 가로막혀 0도 근처를 위태롭게 배회한다. 우리는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동요하는 중이다.


한때는 얼음을 녹이려면 대단한 열기가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펄펄 끓는 100도의 열정만이 삶의 경로를 바꿀 수 있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웅덩이를 들여다보면 알게 된다. 얼음의 운명을 바꾸는 건 뜨거운 용광로가 아니다. 단지 0도를 넘어서는 0.1도의 미세한 온기, 그 보잘것없는 빛의 무게다.


아직 얼어 있지만 이미 흐르고 있다.


1월의 태양은 낮고 예리하게 풍경을 파고든다. 그 빛은 따스함보다는 폭로에 가깝다. 얼어붙은 웅덩이의 폐쇄적인 구조를 낱낱이 비추며, 고체가 지닌 완고함의 끝을 건드린다. 거창한 결심이나 폭발적인 열정만이 우리를 움직일 거라는 착각은 그 서늘한 빛 아래서 힘을 잃는다. 어제보다 아주 조금 더 투명해진 눈빛, 창가를 향해 몸을 돌리는 사소한 태도 같은 것들이 0.1도의 균열을 만든다.


햇빛이 닿은 자리부터 천천히, 얼음은 자기 형체를 포기한다. 딱딱했던 모서리가 둥글게 닳아 없어지고, 그 끝에 맑은 물방울이 맺힌다. 그 찰나의 해동은 소리 없이 일어난다. 그것은 무너짐이면서도, 흐름을 허락받는 순간이다. 고체의 형체를 내려놓아야만 물은 비로소 움직일 수 있다.


0도는 유난히 정직하다. 온기를 향해 제 모서리를 갉아내어 내어주는 순명(順命)만이 남는다. 견고한 다짐이 아니라, 아주 작은 온기 하나가 우리를 바꾼다는 걸 1월의 살얼음은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다 녹지 않아도 좋다. 꽝꽝 얼어붙은 삶의 한복판에서, 오늘 단 한 줄의 문장을 마음에 들여놓거나 창가를 향해 몸을 돌리는 사소한 태도만으로도 내 안의 온도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을지 모른다. 완전히 흐르지 못하더라도, 모서리가 젖어 들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이미 얼음의 연표에서 벗어난 것이다.


길 위의 살얼음이 햇볕에 제 몸을 내어주며 맑게 젖어 드는 것을 본다. 나도 나의 1월에게 모서리 한쪽을 내어주기로 한다. 0도의 치열한 정체 속에서, 기어이 흐르기로 선택한 것들의 눈부신 무너짐을 조용히 지켜보는 관찰자가 되어.


화요일 연재
이전 11화12월 31일, 후회가 나를 설명하지 않게